통일시대 Vol 1692020.11

평화 LIFE

길 위에서 만난
DMZ의 가치

전국의 많은 길을 걸어 왔고 지금도 길 위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오래 전 DMZ 접경지역을 걸으면서 언젠가 강원도 구간이 잘 정비되면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인천 강화도까지 DMZ 전 구간을 걸어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나의 트레킹은 강원도 길 위에서 시작됐다. 그 후로 오랜 세월 길을 걷고 있다. 특히 최북단 이음길인 평화누리길은 유난히 자주 오랫동안 걷는다. 길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에게 무한한 지혜를 준다. DMZ 접경지역에서 활동을 하는 동안 나는 DMZ의 가치와 그 가치의 기준이 되는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란 사람과 길 그리고 음식이 대표적이다. 길에서 귀한 것들을 많이 얻었기에 나는 이 길 위에 다음 세대인 청년들을 초대하고 싶었다. 그래서 2018년 ‘평화누리길 청년원정대’를 꾸렸다. 나와 몇 사람이 순수하게 마음을 모아 만든 것이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는 상상만으로도 좋았는데,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더욱 행복했다.

그러던 중 경기도가 DMZ 155마일 걷기 공모사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름이 돋는 순간이었다.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해 인제, 양구, 화천, 철원, 경기도 연천과 파주에 이르기까지 접경지역을 걷는 사업이었다. 국방부의 협조로 일반인은 쉽게 들어가기 힘든 민통선 구간도 포함돼 있었다. 공모 내용을 살펴볼수록 ‘이 사업은 내가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어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틀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DMZ 155마일을 15박 16일 만에 100명이 함께 걷는 것. 기획에 착수한 지 3일 만에 노선계획을 끝내고 나니 새삼 내가 가지고 있던 잠재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모사업에 지원하기 위해 파트너를 선정하면서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기 때문인지, 그동안 내가 잘 알고 해 왔던 일이었기 때문인지 공모사업에 단독으로 선정되는 행운도 얻었다.


15박 16일, DMZ의 가치 깨닫고 나를 만나는 시간
총 100명을 모집하는 걷기 행사였지만 무려 400명이 지원했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소통과 평화의 땅.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을 걷는 프로젝트는 단순히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DMZ 155마일을 16일 동안 걸으면서 DMZ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고,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아무나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와 의미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100명을 선정하고 OT를 하면서 그들에게 “DMZ의 가치를 공감하고 확산시키는 원정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15박 16일을 함께 걸은 100명의 대원들이 여기에 공감해 주었기에 DMZ 155마일 걷기는 완벽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냉전의 산물인 DMZ를 찾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해마다 다양한 행사가 열리지만 지속적으로 열리는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길은 항상 열려 있고, 우리는 그 길을 걸으며 DMZ의 가치를 깨닫고 평화를 생각한다. 아마도 이것이 평화의 시작일 것이다.

특히 종주 기간 동안 우리는 일회용품 자제 및 환경사랑 캠페인을 진행했다. 페트병에 담긴 물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했는데, DMZ가 가진 여러 가치 중 하나인 생태적 가치를 보존하고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민통선 안에는 마을주민과 군인들을 비롯해 많은 동식물이 있고, 우리는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DMZ의 생태적 가치는 생명이자 존중이다. 짧은 지면에 DMZ를 모두 이야기할 수 없지만, DMZ의 생태적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가치에 공감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많아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 시간과 공간에 다음 세대인 청년들이 많이 참여하기를 바란다.

사단법인 경기 DMZ 생태관광협회는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DMZ를 정확하게 알고 그 가치에 공감할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을 기획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길’이다. 길을 중심으로 DMZ의 문화를 사람들과 나누며, 그 문화 속에서 함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DMZ를 정확하게 알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열정을 쏟아낼 것이다.

김 학 면 경기DMZ생태관광협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