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사랑채
씨실 날실처럼 얽힌
평화와 여성의 삶
지난 8월 30일 파주민족화해센터에서 ‘북경행동강령 채택 25주년 및 유엔안보리결의안 1325호 채택 20주년 기념 경기여성평화심포지엄 - 1325호 경기행동강령 선언의 날’을 개최했다. 여성을 중심으로 한 비슷한 주제의 심포지엄은 여러 지역에서 개최되어 왔으나 경기여성평화심포지엄이 특히 유의미했던 것은 여성들이 제안하는 평화정책 방향과 내용을 ‘1325호 경기행동강령’으로 담아냈다는 점이다.
왜 ‘경기도형 1325호’가 필요할까?
지난해 ‘경계를 넘어서는 여성대표성 -공생의 조건’이라는 지역조사를 진행했다. 경기도 31개 시·군의 남북교류협력지원조례, 위원회 성비를 조사하고 담당자 인터뷰를 통해 평화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도출하기 위함이었다.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토론회에서는 접경지역이 가장 많은 경기도에서부터 1325호 결의안이 적극 반영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평화사업의 지역화 아이디어, 조례 제정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러한 방안이 도출된 배경은 경기도 내 평화 관련 정책에 여성의 참여가 30% 미만이었고, 평화사업도 ‘안보’ 중심으로 고정되어 지역에 맞는 평화사업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성중심으로 자리 잡힌 틀은 ‘여성’에게 불합리한 경험을 하게 한다.
경기여성단체연합이 총괄하는 DMZ ‘여성평화걷기’는 ‘여성’ 두 글자가 있다는 이유로 매번 행정기관에서 “여성정책과로 가라”, 여성정책과에서는 “평화협력과로 가라”는 답답한 말을 듣는다. 왜 ‘여성’이 참여하면 평화 사업이 아니란 말인가? ‘여성’이면 사업의 목적과 내용에 상관없이 여성정책과로 가라는 행정의 고정관념은 결국 그만큼 평화정책이나 평화사업에서 ‘여성’의 참여가 미미했다는 방증이다. 동등한 결정권자로 본 경험이 없으니 여성 참여 사업을 상상해 본 적도 의논해 본 적도 없는 것이다.
여성 개개인의 삶을 평화정책으로
작년의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조례 제정 작업을 시작하고, 경기여성평화심포지엄을 개최하게 됐다. 조례의 경우,「경기도 평화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여성 참여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하였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계속해서 말하다 보면 ‘말하는 대로’ 이뤄지리라 기대해 본다. 우리의 말하기가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특히 여성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이번 심포지엄에서 접경지역 여성들의 인터뷰를 자료집과 영상으로 담았다. 평화사업의 지역화, 여성 참여의 아이디어와 중요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북한이탈여성, 미군기지촌이 고향인 여성, 미군기지촌 여성들과 함께하는 여성, 민통선(민간인 통제구역)에서 농사를 짓는 여성까지 네 명의 여성을 만났고, 그들은 각기 다른 삶의 경험을 나눠 주었다.
북한이탈여성은 북한에서 쌓은 경력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정착 과정에서 많은 사회문화적 제약에 직면한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면서도 ‘더 많은 지원정책을 바라지 않을까?’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한 남과 북의 다른 언어체계로 병원 치료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정착 지원 기간 이후에 재취업을 하게 될 때의 어려움 등 기존의 지원정책과 실제 정착 과정 사이에서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짚어 주었다.
미군기지촌이 있던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여성과 미군기지촌 여성들을 돕고 있는 여성의 삶은 닮은 듯 달랐다. 닮은 점이라면 미군부대의 기지촌이라는 존재가 여성들에게 낙인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국가가 방조하고 조장한 성매매였음에도 제대로 된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한 부당한 역사의 산물이란 것이다. 분단과 전쟁이 남긴 상흔이 이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선 하나가 남과 북을 갈라놓듯 ‘여성’이란 경계가 평화와 안보에서 여성을 배제해 왔다. 그러나 여성 개개인의 가장 개인적인 경험이 곧 평화정책이 될 수 있음을 인터뷰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여성평화심포지엄에 모인 여성들의 이야기, ‘1325호 경기행동강령’이 평화 사업에 여성 참여가 확대되는 데, 아니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로 변화하는 데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접경지역 여성의 삶 이야기
Interview 1 ㅣ “여기 와서 정착해 나가는 과정에서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제일 먼저 해 주고 싶어요. … 사실 이 사회에 와서 0으로 시작하는 건 너나 나나 똑같다고 봐요. 새로운 삶은 똑같기 때문에 그 환경에서 첫발을 디디는 데 한번 나서보자는 생각으로 해 봤으면 좋겠어요.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해 주고 싶어요.” - 북한이탈주민 여성
Interview 2 ㅣ “여기 미군 부대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 3년 전인가? 그때쯤 오셨어요. 그때 신문에 세계에서 가장 큰미군부대래요, 여기 앞이. 그러니까 가장 큰 미군 부대가 있는 평택시가 도대체 왜 기지 옆에서 고생한 할머니들을 위해 생활비 지원 등 도움 줄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 미군기지촌 여성들과 함께하는 여성
Interview 3 ㅣ “용주골 산다고 하면 거기 여자들 어쩌고 그러면서 성매매하고 연결지어 버리니까. 그래서 기를 쓰고 마을을 벗어나려고 했지. 나중에는 법원리 내지는 용주골 이런 얘기를 아예 안 하게 되는 거지. 지금은 자랑스럽게 “나는 법원리 사람이에요.” 이렇게 얘기하지만 그때는 미군부대가 있으면서 미군하고 관계된 산업이 그쪽에 굉장히 크게 있어서….” - 미군기지촌이 고향인 여성
Interview 4 ㅣ “전망대 가다 보면 그냥 하나 저렇게 그어져 있어요. 주차선처럼. 그러면 여기는 DMZ가 아니고 저기는 DMZ고. 그러니까 너무 이상해요(웃음). 선 하나로 그렇게 좌우되는 게.” - 민통선에서 농사를 짓는 여성
문 지 은
경기여성단체연합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