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52021.05

특집

미·중 전략경쟁과 한국외교

미·중 전략경쟁과 인도-태평양 전략 속
한국 외교의 선택은?



미·중 전략경쟁 양상이 심상치 않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미·중 경쟁이 달아오르기 시작하더니, 트럼프 대통령 시기를 거치면서 여러 분야에서 노골적으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물론 미·중 전략경쟁은 20세기 미·소 간의 냉전과 다른 측면도 많이 존재한다. 미·소 냉전이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전면적 대립과 갈등이었다면, 미·중 전략경쟁은 경쟁과 협력이 교차하며 갈등의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미·중관계에는 협력보다 갈등이 두드러져 보인다.


중국의 부상으로 변화한 미·중 관계
  20세기 말 미·소 냉전이 종식되고 탈냉전이 시작되면서 세계는 유일 패권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단극(unipolar)질서를 맞이했다. 하지만 한때 ‘역사의 종언(End of History)’이라고도 언급되었던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패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경제·인구·영토 등 여러 측면에서 거대한 규모를 가진 중국이 언젠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예상이 다수 제기되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16개 정보공동체를 대표하는 국가정보위원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가 2012년 발간한 ‘글로벌 트렌드 2030(Glabal Trend 2030)’은 2030년경 중국 경제가 미국을 능가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에 따라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와 미국에 대한 안보적 의존도가 높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지역질서의 불안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2011년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채택하고, 미·일동맹 강화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재균형(rebalancing)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시기 미·중관계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중국과의 경쟁이 존재하지만 이는 제한적인 것이며 지속적인 협력이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이른바 ‘키신저 질서’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중국을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편입시키고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중국이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이를 통해 미·중 중심의 국제질서 유지가 가능할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기대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이 성장하더라도 상대적 국력 격차에 따른 미국의 우위가 유지될 것이라는 낙관적 인식도 있었다.

바이든 정부에서의 미·중관계는 경쟁적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트럼프 정부보다는 균형 잡힌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2013년 중국을 방문해 당시 시진핑 부주석과 회담을 진행한 바이든 부통령 ⓒ연합

  하지만 미·중 경쟁이 장기화·전면화하고, 미·중 간 국력 격차가 줄어들면서 미·중관계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트럼프 정부에서 발표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2017)에 따르면 중국은 현상변경세력(revisionist power)이자 전략적 경쟁자(strategic competitor)로 규정된다. 국가정보위원회의 2017년 보고서 ‘글로벌 트렌드 2035’도 2012년의 입장을 바꾸어,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에 따라 미국과 이들 국가 간의 전략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미·중 경쟁은 불공정무역과 무역분쟁에서 시작하여 5G, AI, 양자컴퓨터 등 첨단 기술 분야의 기술패권경쟁으로 이어졌으며, 홍콩·대만·신장 위구르 등 중국 내 인권 문제 등을 둘러싼 이념적 대결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은 2019년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전환되었다. 2019년 6월 미국 국방부는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발표하고,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개칭하였다. 이 보고서에서 중국은 수정주의 세력, 러시아는 악의적 행위자, 북한은 불량국가로 규정되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목표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지역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핵심요소로 다차원적인 대비태세(preparedness), 동맹들과의 파트너십, 지역 국가들과의 네트워크 강화 등을 꼽았다. 결국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중 전략경쟁의 지정학적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기획하고 미국이 수용한 인도-태평양 전략
  1979년 미·중관계 정상화 이후 중국은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는 원칙에 충실해 왔다. 이러한 기조 속에서 중국은 외부세계와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속적 경제 발전을 꾀하는 화평발전 노선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중국의 국력이 성장하면서 이에 상응하는 국제적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게 되었다.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한 직후인 2012년 11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발표하였으며, 2014년에는 중국식 강대국 외교정책을 공식 천명하였다. 중국 스스로 자신을 강대국으로 규정하고 강대국처럼 행동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식 강대국 외교는 우선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주권과 권리 수호로 나타났으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설과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으로 구체화되었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구상인지 여부는 논쟁적이지만, 중국의 지정학적 비전을 담은 중장기 전략인 것은 분명하다. 일대일로 전략은 육상 실크로드 이외에 해상 실크로드를 이야기하고 있어, 더 이상 대륙국가로 머무르지 않으려는 중국의 이상을 보여준다.

  이 같은 중국의 부상에 가장 먼저 반응한 국가는 일본이었다. 아베 전 총리는 2006년 자신의 저서에서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하는 안보협력을 언급하였으며, 2007년 인도 의회 연설에서 4개국 안보대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2012년 총리로 복귀한 아베는 아시아 민주주의 안보 다이아몬드(Asia’s Democratic Security Diamond)를 제안하여 유명무실해진 4개국 구상 부활을 시도하였으며, 2016년 8월 아프리카 개발회의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Free and Open Indo-Pacific Strategy)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이후 2017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다낭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담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비전’을 주제로 연설하면서, 아베의 구상이 미·일 공동의 구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17년 이후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들에서 중국은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되었다. 이런 인식이 이후 미·중 전략경쟁의 지정학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2019년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에서 차례로 발표된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과의 경쟁적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시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계가 지적되기도 하였다. 예컨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방하고 TPP*를 탈퇴한 미국의 정책이 이 지역에서의 동맹 강화나 지역 네트워크 구축과 병행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시기 내내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지속되었고, 2020년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 위기는 미·중 갈등을 더욱 확대시켰다.
*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rans-Pacific Partnership agreement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관세 철폐와 경제통합을 목표로 추진된 협력체.
미국과 일본이 주도했으나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하면서
명칭을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로 변경하였다.

  2021년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되었지만 바이든 정부에 들어서도 미·중관계는 경쟁적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일방적인 경쟁에 치우쳤던 트럼프 정부 시기보다는 균형 잡힌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동맹 활성화와 파트너십 업그레이드를 표방한 바이든 정부의 정책방향을 고려할 때,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4자 안보대화(Quad) 및 한국·일본 등 주요 동맹국과의 관계 강화가 예상된다. 첨단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한 미·중 탈동조화 추세가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 국가 간 연대 노력과 연계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2019년 4월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37개국과 국제기구 지도자 40명이 참석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회의가 열렸다. ⓒ연합

미·중 사이, 사안별 협력으로 국익 지켜야
  문제는 미·중 전략경쟁 심화로 말미암아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한국의 이중전략이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이 한·미·일 vs 북·중·러의 신냉전 구조 강화로 이어질 경우 북핵 문제 해결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나아가 미·중 간의 정치군사적 갈등이 심화되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등도 새로운 이슈가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미·중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요구받게될 우려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우선 우리의 국익과 이해관계가 무엇인지 판단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다. 미·중 전략경쟁에서 일방에 기울어지기보다는 사안별 협력을 추진하면서 우리의 국익 극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때 우리 외교가 지향하는 가치와 원칙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과 중국이 한국 외교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혹은 어떤 이슈에서는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원칙에 기초한 일관된 정책을 통해 우리의 외교적 자산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둘째, 미·중의 이해가 교차하는 전략적 이슈와 지정학적 공간에서 한국의 가치를 제고해야 한다. 양자택일에 몰리지 않기 위해서는 양자 모두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한반도 주변에 신냉전 구조가 강화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국제질서의 구조적 제약이 커지면 한국 외교의 정책적 자율성이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 시점에서 한미동맹이 한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각자도생의 국제질서 속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점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