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52021.05

북한 여성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2019년 6월 30일 남·북·미 정상 판문점 회동 시 동행한 김여정 부부장과 최선희 부상 ⓒ연합

북한 포커스

북한을 움직이는 여성들



북한에서 여성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대표적인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북한 여성의 삶을 엿본다.


  사회주의국가에서 여성은 ‘혁명의 한 쪽 수레바퀴’로 지칭되며 경제건설 및 발전, 정치활동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요구받는다. 북한도 해방 이후 사회개혁 조치를 단행하며 그동안 권리를 갖지 못했던 여성들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여성을 정치·사회적 주체로 자리매김시켰다. 북한 여성은 생산현장과 가정에서 노동자, 혁명가, 아내, 어머니로서 그 역할을 수행해야 했고, 북한 당국은 여성들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담론적 장치들을 마련했다. 자녀양육을 사회화시키는 조치를 시행하고,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공식 연설을 통해 여성의 정치·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문화적으로도 여성을 민족의 계승자로 위치시키며 혁명후 세대를 재생산하고 전통적, 민족적 여성성을 통해 민족을 체현하는 역할을 부여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북한 당국은 위기를 극복하고 체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체제의 우월성과 정통성을 전통과 민족성에서 찾았고, 그에 따라 도덕과 예의, 양보, 존경 등의 가치를 사회주의 생활양식으로 내세웠다. 특히 이러한 생활양식은 주로 여성들이 실천할 것으로 담론화되었는데,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옷차림 등을 규정해 여성을 통해 민족주의 담론을 구현하고자 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북한은 여성의 역할을 재강조했다. 특히 경제위기와 시장 확산에 따른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며 모성담론을 강화하고, 어머니날을 제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처럼 북한 정부 수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국가적 담론 안에서 북한 여성은 혁명의 한 쪽 수레바퀴로서 그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북한 정부 수립 이후부터 북한 여성은 혁명의 한 쪽 수레바퀴로서 그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사진은 2019년 평양봄철국제상품전을 찾은 북한 여성들 ⓒ연합
여성, 북한 경제의 주요 축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 여성은 북한의 주요 경제활동 주체로 활약하고 있다. 2016년 통일연구원의 『북한 전국 시장 정보: 공식시장 현황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2003년 종합시장 개설 이후 북한의 공식시장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은 북한 전체인구 중 매대 장사가 가능한 20~65세 여성 인구의 약 15%인 735만 6,183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비공식 시장까지 포함하면 시장 관련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여성들이 서비스 영역(호텔·여관·숙소·백화점·상점·시장·식당·편의·오락시설)의 지배인을 주로 담당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북한 여성은 국가경제, 가족경제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하며, 북한 경제 전반의 주요 행위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상적 여성상부터 정치·사회 엘리트까지
  해방 이후 북한 여성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벌여왔고, 최근에도 시장뿐만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 여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남한 사회에 알려진 대표적인 북한 여성은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 김일성의 어머니인 강반석이다. 김정숙과 강반석은 김일성 가계를 혁명전통화하는 과정에서 항일혁명의 투사이자, 최고지도자를 돕는 아내이자 어머니로 알려졌다. 북한의 이상적 여성상으로서 김정숙과 강반석에 대한 학습도 지속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잘 알려져 있는 북한의 천리마운동 기수인 길확실도 북한에서 유명한 여성이다. 1960년 평양제사공장 반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모범일꾼으로 김일성을 만났고 이후 천리마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졌다. 1980년에는 노력영웅으로 상을 받고 1987년 김일성훈장, 1995년 김정일표창을 받을 만큼 북한 당국이 생산 영역에서 중요하게 선전하는 여성이다. 이 외에도 김정일 시대 들어 당, 내각과 행정 분야 등에서 활약한 여성 엘리트들이 있다. 내각의 경우 정무원 부총리 겸 경공업위원장을 역임한 김복신이 있고, 김영숙 농업성 부상, 림경숙 상업성 부상, 한광복 기계공업성 부상 등이 있다. 이들은 해당 분야에서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부상의 위치까지 오른 것으로 파악된다.**

**차남희·정성임(2010), “국방위원회의 강화와 여성 엘리트의 역할”,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편, 『선군시대 북한 여성의 삶』,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김정은 시대 들어서는 과거에 공식석상에서 쉽게 보기 어려웠던 북한 여성들의 활동이 가시적으로 많이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리설주, 김여정, 현송월, 최선희가 있다. 김정은의 아내 리설주는 지금껏 북한 최고지도자의 배우자가 공식석상에 나타난 바가 없었던 과거와 달리, 주민을 만나는 현장에서부터 남북대화의 자리에까지 등장하며 최고지도자의 배우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여정은 현재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역임하고 있고, 2018년 1월 이후 남북대화의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모습을 전파를 통해 볼 수 있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북한의 대미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현송월은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자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엘리트로서 2018년 평창올림픽을 통해 우리 사회에 알려졌다.

  과학기술 분야, 경제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여성들도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건설계획 작성 프로그램인 ‘천지개벽’을 개발한 김혜숙, 김일성의 녹음문헌을 영구보존할 수 있는 금속레코드판을 개발한 한영라, 멀티미디어 프로그램 개발의 선구자 최순영, 국가과학원 생물공학분원 줄기세포연구소 당 세포비서인 림영희, 농약개발로 노력영웅 칭호를 받은 최승복 등이 있다. 이들은 과학기술 발전과 경제강국 건설이라는 국가적 요구에 부응한 이들로 여겨지며 영웅으로 호명되었다.

  또한 최고지도자를 보위한 이들에게는 공화국영웅의 칭호를 부여하는데, 김정은 시대에는 불의의 정황 속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안전하게 지켰다는 공로로 평양시 교통보안원인 리경심이 공화국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체육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안금애, 림정심, 김금옥도 체육영웅 호칭을 부여받았다. 안금애, 림정심은 2012년 제30차 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김금옥은 2013년 제14차 아시아마라톤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송현진(2021), “북한 모성영웅의 등장 배경과 의미”, 이화여대 북한연구회 엮음, 『북한여성, 변화를 이끌다』, 서울: 도서출판 선인.


  북한 당국의 정책적 기조에 부응하는 여성들의 활약은 영웅이나 훈장이라는 포상을 통해 그들의 성과를 인정해주고, 이들의 활약을 선전함으로써 주민들을 정치사회화하는 데 활용되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1990년 이후 줄어드는 출산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다산을 강조했다. 자녀를 많이 낳은 여성들을 모성영웅이라 칭하고 대내적으로 선전함으로써 출산을 장려한 것이다. 김일성은 1961년 제1차 어머니대회에서 ‘자녀 교양에서 나타나는 어머니들의 임무’라는 연설을 통해 가정혁명화의 주체가 여성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이후 북한 당국은 지속적으로 어머니로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 그러한 맥락 속에서 2012년 11월 제4차 전국어머니대회를 개최하고, 김일성이 제1차 어머니대회에서 연설을 한 11월 16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하면서 여성의 출산과 어머니로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3월 8일 북한 각지에서 열린 3·8 국제부녀절 기념공연에서 춤을 추는 북한 여성들 ⓒ연합

북한 사회가 유지 혹은 변화하는 데
북한 여성의 기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주요 분야에서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지속·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차원에서 향후 남북교류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는 여성들 간의 교류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
남북교류의 중요한 파트너로서 여성교류 확대 필요
  다양한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낸 인물도 있지만, 북한의 여성들은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을 중심으로 조직생활과 경제적 지원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다. 결혼한 여성들로 조직된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은 북한의 주요 대중조직 중 하나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이 남북 여성교류의 중요한 파트너라는 것이다. 1991년 처음 시작된 남북 여성교류에 등장한 북한 여성은 여연구(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 3인이었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1차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에 여연구 등이 참여하면서 남북 여성교류가 시작되었고, 이들이 참여하는 여성교류는 제4차 토론회까지 이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는 당시 조선민주주의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박영희(민화협 부부장 및 여성부장 겸직), 조선민주주의여성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명숙, 상무위원 강춘금, 부위원장 홍선옥 등이 남북 여성교류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최근까지도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은 남북 여성교류의 파트너이다. 현재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장춘실이 맡고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외무성 소속 여성들이 국제 회의나 논의 자리에 등장하면서 과거보다 여성들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1992년 9월 1일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에 참석하는 우리측 여성 대표단과 북측의 대표단이 판문점을 걸어가고 있다. ⓒ연합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북한 사회가 유지 혹은 변화하는 데 북한 여성이 기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주요 분야에서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지속·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 차원에서 향후 남북교류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는 여성들 간의 교류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 더욱이 남북 여성교류가 시작된 지 30년이 된 올해, 북한 여성의 다양한 삶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여성교류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의 한반도가 성평등한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남북한 여성의 만남을 통해 상호이해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한 준비를 지금부터 해나가는 차원에서 북한 여성의 다층적인 삶의 모습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길 기대한다.

조영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