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52021.05

분석

윤곽 드러나는 미국의 대북정책
이에 대응하는 북한의 대미전략



미국의 대북정책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역대 북·미 대화의 성과와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을 검토하고 북·미 대화의 재개 가능성을 살펴본다.


  조만간 발표될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한 축인 북·미관계의 향방을 결정할 요소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4월 중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에 싱가포르 합의 계승을 촉구했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일각에서는 5월 하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새로운 대북정책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과거 북·미대화의 성과가 미국의 어떠한 대북정책 하에 이루어진 것인지 살펴보고,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및 북한의 대응 전략에 대한 전망을 통해 향후 북·미대화 재개의 가능성을 고찰해 본다.

역대 북·미대화의 성과와 한계
  북·미대화의 첫 성과인 1994년 10월 제네바합의문은 체제 위기 직전의 북한에 대하여 클린턴 행정부의 ‘관여와 확대(engagement and enlargement)’라는 대외정책 기조에 따라 도출되었다. 1993년 1차 북핵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미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국으로 등장한지 얼마되지 않아 인접국 침략 및 핵개발 등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행위에 군사제재까지도 부과하며 응징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1993년 등장한 클린턴 행정부는 ‘관여와 확대’ 전략을 통해 외교적 관여의 방법으로 기존의 적대국들이 미국 중심의 국제규범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을 선호했다. 물론 1994년 봄의 위기 등에서 알 수 있듯 미국과 북한 사이의 긴장은 불가피했지만, 당시 북한은 구소련과 중국의 에너지 및 식량 지원 중단으로 1993년부터 경제난이 확대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북한 모두 외교적 타협을 선호함으로써 1994년 10월 제네바합의라는 북·미대화의 성과가 도출될 수 있었다. 제네바합의의 내용은 북한이 건설 중이던 흑연감속로를 경수로로 대체하고 추후 특별사찰을 통해 북핵 의혹을 해소한다는 것이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은 부시 2기 행정부가 ‘새로운 포괄적 접근법(a new broad approach)’을 마련하고 북한이 외교적 성과를 통해 체제 정당성을 강화하고자 하면서 만들어진 성과였다. 부시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민주주의 확산 기조를 제시하자 당시 북한 김정일 체제는 이에 반발하면서 핵보유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를 비롯한 부시 2기 행정부 외교안보팀은 북한에 대해 군사적 압박만이 아니라 경제적·외교적 유인책을 함께 제시하겠다는 ‘새로운 포괄적 접근법’을 마련했다. 그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체제를 우회적으로 인정하면서 6자회담이 재개되였다.

  한편, 북한은 핵보유 성명 이후 내부적인 사회주의체제와 이념 강화에 필요한 환경 마련을 위해 9·19 공동성명 발표에 합의했다고 할 수 있다. 9·19 공동성명은 북한의 모든 핵무기·핵프로그램의 포기와 NPT체제 복귀 공약에 대하여 한·미·일·중·러 5자가 안전보장, 원자력, 정치관계, 경제·평화체제 분야에서 상응조치를 제공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후 BDA 제재* 를 둘러싼 갈등으로 북한의 1차 핵실험이 뒤따랐지만, 미국에서는 집권당인 공화당의 지지율 하락 속에서 북핵 외교의 성과를 내기 위해 9·19 합의의 결실을 얻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 BDA 제재
2005년 미국이 돈세탁을 한다고 의심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있는
북한 계좌를 동결한 제재조치

  아직까지는 평가가 조심스럽지만 가장 최근 북·미대화의 성과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의 6·12 싱가포르 합의이다. 싱가포르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시부터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를 밝혔던 배경과 북한이 핵무력완성 선언 이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경제발전을 위한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비핵화 외교에 나섰던 조건 하에서 마련될 수 있었다. 싱가포르 합의는 미국의 대북체제 안전보장 용의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부동의 의지를 담고 있다. 이로써 북한은 자원소모의 원인이 되는 미국의 군사적 압박을 완화할 수 있었고,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비핵화 공약을 다시금 확약받을 수 있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하는 민주주의와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적대시정책 철회가 충돌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싱가포르에서 만난 북·미 정상 ⓒ연합

상향식, 다자적, 동맹 중시하는 바이든의 대북정책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의 전통적인 대외정책 명분인 민주주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고자 함에 따라 트럼프 시기와 같은 파격적인 북·미 정상외교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내적 통합과 국제적 지도력의 재건을 위해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할 것임을 천명했고, 3월에 미국 백악관이 발표한 잠정국가안보전략지침(Interim National Secuirty Strategic Guidance)에서도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와 단합하여 미국의 민주적 가치를 수호할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의 권위주의체제에 대한 미국의 정상외교는 구체적인 비핵화 성과가 있는 경우에만 진행될 것이다. 지난 대선 기간 바이든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은 “핵능력 축소에 동의한다는 조건에서만(On the condition that (Kim) would agree that he would be drawing down his nuclear capacity)”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외에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와 달리 상향식(bottom-up) 외교, 동맹 중시, 다자 긍정, 단계적 접근 등의 특징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는 신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시작되기 직전이라 그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향후 전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북·미대화의 외교적 성과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추구할 것이냐는 문제이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와 비확산 등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북한과 현실적인 핵협상을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잠정국가안보전략지침에서도 북핵 문제를 다루기 위해 외교관들에게 핵위협 감소를 위해 권한을 일임할 것(empower)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미국이 북한과의 외교적 협상을 위해 서두를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오늘날 바이든 행정부의 상황은 북핵 외교의 조기성과가 필요했던 부시 2기 행정부 시기와는 다르다. 미국은 대중국 견제를 위해 미군의 전 세계 주둔 태세를 재검토하고 대중국 군사 전략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6월 경에는 그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데, 북핵정책 방향은 그 이후에 보다 최종적인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협상재개 시 북한은
체제 고수 입장에서 벗어나기보다는
바이든 시기 미국의 대북인권,
민주화 압박을 완화하고 북한의
안보적 요구를 미국이 받아들이도록
팃포탯 맞대응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미국에 맞선 북한의 ‘팃포탯’ 맞대응 전략
  2021년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강조를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정치적 압박으로 이해하고, 미국의 대북정책이 변화하기 전에는 북·미협상 재개는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실제로 북한은 금년 2월 이래 미국 측의 북·미접촉 제안을 기피했다. 또한 3월 중순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한 즈음하여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금강산국제관광국’ 해체를 언급하며 한미공조 확대 가능성을 견제했다. 그와 함께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도 미국의 적대시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어떠한 북·미접촉도 곤란하다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김여정 부부장의 경고가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드러냈다. 대북제재와 코로나19 등의 악조건 속에서 체제불안 억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북한에게 미국의 민주주의 원칙 강조는 북한의 체제안정화 노력과 배치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북한은 미국에 대해 보다 강력한 반발 신호를 보내고자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북한의 도발 수위가 예상보다 낮은 것은 경제침체로 인한 역량부족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북한은 향후 미국에 대해 ‘팃포탯(tit for tat)’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팃포탯이란 상대방이 협력하면 자신도 협력하고, 상대방이 협력하지 않으면 자신도 협력하지 않는 맞대응 전략을 의미한다. 상대방을 자신의 요구에 협력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전략으로 유명하다. 얼마 전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대미외교의 방침으로 천명한 ‘강대강 선대선’의 입장을 팃포탯 전략의 예고로도 이해할 수 있다. ‘강대강 선대선’ 원칙은 미국의 적대시정책 철회라는 북·미관계 개선 조건과 함께 소개되었다. 최선희 제1부상의 3월 18일자 담화에서도 ‘강대강 선대선’이라는 대미정책 원칙은 반복적으로 강조되었다. 이렇게 볼때, 향후 협상재개 시 북한은 체제 고수 입장에서 벗어나기보다는 바이든 시기 미국의 대북인권, 민주화 압박을 완화하고 북한의 안보적 요구를 미국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팃포탯 맞대응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당장 북한의 북·미대화 의지는 강하지 않다. 물론,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위험을 극복하고 경제발전을 통한 체제정당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북한도 북·미합의가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 북한은 체제안정을 고려하여 유사한 체제와 이념을 가진 중국, 러시아, 쿠바와의 관계 강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한 조치가 체제안정에 도움이 안될 때에야 북·미대화를 모색할 것이다.

1994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가운데)과 만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왼쪽에서 세 번째) ⓒ연합

치킨게임과 전격회담 사이,
1994년 북·미관계 재현 가능성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단기적으로 북·미대화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현재는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하는 민주주의 이념과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적대시정책 철회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강조하는 민주주의는 북한에게는 정치적 위협이다. 북·미 간의 대립구도는 북한으로 하여금 체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할 것이다. 그나마 북한이 내부 경제·방역위기에 주력해야하기 때문에 높은 수위의 도발을 감행하기 어려운 것이 한반도의 긴장수위를 관리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편, 북·미 간의 실무적인 협상노력이 재개되어도 미국의 원칙적인 입장과 북한의 팃포탯 전략이 만난 결과 북·미협상은 1994년 봄처럼 북·미가 압박경고와 도발적 행동을 주고받는 치킨게임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갈등 완화 등 국제적인 요소에 따라서 북·미대화가 급격히 진행될 가능성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미·중 간에 기후변화, 핵비확산과 같은 국제 문제에 대한 협력이 강화되면 미국이 북·미대화에 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 또한 이것이 북한의 대중 의존도는 낮추게 하여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합의를 더욱 진지하게 추구하도록 할 수도 있다. 북한의 어려운 내부 사정에 따라 국제환경만 뒷받침된다면 1994년 김일성-카터 회담과 같은 전격적인 북·미합의도 가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중구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