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52021.05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창설 40년 기획

내가 기록하고 기억하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1991~1995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창설 40년을 맞아 국민과 함께한 ‘그때 그 시절’ 옛 추억을 소환했다.
이번 호에는 1991년에서 1995년까지의 평화통일 활동을 소개한다.

-네 번 째 이 야 기-



오~ 필승 코리아!
똘똘 뭉쳐 2002 월드컵 유치 기원
빨간 등산복을 입고 월드컵 유치 기원 등산에 나선 자문위원들.
2002년 빨간 티셔츠를 입은 붉은악마 응원단이 떠오른다.
2002년 월드컵 유치기원 등산(거창군협의회, 1995.5.21.)


이산가족은 만나야 합니다!
이산가족 상봉 위한 봉사
자문위원들은 이산가족 재회 촉구를 위한 시민의 지지를 모으고,
이산가족의 민원을 맡아 처리하기도 했다.
남북 이산가족 재회 촉구 지지 서명(부산 동구협의회, 1993.11.22.)
이산가족 민원업무를 위한 북한주민 접촉신청 현판식(달서구협의회, 1994.8.1.)


우리 협의회 자매결연 역사도 찾아보세요!
인연의 시작, 자매결연
청주시협의회와 미국 애틀랜타협의회가 자매결연을 맺었다.
20년이 넘게 이어지는 인연의 시작이 사진에 담겼다.
청주시협의회와 애틀랜타협의회 자매결연(청주시협의회, 1994.11.5.)


이 정도 라임은 기본!
SNS 없던 시절
홍보는 이렇게!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대표적인 홍보 수단은 현수막과 벽보였다.
그 시절 자문위원들은 함축적이고 효과적인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용인시협의회 평화 메시지 현수막(용인시협의회 1994.)
밀양시협의회 평화 메시지 벽보(밀양시협의회 1994.7.3.)

마음도 통일, 패션도 통일!
깔맞춤 모자쓰고 나무 심기
빨간 모자를 맞춰 쓰고 나무를 심는 진주시협의회 자문위원들.
이때 심은 나무는 지금 얼마나 자라 있을까?
통일강연회와 식목행사(진주시협의회, 1992.4.14.)


내가 기억하는 평통
40대에 시작한 평통,
“이제 70대 할머니 자문위원이 되었습니다”
처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이 된 것은 1991년 5기 때였다. 벌써 30년 전 일이다. 자문위원되는 것이 까다로운 시절이었지만 나는 무주군 여성단체협의회 초대 회장을 맡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체 16명의 자문위원 중 군의회 의원 7명이 당연직으로 있었고, 활동이 많은 사회단체장 7~8명 정도가 참여했다. 대행기관장인 군수가 회장을 맡던 시절이다. 이후 30년간의 자문위원 활동기간을 모두 더하면 14기 동안 평통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1993년 백두산을 가기 위해 중국을 견학했던 일이다. 여행 자율화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여서 ‘특정국가 출입 비자’를 내고 다녀왔을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만큼 감동적이었다. 모든 것이 어찌나 크던지… 그동안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음을 실감하고 ‘백문이 불여일견’임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히 자문위원으로서 평화통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며 지역사회에서 평화통일 공감대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 무주군지부, 여성문학동인 산글회, 소방대부인회, 여성단체, 무주합창단 등에서 활동하면서 여성들과 함께 평화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러한 노력으로 7기 때는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이와 함께 협의회 간 자매결연을 맺어 상호 방문하고, 지역 군부대를 방문해 위문품을 전달했던 일들도 기억에 남는다.

40대 자문위원이 이제 70을 넘긴 할머니 자문위원이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한반도가 평화통일 되는 그날까지 아자! 아자! 힘을 내자!
전선자 자문위원(무주군협의회)

아시아경기대회 참여 기념품 및 자문위원 기념품(홍성군협의회 최승천, 1986.)


※ 시기별로 매월 응모를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