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52021.05

예술로 평화

음악 싣고 달리는
DMZ 평화 열차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때로는 단순한 캐치프레이즈가 모든 걸 대변하기도 한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이하 피스트레인) 이 내건 이 슬로건은 어쩌면 지금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구호가 아닐까.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한반도의 강원도 철원 DMZ 일원에서 2018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피스트레인은 음악을 통해 평화를 경험하고, 동시대 평화를 탐색하며 발견하는 대중친화적 뮤직 페스티벌이다. 음악을 내건 페스티벌에서 연대와 평화의 언어를 먼저 이야기하는 축제는 지금껏 한국 음악 페스티벌에선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피스트레인은 그간 우리가 경험한 단순한 음악 축제와는 결이 다르다.

*사진 출처: DMZ 피스트레인 홈페이지
냉전의 상흔을 담은 철원 DMZ에서 평화의 노래를
  1999년 인천 트라이포트 페스티벌을 반면교사 삼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후신인 펜타포트락페스티벌이 만들어졌다. 그 뒤로 지산밸리록페스티벌, 시티브레이크, 슈퍼소닉, 그랜드민트페스티벌(GMF),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서울재즈페스티벌 등 한국은 짧은 시간에 페스티벌 공화국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평화와 연대 같은 이상적인 가치를 전면에 내건 페스티벌은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한국의 페스티벌은 이른바 ‘헤드라이너’ 싸움이었다. 축제의 마지막에 오르는 헤드라이너가 누구인지에 따라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도가 달라졌다. 매년 출연진이 공개된 뒤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여름 록 페스티벌이 대여섯 개 정도 있을 때는 올해는 누가 이겼다거나, 출연진 때문에 어딜 가야겠다는 글이 주를 이루었다. 매번 같은 상황 속에서 피스트레인의 등장은 신선하고 특별했다.

  피스트레인을 말하기에 앞서 잔다리 페스타를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잔다리 페스타는 매해 가을 홍대 인근을 중심으로 열리는 쇼케이스 페스티벌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될 정도로 페스티벌이 열리는 기간 동안 해외 유명 음악계 인사들이 홍대를 찾는다.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기획자인 마틴 엘본도 그렇게 한국을 찾았다가 철원 DMZ를 방문하고는 한반도 냉전 지대의 아픔과 상흔을 간직한 철원에서 음악 페스티벌을 통해 평화를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다.

*사진 출처: DMZ 피스트레인 홈페이지

  이후 분단의 상징이자 금기의 상징이었던 DMZ를 평화의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음악을 통해 정치·경제·이념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자’는 기본 취지 아래 2018년 첫 축제 무대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단순히 음악가들이 서는 무대만이 아니라 평화와 문화, 예술을 논하는 콘퍼런스도 열렸다. ‘음악을 통하여 정치·경제·이념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자’는 말을 글로 쓰는 건 쉽지만 실제론 막연하기만 한 피스트레인의 취지를 관객에게 경험케 하려 했다.

  ‘서로에게 선을 긋지 않는 것’은 정신이고, ‘함께 춤을 추는 것’은 육체적 행위이다.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일은 당연히 어렵다. 사무국 내부에서조차 음악으로 평화를 구현하는 것에 대해 수많은 논의가 필요했다. ‘평화’란 두 음절의 말이 얼마나 모호하고 막연한지 모두가 알고 있기에 피스트레인은 계속해서 고민했다. 남북의 평화, 마음의 평화, 각자의 평화가 있다. 서로 다른 평화의 정의 속에서 그들은 음악을 통해 평화를 경험하고, 동시대 평화를 발견·탐색하고, 비상업적이지만 대중친화적인 페스티벌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사진 출처: DMZ 피스트레인 홈페이지

피스트레인만이 할 수 있는 고민의 가치
  피스트레인 공식 홈페이지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올라왔고, 음악이 평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다양한 무대가 연출됐다.

  가령 철원 노동당사 앞에서 군가를 주제로 펼쳐진 ‘우정의 무대’는 고민 없이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무대였다. 일반 대형 페스티벌 무대였다면 낮 시간에 배정돼 홀대받았을 섹스 피스톨즈의 글렌 매트록을 피스트레인은 ‘펑크의 정신’으로 예우해주었다. 글렌 매트록과 차승우, 한경록(크라잉 넛)이 함께한 무대는 세대와 인종을 뛰어넘은 펑크의 연대였고 우정의 연대였으며 평화의 연대였다. 각각의 무대, 각각의 프로그램에 비록 모호하더라도 피스트레인만이 할 수 있는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페스티벌 현장에는 세대의 구분도 성별의 구분도 없다. 무대에는 관객 대부분이 알지 못할 세계 곳곳의 아티스트가 선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에서 온 ‘세운쿠티&이집트 80’의 음악을 즐기며 춤을 추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작은 평화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개인의 작은 평화가, 그리고 각자의 작은 평화가 모여 만들어 내던 연대는 어느새 하나의 큰 평화가 되었다. 여전히 모호하더라도 현장에 있던 이들 모두가 한 번쯤은 평화의 의미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피스트레인의 가치는 충분하다.
Written by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