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52021.05

지난 4월 19일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를 멈춰달라는 시위가 열렸다. ⓒ연합

국제

인종혐오, 어떻게 대응할까?

모범적 소수인종 신화 넘어
차별에 맞선 연대의 목소리 내야



코로나19 이후 서구권을 중심으로 아시안 증오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증오범죄의 원인을 진단하고 과제를 모색한다.


  지난 3월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총격사건은 아시안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21세 백인 남성 애런 롱(Aaron Long)이 ‘영스 아시안 마사지’에 침입해 1차 총격을 가하고, 이후 다른 두 곳의 마사지 업소에서도 총기를 난사해 8명을 살해했다. 그중 6명이 아시안, 4명이 한인 여성이었다. 이후 애틀랜타 경찰은 브리핑에서 범인의 진술을 인용, 그가 성 중독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으며 인종적 증오범죄로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언급했다. 또한 총격 당일은 “그에게 정말 나쁜 날이었다”고 동정적으로 묘사해 비난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나 범인이 SNS에 중국인 혐오 글을 올렸다는 것이 공개돼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계획적인 증오범죄라는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 이 사건 외에도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 3월 이후 아시안 혐오 범죄가 전국적으로 폭증했는데, ‘스톱 AAPI 헤이트(아시아·태평양계 증오범죄를 다루는 시민단체)’ 웹사이트에는 3,800건의 혐오사건이 접수됐다.

아시안 차별과 혐오의 역사
  미국에서 아시안 이민과 차별의 역사는 무려 19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40년대 골드러시와 함께 중국인 이민자들이 유입되었고, 1860년대 대륙횡단철도 건설에 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투입되었다. 1870년대 미국 경제가 악화되고 구직난이 심화되자 저소득층 백인들 사이에서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른바 ‘황색 공포(Yellow Peril)’가 퍼져나갔다.

  이러한 인식은 차별적인 법률과 이민정책으로 뒷받침되었으며, 아시안들은 미국 사회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구조적 차별에 시달리게 된다. 1854년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백인의 범죄에 대해 아시안은 증인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여기에는 아시안들은 지능이 떨어지고 믿을 수 없다는 편견이 깔려 있었다. 이에 따르면 아시안들은 백인에게 살인이나 강간을 당해도 다른 백인이 증언해주지 않는 한 법적 보호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수 없다. 1871년 백인과 중국인 폭력조직 사이의 갈등으로 20명 이상의 중국인이 사망한 ‘중국인 대학살(The Chinese Massacre)’이 벌어지는데, 백인인 살해 용의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부적절한 목적을 가졌다고 의심되는 이민자의 입국을 금지하기 위해 1875년 통과된 ‘페이지법(Page Act)’은 아시아 여성들이 성매매를 위해 미국으로 들어온다는 편견을 바탕으로 이들의 입국을 제한하는 데 활용되었다. 아시안에 대한 차별은 1882년 중국인의 이민과 시민권 부여를 금지한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에서 정점을 찍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면서 아시안에 대한 차별은 일본계 미국인에 집중된다. 1942년 미국은 일본계 미국인을 ‘적성외국인’으로 간주하고, 적법한 절차도 없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행정명령만으로 약 12만 명을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등의 분리 수용소에 강제 수용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일본계 미국인 상당수는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려 미군에 입대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에서 일본계로 오인해 중국인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자(당시 중국은 장제스 치하의 미국 동맹국), 「라이프」지는 1941년 ‘일본인과 중국인을 구분하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두 민족의 외모 차이를 설명하는 황당한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전쟁 이후인 1948년 미국은 일본인 피해자들에게 3,800만 달러를 배상했고,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은 다시 공식 사과와 함께 생존자에게 2만 달러를 배상했다.

  이런 역사는 미국의 국내외적 상황에 따라 아시안들이 얼마든지 차별과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적성국이었지만, 독일계에 대해서는 공공연한 차별정책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숫자가 너무 많았고 무엇보다 백인이었기 때문이다.

1941년 「라이프」지에 실린 ‘일본인과 중국인을 구분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인종차별적 기사 ⓒ필자 제공

모범적 소수인종의 신화
  2차 대전 후 일본이 경제와 안보에서 미국의 밀접한 동맹국이 되자 일본인에 대한 인식은 ‘일본도를 휘두르는 야만적인 적군’에서 ‘근면 성실하고 예의 바른 이들’로 극적인 전환을 이룬다. 1965년 이민법 개정으로 인종 차별적 요소들이 폐지되고 미국에 도움이 되는 기술, 학력 등을 갖춘 전문직 이민자가 선호되면서 동아시아계, 인도계 이민자들이 늘어났다. 이런 와중에 ‘모범적 소수인종의 신화(Model Minority Myth)’라는 개념이 탄생한다. 일본계 미국인들의 성공을 다룬 윌리엄 피터슨의 1966년 「뉴욕 타임스」 기사가 그 출발점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안들은 문화적으로 근면 성실하고, 학업 성취도가 높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지위도 높아서 타 인종보다 성공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아시안을 칭찬하는 내용 같지만 이는 심각한 인종적 편견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이 논리는 1960년대 시민권 운동 등으로 미국의 구조적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이 분출될 때 그에 대한 ‘반대 논리’로 개발되었다. 자신들의 특권이나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을 부정하고 싶었던 백인 주류가 자신들을 능가하는 아시아계의 평균 수입 통계 등을 인용하며 이제 미국에는 백인의 특권이나 구조적 인종차별이 사라져서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만일 소수인종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노력 부족이라는 논리를 퍼뜨린 것이다. 이는 흑인을 위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삭감하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아시안을 획일화하고, 일부 성공한 이들로 아시안 전체를 과잉대표하는 문제도 있다. 아시안을 세분하면 인도계처럼 학력과 수입이 높은 그룹도 있지만 베트남계 등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그룹도 있는데, 최근 통계에서도 아시안 7명 중 1명은 서류 미비자(170만 명)이며 4분의 1이 빈곤선 이하로 살고 있다. 모범적 소수인종의 신화는 아시안에 대한 지원을 삭감하고, 역차별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또한 아시안에게 가해지는 차별의 벽을 감추는 역할을 한다. 아시안은 IT, 의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정치, 비즈니스, 스포츠, 미디어에서 과소대표되고 있어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이라는 표현이 존재한다. 같은 교육수준이어도 아시안은 백인보다 임금이 낮고, 포춘 500대 기업의 이사진 중 아시아·태평양계는 단 3%에 불과하다. 영화나 대중매체에서 아시아인이 주역을 맡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심지어 백인이 아시아인의 배역을 맡는 ‘화이트워싱(Whitewashing in film)’도 빈번하다.

  상당수 아시안은 백인들이 만들어 놓은 이러한 신화를 내면화하는 경향도 강하다. 인종편견으로 인해 자신이 겪는 차별이나 빈곤을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의 노력 문제로 여기고, 자신이 겪는 심각한 정신적, 감정적 문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경제·심리적 문제는 노년층이나 여성들에게서 더욱 심각하다. 미국의 15~24세 사이 아시아 여성의 자살률은 같은 나이의 백인 여성보다 무려 30% 높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에서 보듯 아시안에 대한 편견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동반하는데, 아시안 증오범죄 피해자의 70%가 여성이라는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역사적으로 2차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등 아시아의 전쟁들과 일본, 한국,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의 미군 주둔의 경험은 기지촌 형성으로 이어졌고 태국 같은 국가는 미군들의 휴양지 역할을 했다. 이러한 경험은 아시아 여성을 백인 남성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존재로 왜곡하고 과도하게 성적 대상화하는 소위 ‘황색 열병(Yellow Fever)’을 강화했다.

  결국 ‘황색 공포’든 ‘황색 열병’이든 그 공통점은 아시안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고 백인 중심적 시각과 필요에 따라 공포 혹은 욕망의 대상으로 비인간화, 객체화한다는 문제가 있다.


인종차별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던 아시안,
다시 혐오의 대상으로

  한편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미국이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등 70년대에 데탕트가 진행되면서 북한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적성국은 사라지게 된다. 국내적으로도 고질적인 흑백 갈등 문제가 지속되면서 아시안은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 대체로 ‘무해’ 하고 ‘유익한’ 소수인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상당수 아시안은 교육열과 근면 성실을 바탕으로 사회경제적 신분 상승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적어도 최근 몇십 년간 아시안은 미국 사회의 극심한 인종차별과 갈등에서 상대적으로 한 발 떨어져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랍계, 무슬림들은 테러범 취급을 받고 극심한 차별과 공격에 시달렸고,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건에서 보듯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들의 폭력이나 살인 등의 증거물이 나오면서 이에 대한 분노가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BLM 운동으로 폭발했다. 트럼프 집권 이후 강력한 반이민정책과 함께 중남미 이민자들을 대놓고 범죄자, 강간범 취급하는 경향이 시작되기도 했다. 이 와중에 모범적 소수인종의 신화를 내면화한 아시안들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를 ‘타 인종의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었다.

  2016년 대선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으로 미국 백인 중산층이 쇠락하는 현상에 집중하며 이들의 불만을 중남미 이민자들이나 중국으로 배출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와 더불어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Chinese Virus)’, ‘쿵 플루(Kung Flu)’라 부르며 중국이나 아시안에 대한 분노를 부추겼다. 이에 따라 중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은 극도로 악화되었는데, 작년 4월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긍정 26%, 부정 66%로 사상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불과 10년 전인 2010년까지만 해도 긍정 49%, 부정 36%였던 것이 완전히 반전된 것이다.

  역사와 현실을 종합해 보면, 아시안들은 이민 역사 초기부터 차별에 시달렸지만, 미국 백인 주류 사회의 필요에 따라 한동안 모범적 소수인종의 신화를 내면화하며 극심한 인종 갈등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다가 최근 다시 증오와 혐오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언제든 희생양 될 수 있는 구조적 차별
  아시안 이민과 차별의 긴 역사, 최근 벌어지는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의 폭발적 증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먼저 반성적으로 보자면, 상당수 아시안이나 한인들은 백인 우월주의가 심어준 모범적 소수인종의 신화를 내면화한 채, 흑인들의 시민권 운동 등 인종차별과 싸워 온 성과의 열매만 따먹어 온 것은 아닌가 고민해 보게 된다. 또한 미국사회에서 지속되어 온 구조적 차별을 직시하고 타 인종들이 겪는 부당한 차별에 관심을 갖고 연대하기보다는, 백인 주류사회가 정해놓은 게임의 법칙에 적응하여 주류사회에 편입됨으로써, 타 소수인종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겠다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가져온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최근의 증오범죄들이 보여주는 현실은 미국 내에 백인우월주의와 소수인종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지속되고 일부 정치인들이 이를 이용할 때 아시안을 비롯한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으며 언제 희생양으로 지목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결국 아시안들과 한인들은 이것을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다른 소수인종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싸워나갈 수밖에 없다. 아시안들은 숫자가 적고, 아시안 내부의 다양성이나 갈등 요인 등으로 잘 단결하지 못하며 정치 참여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서라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인들은 민주화를 이뤄 온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으며, 최근에도 촛불 혁명 등으로 시민사회의 높은 역량을 보여 주었다. 또 미얀마 사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지를 보내는 데에서 보듯 세계의 민주화와 정의에 기여할 역량이 있다. 영화 <기생충>이나 <미나리>가 미국과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 것처럼, 한국인들의 고민과 경험이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공감대를 일으키는 시대가 왔다. 미국 내 한인들이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에서 오는 슬픔과 분노를 넘어 적극적으로 미국 사회의 개혁에 참여하고 기여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인엽 미국 워싱턴앤리대학교
정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