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02021.10

분석


미· 중 전략경쟁 속
일본의 동아시아 전략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 대응하는 일본의 대외전략과 동아시아전략을 분석한다.

  한국과 일본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 비슷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 인접국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 등 비슷한 구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국가마다 외교안보 전략의 우선순위는 달라 대응방식은 상이하다.

센카쿠 문제와 미·일동맹 일체화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카쿠 열도는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경제적 이익을 담보하는 중요한 섬이다. 동시에 센카쿠 열도는 페르시아-인도양-말라카해협-남중국해-동중국해-일본으로 이어져 석유 등 자원 수입을 위한 해상교역로로 ‘항해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렇듯 ‘영유권, 경제적 이익, 안전보장’이 엉켜있는 센카쿠 열도 문제는 2010년 이후 악화되어 갔다.

  지금도 중국은 월평균 8회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 주변 해역 및 항공 영역에 해군함정과 전투기 등을 파견하면서 센카쿠 열도에 대한 실력행사에 돌입했고 이는 안전보장에 대한 일본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일본은 센카쿠 갈등에 미국의 관여를 확보하기 위해 안보·군사적 측면에서 미국의 정책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실제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과 국방력 강화를 통해 미·일동맹을 ‘피와 피가 교환하는 대등한 동맹’으로 만들어 미국의 대일 안보 관여를 유지하려 한다. 실제 2015년 4월, 미·일 간 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미·일동맹 차원에도 반영하였다. 신가이드라인으로 미·일양국은 ‘동맹 조정메커니즘’을 창설하고 공동작전계획을 수립해 합동군사훈련을 강화하며, 평시에서 유사시까지 ‘끊어짐 없는’ 협력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다. 2013년 방위계획대강(일본의 방위군 운용지침서)에서 통합기동방위력을 표방하며, 도서부(島嶼部)에 대한 공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수륙양용 작전 능력(실질적인 해병대) 정비, 이도(離島·외딴섬) 방위 등 영공·영해 방어체제 구축을 위한 육해공 통합운영, 공군 해군 강화 등을 실현하며 명실상부한 ‘보통국가’로 이행하고 있다.

  일본은 더 나아가 중국의 해양진출을 억제하기 위해 동남아시아와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ASEAN의 해상법 집행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액의 지원을 합의했고, 베트남 해상경찰에 순시함 공여, 필리핀 해안경비대에 순시함 공여, 말레이시아 해상법 집행부서에 훈련 기계의 정비 지원 등 구체적 협력을 실시하고 있다.


견제와 협력의 대중정책
  하지만 일본의 대응은 편승(bandwagon)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은 인도·태평양의 쿼드체제를 강화하며 대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지만 동시에 대중관계를 관리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를 보이고 있다. 저성장 구도에 빠져 있는 일본은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희생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실제 중국과 일본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구상’과 ‘일대일로’ 사이의 상호협력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협력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일본은 2018년 5월 중국과 ‘제3국 시장 협력’에 합의했으며 10월에는 ‘중·일 제3국 시장협력 포럼’을 개최하였다. 52개항 180억 달러 규모의 협력협정도 체결했다. 아베 수상은 2019년 6월 G20 회의에서 일대일로의 잠재력을 칭찬하는 립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 동반자협정(RCEP)에도 기존의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자국이 주도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한 중국의 참여도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다.

  센카쿠 영역에서의 안정적 질서 유지를 위한 ‘해공(海空) 연락 메커니즘’은 2018년 5월 중·일 정상회담에서 서명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중·일 군 당국 간 핫라인이 설치됨과 동시에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이 메커니즘의 적용범위가 공해상으로 제한되어 있어 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영역에서의 긴급상황은 범위에서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일 양국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노력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미·중 전략경쟁 하 일본은 마치 ‘안보’와 ‘외교’가 분리되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군사안보적으로는 대중 견제를 위한 자국 국방력 강화, 미·일동맹 강화, 동남아시아에 대한 군사협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반면, 외교적인 측면에서는 대중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9년 1월 19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각료회의가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연합
일본의 고뇌: 미국에만 의존할 수 있나
  센카쿠 열도 문제로 중국과 안보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은 미국에게 대중 견제의 핵심 파트너임에 틀림없다. 미국은 일본이 제안했던 인도·태평양 개념을 수용했고, 미·일동맹을 단순한 ‘비용 분담(burden sharing)’ 관계에서 ‘권력 분담(power sharing)’ 관계로 격상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생각하는 일본의 전략적 가치와 일본이 생각하는 미국의 전략적 가치가 일치할 수 있을까?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 내에서도 미국에만 의존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싹트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외무성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국제문제연구소 내 인도·태평양 연구회는 올해 6월 「인도·태평양 지역의 해양안전보장과 ‘법의 지배’의 실체화를 위해: 국제공공재의 유지 강화를 위한 일본 외교의 새로운 시도」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저자들은 “인도·태평양 지역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미국 관여가 불확실해졌기에 흔들리고 있다”고 현 상황을 분석했다. 그리고 “냉전 후 지속되어 오던 미국의 일국 우위는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라며 자문한다. 이러한 의구심은 미얀마 사태,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더욱 현실성 있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그들은 미·일동맹의 상대화를 외치지 않는다. 미국의 단독 우위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측면에서 동맹을 더욱 강화하여 미국의 아시아 관여를 지속시키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봤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미국에만 의존하다가 낭패 보는 거 아냐”라는 불안감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미국 관여를 확보하면서도 인도·태평양 국제관계의 기본구도가 미·중관계로 규정되는 것을 회피하고, 일본의 대외행동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일본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있어 최대 과제임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답은 ‘다극 아시아’였다. 일본, 호주, 인도, 아세안을 예로 들며 단독으로는 질서형성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일정한 국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에 있기에 인도·태평양 국제질서 형성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들 국가의 행동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다극 아시아를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는 미국, 호주, 인도, 일본의 4자 연대, 즉 쿼드에 방점을 찍었던 기존 정책으로부터의 전환에 가깝다.

지난 9월 24일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대중국 견제 협의체인 ‘쿼드(Quad)’ 첫 대면 정상회의가 미국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렸다. 일본은 쿼드체제에 참여하며 대중국 견제에 나섬과 동시에 대중관계를 관리하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연합
"미·중 전략경쟁 하 일본은 마치 ‘안보’와
‘외교’가 분리되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군사안보적으로는 대중 견제를 위한 자국
국방력 강화, 미·일동맹 강화, 동남아시아에
대한 군사협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반면, 외교적인 측면에서는 대중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일본의 모든 전략가들의 논의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략가들 내부의 진중한 고민을 엿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국 일각에서 나오는 중간국(中間國) 연대, 전략적 자율성 확대 논의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미·중 전략경쟁 하 누구의 편에 설 것인지가 아니라, 양 대국의 등살에 버거워하며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는 중간국의 연대를 통해 자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구상이 회자되고 있다. 약간의 방향성 차이는 있지만, 일본 또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일본과 한국이 하고 있는 실제 행동은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동일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에서 미국과 중동 사이에서 고민하던 한국과 일본은 ‘독자 파병’이라는 동일한 형태를 취했다. 미국의 요구를 충족하면서도 미국 주도의 봉쇄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선명하게 미국 편에 섰다’, ‘아시아의 미국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우리의 인식은 편견 혹은 잘못된 이해일 수 있다. 문제는 ‘다극 아시아’ 구상에 한국은 빠져 있다는 것이다. 한국 또한 외교비전 어디를 보아도 일본의 자리는 없다. 이것이 현재 한일관계의 실상일지 모른다. 중국경사론, 군사대국화론과 같은 편견을 넘어 상대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지점이다.

최희식 국민대학교
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