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802021.10

평화통일 칼럼

종전선언,
다시 대화의 시작



  1953년 7월 27일. 2년 넘게 진행된 정전협정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그리고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가 각 국가와 집단을 대표하여 협정문에 사인했다. 정전협정은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에 도달하기 전까지 전쟁을 잠시 멈춘 상태인 ‘정전’을 합의한 협정이며, 현재의 한반도 분단 상황을 규정짓는 가장 큰 걸림돌 중에 하나이다. 전투는 멈춘 상태이지만 그렇다고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는 않은 비정상적인 분단체제의 고리가 바로 정전협정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 구축이라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의 배경에도 정전협정이 존재한다. 유엔군 총사령관, 조선인민군, 중국이라는 협정 서명국이 의미하듯 한국전쟁은 남북 사이의 전쟁에 머물지 않고 국제전으로 비화되었으며, 당연히 이를 멈추는 정전협정에도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과 중국이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정전체제를 끝내고 전쟁 종식을 공표하는 종전선언 역시 미국과 중국의 동의 없이는 가능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해당사자가 늘어날수록 합의에 이르는 것은 어려워진다. 게다가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현재 국제정치의 지형에서 두 강대국은 한반도 평화를 둘러 싸고 각기 다른 계산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여기에 한국이 협정 서명국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종전선언의 당사자가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논쟁까지 있다. 종전선언이 국제법상의 효력보다는 정치적 선언의 성격이 짙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종전선언을 둘러싸고 이견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UN총회에서 다시 한 번 종전선언 의제를 꺼내들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 지닌 한계에서 합의를 이루는 단계가 많아질수록 한반도 평화에 다다르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있고, 판문점선언에서 명시된 종전선언이 지닌 상징성을 강조하는 긍정론도 존재한다. 각각의 입장이 어찌 되었건 한반도 평화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정전체제의 근본적인 해체가 요구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내성이 생길대로 생긴 정전체제가 일순간에 해체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종전선언 등을 포함한 단계적 해결이 요구된다는 점도 공통된 의견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미국과 중국은 원칙적인 반응이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고, 무엇보다 북한 측이 위협과 적대의 언설을 멈추고 대화에 나설 의향이 있음을 표명했다. 종전선언의 현실성이 어찌되었건 적어도 고립되어 있던 북한을 다시금 대화 테이블로 초대하는 효과는 톡톡히 한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종전선언이라는 아젠다의 효용성은 증명된 것이다.

  이번 대화의 시작이 어떤 결과로 귀결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또 다시 실망과 좌절로 귀결될 수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다시 한번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의 삶을 옥죄어 온 정전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가시적인 성과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대화가 계속된다면 절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늦었다는 패배적인 생각도 그만해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