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아프간 분쟁과 국제질서
중동에서 동아시아로
미국의 중심축 이동
최근 아프간 사태에 대한 진단과 국제질서 변화를 살펴보고, 난민 등 우리의 과제를 진단한다.
  탈레반이 돌아왔고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해외로 도주했으며 아프간 주둔 미군은 철수했다. 지난 8월 중순부터 약 2주간 급박하게 돌아갔던 아프가니스탄의 정세다. 2001년 아프간 전쟁으로 붕괴되었던 탈레반 정권이 재집권하면서, 아프간의 정치 지형이 크게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정세도 요동치고 있다. 아프간의 지도는 ‘기울어진 달걀 모양’으로 이란, 파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중국까지 6개국과 국경선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아프간의 내부 변화에 따라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또한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 이후 미국은 현재와 미래의 위협을 언급하면서 중국을 주적으로 규정한 세계전략을 구체화시켰다. 이에 따라 향후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은 유라시아 대륙의 정중앙에 위치한 지정학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이 지역과 이를 둘러싼 향후 국제 정세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대책이 요구된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이 8월 31일(현지시각) 수도 카불 거리에서 탈레반 깃발을 들고 전쟁 승리를 자축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
아프가니스탄의 민족 구성과 정권 교체
  이제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은 패퇴했다. 이는 군사적 패배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패배이기도 하다. 2001년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서 북부 동맹과 연대해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지만 이후 북부 동맹을 배제시켰다. 미국은 강력한 친미 중앙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파슈툰인을 중심으로 아프간 국가 건설을 추진했다.
  아프가니스탄은 다민족 국가로 파슈툰인(42~45%), 타지크인(25~27%), 하자라인(8~9%), 우즈벡인(8~9%), 투르크멘인(3%), 발루치인(2%)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부 동맹의 중심세력은 타지크인, 하자라인, 우즈베크인이다. 미국의 이러한 가설은 틀리지 않았다. 1747년 최초의 근대 국가인 두라니 왕조 이후 아프간의 근현대사는 파슈툰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역사였다. 아프간 내부 분쟁의 주요 요인은 파슈툰인 내의 길자이파와 두라니파, 두라니파 내부의 사도자이 가문과 바라크자이 가문의 대립과 갈등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내세웠던 파슈툰인 출신의 하미드 카르자이 전임 대통령(2004~2014)과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2014~2021)은 지지기반과 정통성이 없는 인물이었고 부정부패와 무능의 상징이었다.
  친미 아프간 중앙정부는 아프간 국민으로부터 ‘카불 시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지를 받지 못했고 미군 없이는 존립할 수 없는 정부였다. 과거 이슬람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통치했던 탈레반이 또다시 집권하면서 아프간의 미래에 대해서 국제사회의 우려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탈레반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로 이해할 수 없는 교리를 주장하며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프간의 현실과 탈레반의 부상은 아프간의 비극적인 역사를 단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흔히 아프간을 ‘아시아의 각축장’, ‘침략자의 무덤’이라고 부른다. 이는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과 분쟁으로 점철된 비극의 역사를 보여주는 용어이다. 탈레반은 파슈툰인 민족주의 운동을 기반으로 탄생한 조직이다. 탈레반의 이데올로기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데오반드파(Deoband波)이다. 데오반드파는 수니파 하나피 법학파의 분파로 영국 지배에 저항하는 인도 무슬림 개혁운동에서 시작되었다.
  데오반드파는 교육을 통한 무슬림 개혁운동을 주장했지만 여성에 대한 제한적인 시각과 시아파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191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아프가니스탄은 서구식 세속화 모델을 추진했다. 1923년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최초로 성문 헌법을 제정했고, 독립적인 사법부와 근대식 교육 제도를 실시했으며 서구식 복장 착용을 권장했다. 아프간의 입헌군주제는 심각한 문맹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오반드파와 협력해 아프간의 동부와 남부에 수많은 신학교를 설립했다. 이 신학교는 점차 시간이 흘러 아프간 성직자들이 운영하면서 이슬람에 대한 교조적인 해석이 나타나게 되었다.
  1978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PDPA)은 친소련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해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소련의 국기를 그대로 모방한 아프가니스탄 국기를 공표했고 토지개혁, 결혼지참금 폐지, 여성의 공교육 의무화 등 급진적인 개혁 정책을 실시했다. 이러한 정책에 대해 보수적인 종교계와 부족 세력의 저항과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1979년 소련의 침공에 대항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저항운동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탈레반의 종교적 교조주의가 탄생했다. 탈레반은 1996년 카불을 점령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공화국을 선포했다가 1997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에미리트로 국명을 바꾸었다.
이번 아프간 철군은 미국 세계전략의 중심축이
중동에서 본격적으로 동아시아로의 이동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향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간의 충돌과 갈등이 불가피하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군 C-17 수송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자
탑승하지 못한 아프간 시민 수백 명이 수송기를 따라 내달리고 있다. ⓒ연합
탈레반의 재부상과 주변국 간 역학관계 변화
  2001년 아프간 전쟁으로 붕괴되었던 탈레반이 재부상하게 된 주요 요인은 반미 감정에 있다. 2012년 1월 미군 병사들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아프간 시신에 집단 방뇨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었고, 2월에는 아프간 주둔 미군 기지에서 쿠란 소각 사건이 발생하면서 반미 감정이 점차 확산되었다. 또한 미군의 아프간 공습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했고, 특히 2009년 5월 아프간 서부 파라주에서는 미군의 오폭으로 인해 15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아프간 공습에서 화학무기인 백린탄을 사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지방과 시골을 중심으로 반미 운동이 격화되면서 탈레반은 재집권에 성공하게 되었다.
  탈레반 재집권 이후 주변국들은 이 지역을 둘러싼 역학관계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아프간의 내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프간의 북쪽에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이 있고 이 국가들은 아프간의 변화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20~30년대 소련이 중앙아시아 무슬림 국가들을 합병하면서 우즈벡인, 타지크인, 투르크멘인이 대거 아프간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5일부터 10일까지 아프간 국경 인근에서 러시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의 연합군사훈련이 있었다. 이는 타지키스탄이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요청한 것으로 이 기구는 2002년 옛 소련에 속했던 6개국(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이 결성한 군사, 안보 협력체이다.
  아프간의 서남쪽에 위치한 이란과 남동쪽에 위치한 파키스탄은 공개적으로 환영 메시지를 보냈지만 내부적으로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탈레반이 시아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는 불편한 관계이다. 9월 6일(현지 시각) 이란은 북부 동맹의 거점인 판지시르 계곡에 대한 탈레반의 군사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했다. 파키스탄은 실질적인 탈레반의 지원국이고 9월 11일(현지 시각) 파키스탄 외교부 장관은 탈레반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최선의 방법은 국제적 고립이 아니라 국제적 포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향후 아프간 사태가 정상화되기 이전까지는 아프간 난민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고 주변국인 이란과 파키스탄이 난민 수용소 설치의 중심지가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이란 간 핵협정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2일(현지 시각)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3달 만에 임시 핵사찰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 활동을 도왔던 현지인 직원 및 가족 중 파키스탄에 남아 있던 인원들이
8월 27일 우리 군 수송기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입국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
미군의 아프간 철군과 세계전략 변화
  미국의 아프간 철군은 사실상 미국 세계전략의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 8월 31일(현지 시각)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제 2001년의 위협이 아니라 2021년의 위협들에 맞서야 할 시기”라고 강조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사이버 공격 등을 미국의 새로운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7월 8일 ‘아프간 미군 임무 8월 31일 종료’를 선언한 대국민 연설에서도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 견제를 제1의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냉전 시대 미국의 주적은 소련, 탈냉전 시대에는 이슬람주의였다면 이번 아프간 철군을 계기로 미국 세계전략의 주적 개념이 중국으로 분명하게 변화했다. 미국은 2010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중국이 부상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2012년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채택했다. 이번 아프간 철군은 미국 세계전략의 중심축이 중동에서 동아시아로의 본격적인 이동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향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간의 충돌과 갈등이 불가피하다. 또한 중국의 부상은 과거 육로와 해로의 중요성이 주목받는 지정학의 귀환을 의미한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대립과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해양과 대륙 세력이 만나는 한반도에 미칠 영향도 주목해야 한다.
  이제 본격적인 신냉전이 시작되었고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신냉전은 과거의 냉전과 커다란 차이점을 가지고 있고 훨씬 더 복잡하다. 과거 냉전 시기에는 이념에 따라 양극 체제로 명확하게 나누어졌다면, 신냉전은 사안별로 국익에 따라 경쟁과 협력이 혼재된 구도로 나타날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 편승, 헤징(hedging), 회피 등 다양한 외교전략을 적절히 결합하거나 뛰어넘는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이번에 한국에 입국한 아프간 특별 기여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요구되며 장기적으로 난민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담론이 필요하다. 한국과 협력했던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고, 이는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을 때에도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번 사건이 아프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지구촌의 다양한 구성원들과 함께 공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학교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