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평화
예술가의 시선과 상상으로 풀어낸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비무장지대(DMZ)와 한국 접경지역의 (비)가시적 경계를 다루는 동시대 미술 프로젝트이다. 2011년 출범하여 2012년 전시를 시작한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지난 10여 년 동안 리서치, 연구, 건축, 생태 등 다른 분야의 학자 및 연구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경계를 탐구하는 것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해 왔으며, DMZ에 대한 학문적이고 과학적인 리서치를 다시 예술적 관점으로 전환해 왔다.
  분단의 상징인 DMZ는 기억에서 지워지고 잊힌 장소이자 미디어나 정치에서만 다루는 장소가 되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각이 필요한 장소이다. 이곳은 남과 북 두 나라의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서적인 면에서도 우리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DMZ는 한반도를 남북으로 나누는 폭 4km, 길이 248km의 ‘지대’이면서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냉전의 산물이다. 6·25전쟁이 평화협정이 아닌 휴전협정으로 끝나면서 남북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기에 비무장지대인 DMZ는 역설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무장화된 장소가 되었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남과 북의 문제가 아닌 미국, 중국, 일본 등의 국제적 문제이기도 하다.
파리 피민코재단 전시설치전경, 2020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DMZ라는 드러나지 않는 경계가 과거와 현재에 우리의 생활이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탐구하고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다. 또한 70여 년이 지나면서 일상생활에서는 잊힌 경계인 DMZ를 상기시키고 지역·역사·사회·심리적 경계를 다층적으로 연구해 현대사회에서의 ‘경계’에 대한 의미 있는 화두를 제시하고 예술가들과 다양한 형식과 주제를 실험한다. 기획 초기부터 장기 프로젝트를 목표로 진행된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DMZ의, 남북한의 미래를 생각하며 예술가들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작업한다.
남아공 니록스 설치전경, 조경진, 조혜령, 2021
남과 북 ‘경계’에서 벌어진 70여 년간의 이야기
  2012년부터 2016년까지의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한반도의 남과 북, 동과 서의 지리적 중간 지역이자 수복 지구인 철원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북의 흔적이 남아 있는 노동당사, 민간인 통제구역 내의 안보관광코스와 양지리 마을 등에서 전시를 열었다. 안보관광코스 중 전망대, 벙커, 땅굴 등 일반인의 접근이 가능한 장소에서 전시가 진행되었고 예술가들은 이 장소들과 연결된 작업을 새로 제작하여 선보였다. 안보와 한국 전쟁에 대한 일방적인 내러티브가 전개되는 ‘안보관광코스’에서 예술가들은 지역민의 삶이라던가 남과 북의 관계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이곳은 분단 현장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장소이자 남과 북의 경계에서 벌어진 70여 년간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장소였다. 또 다른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있는 양지리 마을은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의 레지던시로 활용되었다.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작은 마을인 양지리에서 예술가들은 짧게는 열흘, 길게는 두세 달을 머물렀다. 이곳은 피상적인 DMZ가 아닌 생활 속에 녹아 있는 DMZ의 영향과 증후들을 관찰할 수 있는 중요 거점으로 리서처와 예술가들에게 DMZ와 경계에서의 삶에 대한 연구와 작업이 가능한 장소였다.
디엠지공간(온라인) 설치 전경, 이불, 2021
  2015년부터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해외로 초청되기 시작하였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슬라우트 파운데이션(Slought Foundation)에서 <차가운 전쟁, 뜨거운 평화>전을 시작으로, 2017년 3월 덴마크의 쿤스탈 오르후스(Kunsthal Aarhus)에서는 <타임쉐어 프로젝트-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오르후스 에디션>을, 2018년 영국 노팅엄의 뉴 아트 익스체인지(New Art Exchange)에서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DMZ 지역에서 펼쳐지는 예술적 만남>을 개최했다. 또한 <타임쉐어 프로젝트-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오르후스 에디션>전과 함께 진행된 세미나를 기반으로 만든 도록 『경계협상』을 출판하여 다각도에서 경계를 다룬 글과 작업을 소개하였다.
  국외 전시와 더불어 2017년부터 2018년까지는 민간인 통제구역 안 광장에 장소 특정적 영구 설치 작업을 진행했다. 장기간의 장소 리서치 후 알맞은 장소를 정하고 예술가들과 어떤 작업을 만들지 의논하면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2년간 예술가들은 장소의 맥락에 맞는 작업을 만들었다. 이후 2019년 문화역 서울284에서 그간의 연구와 예술가들이 제안한 작업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전시 <디엠지(DMZ)>를 열었다. 이 전시는 DMZ의 역사와 풍경, 현재 모습,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상상을 주제로 한 작업들을 전시하고 DMZ의 역사, 생태, 정치, 사회 등에 대한 내용을 아카이브로 제시하였다. 또한 DMZ의 자생식물들을 통해 생태 환경을, 접경 지역 농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삶의 모습을 함께 다루었다.
함경아, 불편한속삭임, 바늘나라 SMS 시리즈
평화에 대한 예술적 접근 <경계협상>
  2019년부터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해외 전시인 <경계협상>이 시작되었다. <경계협상>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업과 함께 DMZ의 역사적 배경, 북에 대한 예술적 접근과 앞으로 바뀔 남과 북의 미래에 대해 상상해 보는 전시이다. 전시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지원으로 브라질, 영국,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열렸으며, 2022년에는 코로나19로 두 차례 이상 미뤄진 전시가 호주 시드니와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열릴 예정이다. 브라질, 영국, 프랑스에서의 전시는 전시 공간에 따라 작품이 새롭게 추가되거나 달리하는 등 여러 변주를 시도하며 진행되었고, 남아공의 전시는 야외공원에서 열리기에 새로운 작업들이 제작되었다. 브라질 상파울루와 쿠리치바의 전시에는 남한의 눈으로 경험한 북에 대한 내용, 한국군 병사의 모습, 그리고 북에서 만들어 온 자수 작업을, 영국 런던의 전시에는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까지의 DMZ에 대한 회화 작업, 한국전쟁 이후 DMZ와 민간인 통제구역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아카이브, DMZ에서 자라는 식물 연구 자료, DMZ의 미래 모습을 상상해 보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추가되었다. 프랑스 파리 전시는 DMZ를 축으로 마치 남과 북이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는 것에 착안하여,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과 피민코재단(Fondation Fiminco)의 전시가 서로를 반영하는 것처럼 구성하였다. 피민코재단에선 무장화된 비무장지대의 아이러니한 현실을 조명하고 두 국가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구축해 온 실제를 드러내는 한편, 한국문화원에서는 도래할 평화 시대의 DMZ를 상상해 보는 작업들을 배치하였다.
전소정, 먼저 온 미래
  일반적으로 전시를 준비하면 해당 공간을 미리 방문하여 현장에 맞는 작업을 선별하고 지역의 기관들과 협조해야 한다. 특히 남아공 전시의 경우, 야외 공원을 전시공간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기획단계에서부터 현지에서 완성하는 장소 특정적 작업으로 논의되었으며 이를 위해 작가들은 현지에서 1~2개월 머물며 현장 작업을 하려고 계획하였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작가와 큐레이터팀의 이동이 불가능했다. 설치에 필요한 재료와 작품들만 운송되었으며 현지팀과의 셀 수 없는 온라인 화상회의와 이메일을 통한 협업으로 진행되었다. 이 중 환경조경학자 조경진, 조혜령이 선보인 [DMZ 정원, 지뢰꽃]은 전시 종료 이후에도 현장에 보존되어, 사계절의 DMZ 식물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온라인상에 가상의 전시 공간 - 디엠지 공간도 구축했다. 물리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온라인 공간과 일반인의 접근은 불가능하며 군인에게만 허락되는 DMZ는 어떤 면에서 모두 상상의 공간이다. 작가들의 작업을 가상의 DMZ에 재현하고 배치하여 관람객들이 이 가상의 ‘디엠지’를 부유하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14년 민간인 통제구역인 양지리 마을에서 진행된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남과 북이 함께할 실현 가능한 미래를 기약하며
  국경 봉쇄, 지역 차단, 이동 제한의 팬데믹 상황에서 마주한 자유 여행, 국경 개방과 같은 상상은 북한에도 대입할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북한의 국경은 닫혀 있지만,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남과 북이 함께할 미래를 2022년 호주와 독일의 전시에서 찾아보려 한다. 전소정은 탈북 피아니스트와 남한 피아니스트의 협연을, 최대진은 남북한 선수들의 권투 시합을, 함경아는 중개인을 통해 접촉한 북한 자수공예가들과의 작업을 통해 남의 소식을 알리는 방법을 시도한다. 남과 북의 공동 공간인 DMZ의 가능성을 이우성은 그림으로, 이수경은 지역에서 찾은 돌에 금박을 하는 작업으로, 장영혜중공업은 영상으로 보여준다. 조경진과 조혜령은 DMZ에 자생하는 식물들을, 제인 진 카이젠은 식물들이 자라는 숲에 남겨진 지뢰를 제거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DMZ 안에 존재하는 ‘자유의 마을’에 대한 픽션을 통해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DMZ의 상황을 보여주는 문경원과 전준호의 작업과, 비무장지대가 가장 무장화된 공간이란 역설을 군인의 모습으로 드러내는 오형근의 작업은 우리를 현실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시드니와 볼프스부르크의 전시는 남과 북의 왕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노력을 함께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2017년 덴마크 쿤스탈 오르후스 토크 프로그램
  2022년에는 보이지 않는 결실을 우리의 마음에 남기고 10년간의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준비하려고 한다. 예술가의 시선과 상상, 독창성으로 풀어낸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정치, 외교에 의해 변화하는 DMZ의 모습과 의미를 전시로 담았다.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고 실현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한다는 생각으로 DMZ의 과거와 현재에서 미래를 상상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과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DMZ와 북의 고립은 지속되고 있지만, 언제라도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를 통해 구현된 예술가들의 여러 제안이 실현 가능한 미래가 되길 바란다.
김선정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