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62023.12.

11월 24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 서울에서 ‘2023 글로벌 통일대화’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국내외 외교 및 북한 전문가가 머리를 맞댄 국제 학술회의다.

평화통일 현장 Ⅰ

국내외 석학 머리 맞댄
‘2023 글로벌 통일대화’

요동치는 세계정세 한가운데 선 한반도
‘구조적 안정’ 위해 국제협력 절실

11월 24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 서울에서 ‘2023 글로벌 통일대화(2023 Global Dialogue on Korean Peninsula Unification)’가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는 내로라하는 한반도 외교 전문가와 국내외 석학이 참여해 윤석열 정부의 ‘자유·평화·번영의 한반도 구현을 위한 국제협력’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정책과 방향을 제시했다.

북한의 반복되는 군사 도발로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따라 정부는 ‘9·19 군사 합의’ 중 일부 내용(1조3항)의 효력 정지 관련 조치사항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와중에 격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 2년 가까이 이어지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 등 세계정세도 한반도를 격랑에 빠뜨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국제협력은 중대한 사안임이 분명하다. 국내외 석학이 모여 통일 환경을 진단하고 북한 비핵화와 자유·평화·번영의 한반도 구현을 위한 국제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와 연합뉴스 공동 주최로 열린 ‘2023 글로벌 통일대화’에서 참석자들은 입을 모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 하의 남북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수명 다해”
기조연설을 맡은 현인택 한국국방안보포럼 대표가 내놓은 발표 주제는 ‘글로벌 가치 연대와 한반도의 통일 미래’. “북한의 핵 개발로 말미암아 지난 30여 년간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이던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 수명을 다했으므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며 발표를 시작한 현 대표는 남북 관계의 역사와 정책, 현재 한반도가 처한 현실 등을 집중 조명했다.

1992년 2월 18일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는 통일 및 남북 간 화해·협력을 위한 기본 원칙과 실천 방향 등을 명시한 문서다. 앞서 그해 1월 31일 체결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에 체결된 조약이다. 이것을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에서 기본으로 삼고 있음에도 북한은 핵 개발을 완성하고 핵 국가라고 헌법에 명기한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도 더는 합의를 지킬 의미가 없어졌다는 게 현 대표 생각이다. 그는 “우리는 북한 정권에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에게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서 세션 1부엔 국내외 전문가 5명이 참여해 ‘자유·평화·번영의 한반도: 비전과 전략’에 대한 견해를 나눴다. 김천식 통일연구원 원장이 좌장을 맡았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가 화상으로 ‘한반도의 자유, 평화, 번영을 달성하기 위한 장기적 비전’을 주제로 한 발표에 나섰다. 그는 “한반도에서 억지력을 유지하고 강대국 간 전쟁을 피하는 것은 지금의 혼란기를 외교와 평화 구축에 더 유리한 국제 정세로 전환할 수 있는 단기 목표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위기와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집중하는 동안 북한은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며 “북한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되돌리고 우크라이나 사태와 이스라엘 전쟁을 입지 강화의 기회로 삼기 위해 일련의 군사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은 남북 관계에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서 교착 상태에서 탈피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는 것을 더욱 꺼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다양한 남북협력 의제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제안에 계속해서 부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리저췐 대만 국방안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지정학적 이유뿐만 아니라 가치와 질서를 명분으로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과의 협력을 통한 글로벌 중추 국가 역할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이 미국과 협력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이 수정주의적 팽창 정책을 추진하면서 바라는 것이 북한을 완충 국가로 유지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남북한의 건전한 관계 발전과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아시아전략센터장은 “분쟁 발생 시 강대국의 개입 가능성을 전제로 한 한국의 군사적 균형으로 직접적인 대규모 충돌 가능성은 낮다”며 “군사 훈련과 실험 빈도가 증가하면서 우발적 충돌의 위험이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한반도는 가까운 미래에 ‘구조적 안정’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어 “이러한 상황이 미국과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고 유럽에서 분쟁이 종결되는 2025년경 일어날 수 있다”면서 “해방 100주년을 맞는 2045년이 되면 자유주의와 권위주의로 양분된 남북한은 새로운 세대의 민족적 화해를 바탕으로 평화롭게 사는 법을 배우고 통합의 길로 나갈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안보 위주 제재로는 긍정적 결과 못 얻어”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북핵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협력의 제도화를 통해 불투명성을 줄이는 데 노력해야 한다”며 “한미, 미·일 동맹을 동력으로 한일 안보 협력의 난이도를 쉽게 하고 갈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북한 인권’을 주제로 한 세션 2부 좌장은 이정훈 연세대 교수가 맡고, 이메시 포카렐 서울 유엔인권사무소 부소장과 원재천 한동대 교수가 발표에 나섰다. 포카렐 부소장은 북한 인권 의제 추진을 위한 장마당 세대의 역할에 대해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변화 주체로서의 여성의 역할도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원 교수는 “과학기술 및 인공지능(AI) 혁명시대에 부합하는 북한 인권 증진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내놓은 방안은 에너지, 첨단 기술과학 안보를 기반한 북한 인권 증진과 통일정책, AI ChatGPT 경제 사회를 기반한 인권 증진 계획, 북한의 통제 강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신기술 기반 북한 인권 증진, 북한 주민 알 권리의 획기적 증진, 국제기구와 연계한 데이터 기반의 실효성 있고 지속 가능한 북한 취약계층(아동, 여성, 장애인) 지원 등이다.

한반도 외교 전문가와 국내외 석학이 참여해 ‘자유 · 평화 · 번영의 한반도 구현을 위한 국제협력’ 전략 방향을 제시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조 필립스 연세대 교수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적 압박 효과가 압박을 가하는 국가와 해당 국가 간 관계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국제적 압박이 인권 개혁을 가져온 사례로 꼽히는데, 이 나라의 사회는 국제적이었고 부분적으로 민주주의를 추구했다”고 소개한 뒤 “반면 쿠바, 이란, 러시아 등 고립된 정권에 대해 안보 위주 제재를 가했을 때 긍정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인권 지향적인 국가와 북한 사이에 실질적인 관계가 거의 없다”며 “북한이 유익한 관계를 위해 의지할 수 있는 권위주의 국가들의 지역 통합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환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 대표는 “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와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 공조 강화, 인권과 북핵 연계 당위성 강조, 포괄적 접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된 것은 의미있다”고 평가했다. 2014년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로 유엔 안보리로 북한 인권 논의가 격상됐다가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후 5년간 중단된 기간에 대해서는 “잃어버린 5년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행히 2023년 들어 유엔 안보리 북한 인권 공식회의가 재개됐는데, 중요한 회복이라고 평가한다”며 “특히 한·미·일 대사들이 ‘인권과 핵 위협의 불가분성’을 이구동성으로 강조한 것이 주효했다”고 부연했다.

“北 인권 정상화로 국제 인식 제고해야”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반인륜 범죄 중단을 위한 실제적 변화 전략으로 ‘중국 정부와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 총력’을 제언했다. 강 대표는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은 탈북자가 많다는 점”이라며 “한미 당국은 대중 관계에서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비핵화가 아닌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임을 인식하고, 중국과 함께 중국식 경제 개혁을 북한에 요구해 주민과 정권을 분리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관용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개회사에서 “통일에 관한 명백한 기본 원칙은 자유민주주의 기치 아래 통일 담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한 세션3부의 좌장은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맡았다. 발표를 맡은 엔도 켄 일본 도쿄대 교수는 한일 화해라는 맥락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재고찰하면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비전엔 규범적 측면과 지역적 측면이란 두 가지 측면이 있다”며 “자유와 열림은 전자의 측면을, 인도·태평양은 후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인도태평양연구센터장은 한반도 지정학적 맥락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의 의의를 분석했다. 그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지역주의를 초월해 대한민국의 포괄적 외교정책 기조를 구현하고 있다”며 “국가 정체성과 위상, 글로벌 지정학적 환경에서 국가가 그릴 향후 궤적과 맡을 역할을 설명하기 위한 전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자로는 로버트 캘리 부산대 교수, 정구연 강원대 교수, 조남훈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이 나섰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역할을 효과적으로 완수하려면 보편적 가치를 증진하고 국익에 부합하는 중·장기 외교를 펼치는 한편 미·중 협력을 촉진하고 포용적인 세계 질서 구축을 지향하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