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62023.12.

북한 노동신문은 10월 6일 “황해남도 드넓은 농장벌들에 예년에 보기 드문 흐뭇한 작황이 펼쳐진 가운데 뒤떨어졌던 농장,
작업반들이 최근 연간에 볼 수 없었던 높은 수확고를 내다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포커스

2023년 북한 경제 평가와 전망

북한 경제 전반 중앙 통제와 개입 확대
경공업 회복세 뚜렷 ‘최악 상황’ 벗어난 듯

최악의 식량난을 겪던 북한이 올가을 곡물 수확철을 맞아 연일 ‘풍작 선전’을 이어갔다. 북한 시장의 곡물 가격도 하반기 들어 하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경 개방과 무역 확대에 따른 변화로 보인다. 올 한 해 북한의 경제성장률과 무역, 시장 가격 등의 추세를 토대로 북한 경제 여건을 평가하고 전망해봤다.

북한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일 때, 국경을 굳게 닫았던 북한은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한 듯 보였다. 코로나19, 식량난, 자연재해가 중첩된 ‘삼중고’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팽배했고, 2021년 김정은 위원장은 직접 ‘고난의 행군’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2022년부터 국경을 열기 시작하면서 수입이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고, 올해 하반기에는 완전히 국경을 개방하고 무역을 확대해 대외 경제 관계를 정상화한 모습이다.

대내 경제 여건은 어떨까? 북한 내부의 경제적 여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올해 상반기에는 평양지역조차 식량 부족이 심각하다는 소식이 보도되기도 했다. 반면, 최근 노동신문 등에서는 각 지역 협동농장의 가을 수확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12개의 중요 고지 달성과 관련한 언급 빈도가 증가했다.

이처럼 북한의 경제적 여건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들은 늘 조각조각이고, 완전하지 않아서 종합적인 평가가 쉽지 않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북한 통계는 제한적이고, 변화의 원인에 대한 추론도 상당 부분 개연성에 의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시계열을 이용해 평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北 최악의 ‘삼중고’ 상황은 탈출한 듯
우선, 북한 무역은 대중 수입이 전년 동기 대비 172%(9월 말 기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강화된 2018년 이후 북한 수출은 90% 가까이 감소한 상태에서 뚜렷한 변화는 없었다. 반면 수입은 대북 제재 강화 이후에도 기존의 70% 수준을 유지하다가 코로나19 국경 봉쇄 직후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수입 구조는 대북 제재 강화 이후 상대적으로 더 단순해졌다. 산업용 기기나 수송용 기기의 수입이 중단되면서 북한은 주로 식료와 의류 가공의 중간재 혹은 최종재이거나 비료, 원유, 정제유와 같이 농업과 제조업 생산을 위한 원자재를 수입하고 있다.

2020~2021년 국경 봉쇄는 이러한 주요 수입품들의 공급 중단으로 이어져 민생과 산업 가동률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경제 성장률은 2020년 –4.5%를 기록해 1990년대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2년 수입 재개로 수입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경공업 분야는 성장률이 5%로 상승하면서 뚜렷한 회복세를 나타냈다. 2023년에도 이러한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아직 수입 규모가 2018~2019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경공업 분야의 가동률은 코로나19 국경 봉쇄 기간보다는 상당 수준 회복됐을 가능성이 높다.

주의할 것은 2022~2023년의 회복세는 2020~2021년 경제 실적이 급락했던 데 따른 ‘기저 효과’라는 점이다. 북한 경제는 삼중고의 최악의 상황에서는 탈출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경제 전반의 성과가 결코 밝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2016~2017년 대북 제재 강화 이후 자본재 수입이 중단되며 제조업 부문의 설비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북한 경제의 성과 창출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2022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경공업 부문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0.2%에 그쳤는데, 주로 중공업 부문의 성장률 급락(-9.5%)에 기인한다. 현재와 같이 강력한 제재하에서 북한이 자력으로 제조업 부문의 쇠퇴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무역이 재개되더라도 북한 경제의 전반적 성과는 제재 장기화에 따른 설비 노후화를 얼마나 억제할 수 있느냐에 좌우될 수 있다. 제조업은 북한 국내총생산(GDP)의 21%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도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북한 당국은 국내 자원과 노동력 투입을 확대해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농업과 건설업에 집중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2021년 제8차 당 대회에서부터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식량 생산은 체제 지속성과 직결된 만큼 농업 생산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극단적 국경 봉쇄로 비료 수입에 차질을 빚은 데다 기후 여건도 악화되면서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김정은 집권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바 있다. 제재 장기화로 외화 수급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북한 당국의 입장으로서는 상업적 곡물 수입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양정법’ 개정해 곡물 시장 개입
북한 당국은 2021년 말 전원회의를 기점으로 농업과 농촌 발전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대대적인 정책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재정 여건 악화 속에서도 농업·농촌 부문에 예산 지출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노동력 동원과 원자재 조달도 확대하고 있다. 농업 부문의 유인을 제공하기 위하여 협동농장의 미상환 대부를 탕감하거나 살림집을 건설하는 등 새로운 정책들도 시도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농업 집중 정책의 성과는 곧바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2022년 북한의 국내 곡물 생산량은 3.8%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북한의 곡물 생산은 지난해에 비해서는 양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상 여건이 우호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비료 수입과 농기계 투입 확대, 대규모 노동력 동원으로 모내기 등 농사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같이 곡물 생산이 증가한다면 식량 부족은 완화되고 민생 여건은 개선될 수 있을까? 이것은 북한 당국의 곡물 유통정책이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8월 22일 중국 베이징 국제공항에 내린 북한 국영항공사 고려항공 여객기. 지난 2020년 1월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으로 국경을 폐쇄한 지 3년 7개월만에
베이징에 착륙해 중 ·북 하늘길이 다시 열렸다. (AP/뉴시스)

올해 9월 말까지 북한 시장에서 쌀 가격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대를 형성했다. 북한 쌀 가격은 대북 제재 강화 직후에도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했으나 2021~2022년 가파르게 상승해 2023년 3분기까지 이어졌다. 2020년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최저치를 기록한 데다 국경 봉쇄로 곡물 수입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2021년의 곡물 가격 급등은 부분적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2022~2023년의 시장 곡물 가격 수준은 총 공급량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다.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회복된 데다 곡물 수입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곡물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은 북한 당국의 곡물 유통정책 변화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2021년 3월 양정법을 개정하며 양곡 판매소에서의 곡물 판매를 ‘국가 양정체계’에 편입시켰다. 국가가 곡물의 공급(배급)뿐만 아니라 판매에도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전환의 연장선에서 ‘양곡 판매소’의 운영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양곡 판매소는 상시 운영하는 것은 아니며 판매 가격이 시장 가격보다 약간 낮지만, 곡물의 품질이 대체로 좋지 않고 수입산 비중도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즉, 양곡 판매소를 전국적으로 확대·설치하면서 곡물 유통에 대한 국가 개입을 정책적으로 확대했지만 적어도 2023년 3분기까지는 판매 물량을 조달하기가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곡물의 총 공급 측면에서 국내 생산과 대중 수입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곡물 유통 개입 확대로 시장 곡물 가격의 변동성이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북 제재가 북한 무역·산업 구조 바꿔
이와 같이 시장 곡물 가격 수준이 높아지면 식량 공급소나 양곡 판매소를 통해 곡물을 확보하기 어려운 가계는 식량 접근성이 더더욱 떨어지게 된다. 특히 양곡 판매소 운영은 판매 곡물의 가격이나 품종, 우대 가구 혜택에 있어 지역적 편차가 큰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취약 계층들의 식량 접근성 격차가 국지적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음을 보여준다. 다행히 올해 가을 수확 이후인 4분기에는 시장 곡물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한 것으로 관찰되나 이러한 현상이 새로운 곡물 유통정책이 안정적으로 정착한 결과인지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통상 북한 시장의 곡물가격은 2~3분기 상승했다가 4분기 하락하는 패턴을 보여온바, 계절적 요인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향후 시장 곡물 가격 수준이 2021년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거나 더 하락한다면, 새로운 ‘국가 양정체계’와 시장 유통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어 보인다.

북한 노동신문은 2월 7일 김덕훈 내각총리가 함경남도와 남포시의 여러 단위사업을 현지에서 료해(파악)했다고 전했다. 김 총리는 연포온실농장과
룡성기계연합기업소 등을 찾았으며, 남포시 양곡 판매소에서는 식량 공급 실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대책을 강구했다고 한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대북 제재 강화 이후 7년여가 흘렀다. 북한 경제는 꽤 많이 바뀌고 있다. 대북 제재는 무역 구조를 직접적으로 바꾸었고, 산업 구조도 변하고 있다. 2022년 북한의 GDP 규모는 2016년 대비 88.4% 수준으로 축소됐다. 광업과 제조업의 충격이 가장 큰데, 2016년 대비 각각 60.7%, 74.3% 수준으로 줄었다. 북한 당국이 자원 배분을 집중하고 있는 농업, 건설업 등에서만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제재가 장기화된다면 북한의 산업 구조는 더 왜곡될 우려가 있다.

경제 구조만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 당국의 정책 변화도 뚜렷하다. 시장화와 분권화의 흐름이 뚜렷했던 김정은 집권 초기와 비교해 인민 경제 전반에 대한 중앙 집중적 통제와 개입이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국민 경제의 대내외적 여건과 정책이 급변해 불확실성이 확대되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거나 소외된 계층들은 더욱 위험한 상황에 빠질 우려가 있다. 북한 경제 여건에 대한 엇갈린 신호와 해석이 난무할수록 인도적 위기 가능성은 없는지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최 지 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