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62023.12.

이스라엘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가자지구. (AP/뉴시스)

국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전망과 국제 정세

군사적 긴장 완화 시 ‘중동 데탕트’ 재부상
팔 자치정부 가자지구 통치 가능 여부가 관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한 달이 넘어서면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국제사회의 휴전과 중재 노력에도 아직 돌파구를 찾지 못한 상태다. 전쟁 발발 배경과 전망, 중동을 둘러싼 관련 국가 간 이해관계를 짚어봤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제해온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도발 배경에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최대 정파인 파타흐와 하마스 간의 주도권 경쟁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이란 간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수니파 대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을 추진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의 핵 개발과 친이란 프록시(proxy, 대리) 조직인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부터 자국 안보를 지켜야 했다. 왕실 생존의 전략으로 파격적인 개혁을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역내 안정과 이스라엘과의 협업이 절실했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라이벌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적이기도 하다. 특히 이란은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이라크의 인민동원군, 시리아의 군소 민병대 등 친이란 프록시 무장 조직을 후원해 역내 팽창주의 정책을 펼쳐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의 역사적인 데탕트가 이뤄지면 존립 근거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하마스는 명운을 건 공격을 감행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조직은 하마스가 아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이기 때문에 하마스로서는 최대 적수이자 정쟁을 벌이고 있는 파타흐가 대표성과 정당성을 굳히는 상황을 뒤흔들어야 했다. 더불어 하마스의 계산에는 2022년 11월에 출범한 이스라엘 극우 연립정부의 대팔레스타인 강압 정책에 따른 무슬림의 분노, 극우 정부의 사법부 무력화 시도에 따른 이스라엘 내 최악의 국론 분열과 안보 공백도 포함됐다.

아직 깨지지 않은 ‘중동 데탕트’
이스라엘 정보 대참패의 원인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극우 포퓰리스트 정부가 원인을 제공한 최악의 국론 분열과 대팔레스타인 강압 정책을 들 수 있다. 2022년 11월에 출범한 연립정부는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네타냐후 총리를 보호하려고 사법부를 무력화하는 입법을 강행해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을 샀다. 특히 군과 특수부대, 정보국 소속 예비역 1만여 명이 정부의 사법 장악 시도에 항의하며 복무 거부에 서명했고 현직 고위급마저 이들의 집단행동을 지지하면서 군 중추의 이탈과 전력 공백이 생겼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 극우 연정의 유대인 불법 정착촌 확장과 팔레스타인 시위대 유혈 진압을 비판했고 미국 유대인 커뮤니티에서도 반(反)네타냐후 여론이 급증했다.

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분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협상과 중동의 데탕트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급히 현지를 찾아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전쟁은 이어지고 있다. 중동 전역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도 팔레스타인 지지 입장을 내면서 중동 데탕트는 깨진 것이라는 해석마저 나온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주요국이 지지를 밝힌 대상은 하마스가 아닌 팔레스타인 주민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마스의 폭력이 데탕트를 방해하기 위한 의도적 계산이었다고 비난하며 수교 협상의 재개를 암시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역시 이번 전쟁으로 데탕트가 깨지면 하마스 테러 집단과 이란의 패권 추구 야욕에 굴복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기에 다시 협상에 임할 것이다.

더욱이 바이든 정부가 내세웠던 중동 정책의 3대 기조인 이란 핵 합의 복원, 역내 민주주의와 인권 및 동맹 가치 공고화, 아랍·이스라엘 데탕트 강화 가운데 눈에 띌 만한 성과를 보인 사안이 없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의 수교 협상에 더욱 공을 들일 것이다. 양국 정상화 빅딜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이스라엘에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에 자제를 촉구했다. 따라서 군사적 긴장이 누그러지면 중동 데탕트를 향한 미국의 중재와 중동 주요국의 움직임은 다시 부상할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향후 다른 국가들까지 개입하는 중동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주변국들은 혹시 모를 내부의 불안정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정권 수호에 급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역내 친이란 프록시 조직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하마스를 측면 지원하고 요르단강 서안 지역의 일부 급진주의 조직이 반이스라엘 전선의 확대를 위해 도발을 시도할 수는 있다. 실제로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 전선에서 교전을 이어가고, 예멘의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을 향해 드론과 순항미사일을 발사했으며, 이라크의 인민동원군 일부도 시리아의 이스라엘 국경 지대로 집결했다.

‘두 국가 해법’ 기반한 정치적 해결 촉구
그러나 이란의 강경파 지배 연합은 미국의 고강도 제재로 비롯된 경제 파탄과 히잡 강제 착용 반대 시위에 따른 국내 여론의 악화로 전쟁 개입이 부담스럽다. 이란 내에서 이어지는 민생고 항의 시위에는 지방 보수층과 저소득층이 적극 참여해 강경파의 지지층마저 흔들리고 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및 여러 친이란 프록시 조직은 후원국 이란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무력 도발을 제한할 것이다. 이집트는 이번 충돌 과정에서 가자지구와 맞닿은 라파 국경을 열어 인도적 차원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대피시키라는 이스라엘과 국제사회의 제안을 거절하다가 최근 외국 여권 소지자와 부상자의 입국을 잠시 허용했다. 가뜩이나 인기 없는 권위주의 정권인데 팔레스타인 주민의 유입이 국내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어 그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한편 러시아는 전쟁 초기 중립 태도를 보였으나 점차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비난하며 팔레스타인 편에 서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은 미국 주도의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도 공격용 무기 대신 레이더 장비만 제공했으나 러시아는 자국에 드론을 비롯한 다양한 무기를 공급하는 이란과 밀착했다. 중국도 전쟁 초기엔 양측 모두의 폭력 중지를 요구하며 중립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했으나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지상전이 과도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자이쥔 중동특사를 요르단에 파견해 중재자 역할을 시도했으나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물론 주변국을 움직일 만한 뾰족한 수단은 없어 보인다. 북한은 이번 전쟁이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범죄행위에 따른 결과라며 팔레스타인에 도움을 줄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10월 18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AP/뉴시스)
반면 우리 정부는 이스라엘에 가해진 하마스의 무차별적 공격을 규탄하고 하마스가 억류한 인질의 무사 송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인도적인 교전 중지, 이스라엘의 국제법 준수 등을 강조했다. 또 민간인 피해자를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약속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에 기반한 정치적 해결을 촉구했다.

이번 지상전에서 이스라엘이 하마스 대원 대부분을 제거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가자지구 내 소수의 급진주의 세력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단호한 작전 과정을 지켜본 다음 세대가 다시 복수를 다짐하고, 이스라엘은 남은 세력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가자지구의 봉쇄를 이어갈 수 있다. 또다시 급진주의 추종 세력이 선제공격으로 도발하면 이스라엘이 맹렬한 기세로 공습하는, 지금까지와 비슷한 충돌 상황이 계속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현재 논의되는 대안은 하마스를 궤멸시킨 다음 파타흐가 이끄는 서안 지역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가자지구 통치권을 이양하는 방안이다. 이때 파타흐가 안정적으로 통치를 시작하도록 이집트와 요르단 등 주변 아랍국가가 평화 유지 병력을 파견할 수도 있다.

북, 하마스식 기습 도발 가능성 낮아
관건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16년 동안 하마스 통치하에 있던 가자지구를 성공적으로 통치할 수 있을지다. 이번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2021년 팔레스타인 정책조사연구소가 서안 지역과 가자지구의 성인 남녀 1270명을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당면한 과제는 부패(26%), 빈곤과 실업(22%), 가자지구 봉쇄(20%), 이스라엘의 점령(16%), 서안 지역과 가자지구의 분열(12%) 순이었다. 응답자의 84%는 파타흐가, 72%는 하마스가 부패하다고 답했고 58%는 하마스가, 53%는 파타흐가 두려워 비판할 수 없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뒤로하고 2020년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을 비롯한 아랍 4개국이 이스라엘과 수교한 아브라함 협정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53%)이 자신의 지도부에 책임이 있다고 봤다. 즉 파타흐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주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결국 2006년에 발발한 파타흐와 하마스의 유혈 충돌로 무기한 연기된 총선 및 수장 선거가 하루빨리 시행되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파타흐와 하마스 간 갈등 일변도의 장기 관성에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작동해야 할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서안 지역 라말라를 방문해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악수하고 있다. (AP/뉴시스)

하마스의 기습 도발 이후 북한의 유사한 공격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하마스 같은 급진주의 조직이 일시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유도해 현상 변경을 시도한다면, 체제 수호가 최종 목표인 북한 정권은 선택적인 시선 끌기로 현상 유지를 추구한다. 북한을 향한 국제사회의 과도한 관심은 오히려 외부 자극과 충격으로 작용할 수 있기에 북한 정권에는 불필요한 국제적 관심을 받을 정치적 동기가 별로 없다. 따라서 북한은 위험 회피에 적격인 자발적 고립과 폐쇄적인 주체사상에 집착한다. 이들은 기괴한 허세를 종종 부리지만 현상 변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과욕은 체제 수호에 금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따라서 북한의 목적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와 혼란을 일으키는 데 있다. 그래서 더 위험한 상대일 수 있다.

장 지 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