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32021.03

2019년 10월 1일 대구 공군기지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K-9 자주포를 사열하고 있다. ⓒ연합

진단


북한의 군사력 건설 방향과
남북한 군사력 균형 변화



올해 초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138개국중 6위, 북한은 28위로 나타났다. 현재 남북한의 군사력을 살펴보고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남북이 모두 강조하는 ‘힘이 뒷받침하는 평화’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1월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 및 통일·외교·안보 관련 정부부처 업무보고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강한 국방이 평화의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 정부 들어 4년간 국방예산 증가율이 7%대를 기록하며 지난해부터 국방비 50조원 시대를 열었다"며 “이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한 국방력을 갖춰 나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국방개혁 2.0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전력 현대화 사업을 속도감 있게 실행하고, 인공지능, 로봇, 드론 등 4차 산업 혁명의 신기술을 군에 적극 도입하여 새로운 형태의 미래위협에 대비하면서 국내 민간산업 발전과의 선순환도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 역시 2021년 1월 초 개최된 제8차 노동당대회에서 ‘평화적 환경’ 조성을 강조하며 군사력 강화를 다시 천명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제8차 당대회 2일차 회의(2021.1.6.)에서 “국가방위력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강화하여 나라와 인민의 안전과 사회주의 건설의 평화적 환경을 믿음직하게 수호하려는 중대의지를 재천명”했다고 전했다. 또한 “국가존립의 초석이며 나라와 인민의 존엄과 안전, 평화 수호의 믿음직한 담보인 국가방위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데 대한 혁명적 입장을 엄숙히 천명”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이구동성으로 ‘평화’를 언급하면서도 이를 위한 군사력 증강의 필요성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힘이 뒷받침하는 평화’는 한반도 차원의 안보 딜레마와 이에 따른 남북한 간 군비경쟁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고 있다. 문 대통령의 언급은 한국 입장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위협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으며, 김 위원장의 언급 역시 마찬가지이다.

  9·19 군사합의가 일정하게 이행됨으로써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비교적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른바 ‘한반도 평화의 봄’ 국면 이전과 비교했을 때 가능한 상대적인 평가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상당기간 직면할 수밖에 없는 군사적 현실은 ‘군비경쟁의 지속’이다. 이는 우리가 당장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낮추는 것 못지않게 충돌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한다는 교훈을 주지만 이를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의 군사력 건설 방향: 첨단화, 정예화
   북한은 김정은 집권 초기인 2013년 ‘경제건설 및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이른바 ‘항구적인 국가전략노선’으로 선언했지만, 2017년 말까지 추진된 이 노선은 사실상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노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은 김정일 시대 단 두 차례의 핵실험을 단행하는 데 그쳤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무려 네 차례나 핵실험을 단행했으며, 점점 폭발력을 증대시켜 마지막 핵실험이었던 제6차 핵실험(2017.9.3.)에서는 핵융합방식의 수소폭탄에 버금가는 위력을 보여줬다. 또한 김정은 체제는 병진노선을 추진하는 동안 지대지탄도미사일의 사거리 연장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화성-15형’ 시험 발사에서 거둔 성과를 근거로 이른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는 김정은 체제가 병진노선을 추진하는 동안 핵무력 건설 부문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반면 경제건설 부문에서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4월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을 새로운 국가전략노선으로 제시한 것은 예견됐던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9년 2월 이후 한반도 정세 전환이 일단 멈춤으로써 북한이 나름대로 구상했던 경제발전 로드맵을 그대로 추진하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2020년에는 태풍이 북한의 곡창지대를 강타하고,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해 북한은 국경을 봉쇄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 체제는 제8차 노동당대회에서 자력갱생에 기반한 경제건설과 국방력 강화를 다시 꺼내들었다.

2019년 10월 4일 평양역 앞 대형TV로 북극성-3형 SLBM 시험 발사 장면을 지켜보는 북한 주민들 Ⓒ연합  

  김정은 위원장이 제8차 노동당대회에서 제시한 북한의 군사력 건설 방향은 이에 앞서 치러진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어느 정도 드러났다. 김정은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된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과 관련해 국내외 언론의 관심은 화성-15형보다 더욱 긴 사거리를 가질 것으로 평가되는 새로운 장거리지대지탄도미사일, 전략무기로 평가되는 ‘북극성-4ㅅ’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집중됐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북한 열병식에 거의 등장한 적이 없는 새로운 지상군 무기체계가 대거 등장한 점도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대목이다. 선진국의 최신형 전차를 떠올리게 하는 탱크, 차륜형 자주포, 다양한 구경의 방사포(다련장로켓), 대공미사일과 레이더 탑재 차량 등 총 11종에 이르는 신형 무기가 등장했다는 평가도 있다. 또한 북한 군인들이 착용한 군복과 헬멧, 군화를 비롯한 각종 장구류와 장비 등은 다른 나라 군인들이 착용하는 최신 장비와 비교해 결코 뒤처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제8차 노동당대회에서 한 보고를 통해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을 더욱 ‘첨단화, 정예화’해야하며 ‘무장장비의 지능화, 정밀화, 무인화, 고성능화, 경량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2020년 10월 열병식에서 보여줬던 재래식 군사력 증강 방향을 앞으로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핵·미사일 전력과 관련해 김 위원장은 북한이 핵전쟁을 더욱 주도적으로 억제할 수 있도록 핵무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탄두 보유고를 더욱 확대하고 전략 핵무기와 전술 핵무기를 지속 개발하며, 초대형 핵탄두와 극초음속으로 비행하는 탄두, 다탄두(MIRV)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또한 전술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중·장거리 순항 미사일, 핵잠수함, 고체 연료 ICBM 및 SLBM 개발 등을 통해 핵무기 운반수단을 더욱 다양화·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10일 북한 당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북극성-4형 미사일 Ⓒ연합   

남북한 재래식 군사력 균형의 변화 가능성
  일반적으로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1980~1990년대 이전까지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이 남한보다 우세했지만 이 시기 이후로는 남한의 재래식 군사력이 북한보다 우세한 상황이 지속된 것으로 평가한다. 2000년대 이후 남한이 미국 등에서 도입하거나 독자 개발하는 첨단 재래식 무기체계, 특히 항공 전력 등 정밀 타격 능력은 북한에 비해 질적 측면에서 절대적인 우세를 보이는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탈냉전 이후 북한은 우호적인 대외환경의 붕괴와 경제적 역량 부족 등으로 첨단 무기체계를 확보하는 질적 증강보다는 병력과 기존 무기체계 보유고를 늘리는 양적 증강을 지속해 왔다. 요컨대, 지금까지의 남북한 재래식 군사력 균형은 큰 틀에서 북한의 양적 우세와 남한의 질적 우세가 비대칭적으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이루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북한이 2020년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과시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2021년 1월 초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강조한 북한의 향후 군사력 건설 방향은 지금까지의 남북한 재래식 군사력 균형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북한이 재래식 군사력의 양적 증강뿐 아니라 질적 증강을 나름대로 도모해 왔으며, 앞으로는 질적 증강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당장은 어려울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질적 측면에서 남북한 사이의 격차가 점차 좁혀질 가능성이 있으며, 앞으로도 남한의 질적 우세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남북한 사이의 비대칭적인 재래식 군사력 균형을 깨뜨리려는 북한의 시도에 대응해 남한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남한이 북한의 양적 우세를 약화시키기 위한 양적 증강을 도모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이는 현재와 미래의 상황을 감안했을 때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아마도 남한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북한이 추격할 수 없을 정도로 질적 우세를 더욱 확고하게 하는 정도일 것이다. 이처럼 남북한 사이의 안보 딜레마가 더욱 확대·강화되는 상황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루라도 빨리 안보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 방법을 강구하는 것만이 보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장철운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