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32021.03

예술로 평화

도시의 진화,
개성공단의 미래



  개성공단은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 사이에 진행된 최대의 정치, 경제, 도시적 실험이었다. 정치, 경제적 실험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도시적 실험이었다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다. 개성공단은 이름 그대로 공단, 즉 공업단지였지 도시는 아니었지 않은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성공단 전체의 서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전면중단된 개성공단의 모습 ⓒ연합  
원대한 꿈을 담은 도시적 실험
  정식 명칭이 ‘개성공업지구’인 개성공단은 2000년 6월 15일의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남측의 사업 주체는 현대아산과 한국토지주택공사였고, 남북이 합작하여 구성한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전체 운영과 지원을 맡았다. 공사의 첫 삽을 뜬 것은 2003년으로, 2005년에 18개 회사가 입주했으며, 2010년에는 1단계 조성사업이 완료되었다. 원래 3단계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1단계에 그쳤고 그나마 입주 비율은 50% 미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5개 기업에서 북측 노동자 5만 5,000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개성공단은 북한 핵실험의 여파로 2013년에 1차적으로 가동이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었으나, 2016년 2월 11일 다시 전면 중단돼 현재와 같은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개성공단 전체의 계획을 들여다보면 왜 이것을 도시적 실험으로 불러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전체 면적 66.7km2(2천만 평), 계획 인구 50만 명, 입주 기업 숫자 2,000개 등이 예정되어 있었다. 공업시설을 제외한 나머지는 주거지역, 상업지역, 문화 및 공공시설 등의 배후도시였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신도시로 불리는 세종시의 현재 인구가 30만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원대한 계획을 그냥 공단으로 부른 것이 이상할 정도다.

  물론 전체 3단계 중에서 1단계만 조성되었고 그 1단계에도 공업시설과 일부 관리시설 정도만 들어선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구현된 개성공단은 도시라고 불리기 어렵다. 특히 상주인구와 유동인구의 관점에서 보면 개성공단은 남측 인원들로 구성된 극히 일부의 상주인구와, 북측 노동자들로 구성된 절대다수의 유동인구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상적인 도시라면 마땅히 존재해야 할 상주인구와 유동인구 간의 균형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 이다.

  가장 큰 이유는 개성공단 내에 주거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점차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교통이 열악한 북측 사정으로 인해 일부 북측 노동자들은 편도 2시간이 넘는 거리에서 통근해야 했고, 수면부족으로 인한 작업 능률 저하를 피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대규모 기숙사 건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실제로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마트, 금융기관, 보건진료소, 소방서 등도 운영되고 있었다. 즉 개성공단은 서서히 도시가 되어 가려던 참이었다. 남북은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개성공업지구 개발총계획도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신 개성’이 될 우리의 오늘
  언젠가 한반도의 상황이 변할 경우를 대비하여 개성공단의 미래를 그려 볼 필요가 있다. 일단 관점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개성공단은 처음부터 단순 공업단지가 아닌 복합적인 산업도시로 계획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개성공단’이 아닌 산업도시 ‘신 개성’으로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산업도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도시를 구상하고 만들어 온 지 이제 100년이 조금 넘었다. 프랑스 건축가 토니 가르니에가 1904년과 1917년에 ‘공업도시계획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것이 최초이며, 그가 제안한 내용들은 이후 세계의 도시계획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구상은 당시 산업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폐기물과 오염 등으로 인해 공업시설은 일반적 도시 기능과 유리되어 있어야 했다. 소위 기능주의적 지역지구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그동안 산업은 서서히 변화해 왔다. 첨단 산업은 종전의 굴뚝 산업과 성격을 달리한다. 환경오염 가능성이 낮아져 따라서 일반적 도시 기능과의 융합이 점차 가능해지고 있다. 그 결과 한때 도시를 떠났던 일부 생산 기능이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중이다. 이것이 소위 ‘생산도시론’이라는 개념으로,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도시 담론의 하나다. 우리는 100년 전 유럽에서 처음 만들어진 산업도시 이론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한반도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 바로 개성공단, 아니 신 개성이다.


황두진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