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32021.03

평화통일의 창

사회주의적 부귀영화의 꿈

문학으로 보는 북한 인민의 일상



  김정은 ‘3대 세습 정권’은 36년 만에 개최한 7차 당대회(2016.5.)와 5년 만에 다시 열린 8차 당대회(2021.1.)를 계기로 당 중심의 정상 국가로 안착하였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김정일 위원장이 선군(先軍)이란 이름의 극단적 비상조치로 ‘유격대’식 국가 경영을 강화한 지 25년 만이다.

채색화로 꾀하는 부드러운 이미지 구축
  김정일 시대까지 주민들은 나라가 어렵고 외세의 압박에 맞서야 하기 때문에 일상생활과 개인의 행복은 유보, 희생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사탕 한 알보다 총알 한 개를 더 생산해야 한다며 ‘선군’을 외쳤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 사탕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나라의 미래지만, 총알은 쏘면 없어지는 소모품일 뿐 다른 가치로 치환할 수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택한 문화정치적 전략은 ‘애민’이라는 부드러운 이미지 구축이다. 만성적인 벼랑 끝 위기 전략에 지친 북한 인민들에게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활로를 모색한 결과다. 평양 시가만 해도 김정일 시대(1994~2011)에는 회색빛 중심의 무채색이었는데, 이제는 알록달록한 채색화 스타일의 색채로 변화한 모습이 엿보인다. ‘감각의 변화’야말로 김정은 시대 문학예술의 숨겨진 변화의 징표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이 일상을 자유롭게 향유하는 생활 찬가가 전에 없이 늘어난 셈이다.

지금도 막 들려옵니다/ 저기 문수물놀이장 미림승마
구락부/ 마식령스키장에서/ 만경대 대성산/ 개성청
년공원 유희장들에서/ 인민의 기쁨 커만 가는 소리/
세상이 보란 듯이/ 우리 눈앞에 쏟아지는 식료품들과
화장품들/ 우리 손으로 만든 멋진 가방과 구두…/ 인
민생활 날마다 향상되니 / 인민들 모두가 좋아합니다/

- 전명옥의 시, 「인민의 한마음」(『문학신문』 2018.9.22.)



  문학이란 미디어에 나타난 김정은 정권 10년간의 북한 주민 생활을 보면 사회주의 문명국에서의 부귀영화를 꿈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 소설, 노래와 그림에서 핵무기와 로켓으로 ‘우주시대’를 구가하는 ‘사회주의 문명국’의 위세를 한껏 자랑한다. 이는 ‘핵무력과 경제병진’ 정책의 문화적 반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청년 지도자는 ‘사회주의적 부귀영화’를 파마약과 스키, 치즈, 횟집 등의 오감을 자극하는 가시적 이미지로 표현하려 애쓴다. 이를 위해서 생필품 생산과 경공업, 레저산업 개발에 전에 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가령 외제를 대체할 자력갱생형 자국산 파마약을 개발하는 여성 기술자 홍유정의 신기술 개발과 애정을 그린 렴예성의 단편소설 「사랑하노라」(『조선문학』 2018.3.)의 한 대목처럼 말이다.

우리 녀성들을 우리의 것으로 더 아름답게 가꾸어주자고, 그래서 우리
거리가 밝아지고 우리 사회가 밝아지고 우리 래일이 더 밝아지게 해야 한다고. …
이 작은 파마약 하나에도 사랑이 있다는 걸 엄만 모르지요? 뜨거운 사랑이…


천리마 잡지 ⓒ필자 제공      

허울뿐인 사회주의 문명국의 위상
  1970~80년대 ‘싸우면서 건설하자!’란 구호가 북한의 슬로건이었다면, 최근에는 한반도 평화 시대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따라서 경제 발전과 사람살이의 일상적 행복이 문학예술의 중심 소재로 자리 잡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원영옥의 시 「아이들아 더 밝게 웃어라!」(2018)나 선전화 「경공업부분에서는 인민들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소비품들을 생산보장하자!”」(2019)의 구호처럼, 70년대 중공업 군수산업 우선주의와 확 달라진 ‘일상 회복’이 현재 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타자의 시선에서 볼 때 ‘사회주의 문명국’의 부귀영화가 구호에 그칠까 우려하게 된다. 가령 북한 잡지를 펼쳐보라. 50여 년째 표지와 지질, 분량의 변화가 전혀 없는 80~90페이지짜리 『조선문학』, 『천리마』 잡지나 4쪽짜리 『문학신문』, 6쪽짜리 『로동신문』 같은 대표 미디어를 보노라면, 당정책 선전과 지도자 찬양이 넘쳐난다. 사설과 정론, 딱딱한 기사와 밋밋한 창작 속에 정치 슬로건이 무한 반복된다. 1960~70년대식 체제 경쟁과 낡은 개발주의 담론인 ‘빨리빨리’식의 속도전과 ‘하면 된다’는 군대식 밀어붙이기가 아직도 가득하다.

  기실 문학이나 예술은 모험적인 형식의 실험 없이 새로운 내용을 담기 어려운 법이다. 문학을 통해 한발 더 다가가 들여다본 북한 주민들의 일상이 부귀영화인지는 의문이다. 그들이 근무시간에 열심히 일한 후 여가시간에 말을 타고 물놀이를 즐기며, 스키 타고 치즈 먹는 윤택한 일상을 누리는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그들이 진정 사회주의적 부귀영화를 누리려면 평화체제가 제대로 정착되어야한다고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김성수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