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창
디지털 게임에 매료된 북한 주민들
2010년대 중반 이후
온라인·모바일 게임 대중화
게임은 세계 젊은이들의 문화적 소통 도구이자 놀이다. 북한 젊은이들은 국가적으로 정보화를 추진하기 전부터 해외 PC 게임을 암암리에 접하며 동시대적 감수성을 습득해왔다. 익명의 다수가 모여 온라인에 접속해 게임을 즐기는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가 세계적으로 대세인 것과 달리, 북한 젊은이들은 소수가 끼리끼리 랜선을 이용해 근거리 통신망을 구축해 대항전을 한다. 인터넷 환경과 컴퓨터 하드웨어 사양에 차이가 있기에 글로벌 유행과는 시차와 격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가상세계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프라인에서 모여 앉아 노트북으로 PC게임을 즐기는 북한 젊은이들은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고, 왕과 기사가 돼 적과 싸운다. 축구 선수로서 월드컵에 출전하고, 우주전쟁에 나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북한 사람들은 언제부터 게임을 즐겼을까? 북한에서 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부터다.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바둑과 장기는 북한이 강점을 가진 분야다. 2000년 하나로통신이 수입해 판매한 북한 바둑 게임은 국내 네티즌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에게 더욱 역동적인 재미를 느끼게 한 것은 장애물을 피해 미로를 통과하고, 격투를 하고, 레이싱을 하는 게임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 북한 국경지역에서 흘러들어온 일본산 콘솔 게임, 그중에서도 ‘슈퍼마리오’가 크게 유행하면서 북한 주민들은 새로운 재미에 눈떴다.
바둑·장기, 격투, 레이싱 등 다채로운 게임 출시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알판(CD)에 담은 해외 PC게임이 유입됐고, 이때 공공기관의 자투리 공간을 대여한 PC방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당시 북한 PC방은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김정은 시대 들어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한 목적으로 릉라인민유원지, 양덕온천문화휴양지 등에 ‘전자오락관’이 설립됐다. 이곳에서 북한 주민들은 우리가 전자오락실에서 흔히 하는 고전 게임을 비롯해 자동차·보트·스키보드 경주를 하고, 말을 타는 등 다양한 체감형 게임을 즐겼다.
모바일 게임은 2010년대 이후 북한이 자체적으로 휴대전화를 생산해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유행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닌텐도 위나 엑스박스 키넥트와 유사한 게임기도 출시돼 북한의 게임은 더욱 다양해졌다.
광흥무역사가 개발한 ‘땅크전’. (이지순 박사 제공)
2019년 전까지는 모바일 게임도 정보기술교류소에 가야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지만, 현재는 온라인 내려받기가 가능해졌다. 온라인의 확대는 자신의 게임 점수를 등록하는 ‘망순위’, 온라인으로 다른 사람과 겨루는 ‘망도전’과 같은 플레이를 창출했고, 아이템을 구매해 게임 승률을 높이는 ‘망결제’ 유형도 만들었다. 그러나 온라인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개인의 휴대전화를 검열하고 감시하는 북한 당국의 보안체계가 이전보다 더 촘촘해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둑과 장기를 제외한다면 북한은 게임 개발 역사가 짧다. 초기에는 국제적인 저작권 분쟁이 생길 소지가 있는 복제품들이 나왔다. 점차 해외에서 유행하는 게임을 모방하고 참조하며 보편적 스타일을 학습한 후 ‘우리 식 게임’을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완성도 높은 게임은 북한이 “완전히 우리 힘, 우리의 기술로 개발 완성했다”고 자평하는 ‘천하무적 소년장수 1.4’(2016)로 북한의 국민 애니메이션 ‘소년장수’를 원천 소스로 한 격투 액션 게임이다. 이 외에도 체육계와 산학연이 협업해 제작한 ‘조선의 태권도’(2017), 고구려 철기기술과 민족 음식 및 옷차림 지식을 습득하도록 구성된 ‘무술시합’(2019), 이순신과 거북선을 모티프로 한 전략 시뮬레이션 ‘임진조국전쟁’(2020) 등 게임을 하면서 민족문화와 전통을 배우고 상무적 기풍을 학습하도록 한 게임이 많다.
남북 청년 함께 어울리는 E-Korea의 꿈
북한의 게임 인구는 성별과 나이, 계층과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PC 게임은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춘 젊은 층, 그중에서도 격투와 전략 시뮬레이션을 좋아하는 남성이 주로 즐긴다. 반면 색깔과 모양을 맞추는 ‘별찌까기’나 ‘색깔맞추기’, ‘탑쌓기’ 같은 퍼즐 게임이나 장기와 바둑과 같은 보드 게임은 여성과 중·장년층이 접근하기 쉬운 편이다. 특히 주패(카드) 게임은 북한의 국민 게임으로, 휴대전화에 기본적으로 설치될 정도다.
북한이 개발한 다양한 주패 게임. (이지순 박사 제공)
즐거움을 추구하는 게임은 공감과 소통 채널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우리 식 게임’은 게임에 재미 이상의 것을 고려해 넣었지만, 다른 문화예술 생산물과 달리 정치성과 이념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특히 북한은 개발 기획력과 디자인 역량은 부족해도 인공지능 기술력이 특화돼 있다. 교육, 보건, 관광, 요리, 농업, 지리 등에서 게임의 메커니즘을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는 북한 환경은 디지털 교류협력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남과 북이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채택된 e-스포츠에서 단일팀으로 활약할 수도 있다. 가상공간인 E-Korea에서 남북 청소년이 한반도 역사와 문화, 전통, 미래를 토론하며 함께 게임을 만들고 함께 놀아본다면 그 또한 즐거울 것이다.
이 지 순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