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포커스
북·중, 북·러 무역 재개와 북한 내부 변화
코로나19 이후 부익부 빈익빈 심화,
‘부의 재분배’ 가능성 높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면서 북한 경제가 기지개를 펴고 있다.
지난해 9월 북·중 화물열차 운행이 재개됐고, 같은 해 11월 북한 대동강역과 러시아 하산역을 통한 북·러 무역도 재개됐다. 현재 북한 상황과 향후 전망을 정리해봤다.
북한 당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020년 1월 국경을 폐쇄했다. 그로 인해 북한 대외무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던 북·중 공식 무역이 80% 이상 감소하는가 하면, 약 4%를 차지한 북·러 무역은 통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지난해 9월 26일 북한 신의주와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오가는 화물열차 운행이 재개되면서 2022년 양국 교역액은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의 절반 수준을 회복했다. 올해는 회복세가 더욱 뚜렷하다. 4월 18일 중국 해관총서(세관) 발표에 따르면 3월 북·중 교역액은 1억5846만 달러(약 2104억 원)로 전월 대비 31% 증가했고, 지난해 동월보다는 161% 급증했다. 올해 1∼3월 누적 교역액은 4억8585만 달러(약 6452억 원)를 기록, 작년 동기 대비 147% 증가했으며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동기의 95% 수준까지 회복했다(‘그림 1’ 참고).
출처 : 중국해관 통계 바탕으로 저자 작성
한편 지난해 9월 말 북·중 간 화물열차 재개에 이어 같은 해 11월 3일 북한 나선특별시 두만강역과 러시아 연해주 하산역을 오가는 열차 운행도 약 2년 8개월 만에 재개됐다. 그에 앞서 주북한 러시아 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양국 관계는 2019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양국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발전하고 있으나 코로나19 퇴치 조치가 양국 간 여러 중요한 협력 분야 이행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코로나19 유행세가 잠잠해지면 북·러 간 협력이 재개될 수 있다는 걸 함축했다.
물론 북·중 간 화물트럭 무역은 여전히 재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때 절반가량 하락한 북한 내 원·달러 환율이 지난해 9월 이후 코로나19 직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는 사실은 북·중 간 무역이 곧 정상화될 것이라는 전망 및 기대심리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북한 원·달러 환율을 정기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데일리NK 자료에 따르면, 북한 환율은 2013년 이후 달러당 8000원 전후에서 움직였으나 코로나19 봉쇄가 시작된 2020년 이후 급격히 하락해 2022년 초에는 4700원 선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지난해 8월부터 종전의 8000원 전후를 회복했다(‘그림 2’ 참고).
북한은 과연 식량 위기인가?
그렇다면 코로나19 위기를 겪은 북한 경제 현황은 어떨까. 북한 안팎에서 식량 위기설, 아사자 속출설 등 다양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국경이 봉쇄된 이상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몇 가지 자료를 통해 추론해보면, 북한은 코로나19가 아니어도 만성적인 식량 문제에 직면해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코로나19 유행 이후 주민 상당수가 굶주림을 겪을 만큼의 식량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만약 식량 위기라면 우선 초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통제를 벗어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장마당 식량 가격이 폭등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의 쌀과 옥수수 등 곡물 가격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해 큰 폭으로 상승하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19 이전보다 하락한 적도 있다.
이는 국가 통제에 의한 결과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을 결정적인 요인으로 단정하기에는 다소 의문이 남는다. 국가가 곡물 가격을 통제하려면, 식량 가격을 억제할 만큼의 재원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북한에서 시장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지 이미 30년이 경과한 이상, 주민들의 시장 의존도가 높다.
무엇보다 북한이 식량 위기에 처해 있다면 옥수수 등 값싼 곡물이 주요 수입 품목에 포함돼야 하는데, 지난해 북한이 중국에서 들여온 수입 품목 순위를 보면 타이어나 설탕, 담배 등이 식량보다 윗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표 1’ 참고).
물론 지난해 10월 이후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식량을 대규모로 수입하긴 했다. 그러나 곡물 구성을 보면 값싼 옥수수가 아니라 쌀(73.5%)과 밀가루(26.3%)가 대부분이다. 이 가운데 특히 밀가루는 북한에서도 식생활의 중심이 되는 1차 식량이라기보다는 과자 등 간식을 만드는 중간재로 많이 쓰인다.
최근 북한 내부 경제 상황에 비춰보면, 북한이 식량 수입을 늘린 이유는 광범위한 식량 위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 배급 대상이 갑자기 증가했기 때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당국은 최근 평양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대대적인 건설 사업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대규모 돌격대가 동원되고 있는 양상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확인된다. 예를 들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 2월 26일 자에는 “전국의 모든 청년동맹조직들에서 무려 10여만 명의 청년들이 수도건설에 탄원해 나가고…”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다. 대규모 돌격대가 평양 아파트 건설에 동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북한에서 건설 자재 수요가 늘어나는 양상도 감지된다. 무역통계뿐만 아니라 중국 단둥에서 북한 신의주로 넘어가는 물류 트럭에 건설 자재가 잔뜩 실린 모습이 포착된 일도 있다.
어쩌면 북한은 현재 모든 계층에서 전반적으로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기보다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며 부의 재분배 현상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정보와 권력을 가진 이는 국경 봉쇄 소식을 좀 더 빨리 듣고 수입 상품을 독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북한이 2009년 11월 30일 화폐교환을 실시했을 때도 나타났다.
당시 북한은 모든 지폐에서 ‘0’을 두 개씩 떼어낸 새로운 화폐를 발행했다. 구권 100원을 신권 1원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면서 구권 교환에 제한을 두고, 나머지는 전부 무효화했다. 암시장 거래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해온 북한 부자들은 이때 재산의 상당 부분을 하루아침에 잃었다. 반면 미리 정보를 취득한 사람은 화폐교환을 계기로 오히려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이는 비단 북한만의 현상이 아니다.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세계적으로 불평등 지수인 지니계수가 상승하는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1990년대 북한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한쪽에서는 사람이 굶어 죽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당시 300달러가 넘는 일본산 중고 자전거를 사고자 사람들이 몰려드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하곤 했다.
지난해 11월 중국 단둥에서 북한 신의주로 넘어가는 물류 트럭 내부.
건설 자재가 가득 실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필자 소장 자료)
북·중·러 삼각 경제 협력 가능성은?
주북한 러시아대사는 코로나19 기간 북·러 양자뿐 아니라 북·중·러 삼각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발언을 내놓았다. 관광을 비롯하여 북·러 임가공 과정에서 중국의 원료 자재를 활용하는 방안 등이다(‘그림 3’ 참조).
이런 의미에서 코로나19 기간 동안 가발, 눈썹 등이 북한의 대중 수출 중 5위를 차지한 건 함의하는 바가 크다. 물론 현재 대북제재 상황에서 북·중, 북·러, 북·중·러 경제 협력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2016년 이후 러시아와 중국이 대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에 동참했을 때와는 국제 정세가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고 러시아가 서방세계의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대북제재를 얼마나 준수할지 확신하기 어렵다.
정 은 이
통일연구원 인도협력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