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02023.06.

5월 3일(현지시간) 수단 수도 하르툼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4월 15일 시작된 수단 내 무력 충돌로 5월 초 기준 500명 이상이 숨지고 400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하르툼=AP/뉴시스)

국제

수단 무력 충돌 사태의 국제적 함의

‘프로미스 작전’으로 드러난
역량 바탕 삼아 아프리카 외교 강화해야

4월 발생한 수단 무력 충돌 사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이 과정에서 주변 국가와 동맹국 지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우리 국민 안전을 지킨 ‘프로미스 작전’을 성공시켜 세계적 찬사를 받았다. 수단 무력 충돌 사태의 배경과 진행 상황, 우리 외교 관점에서 주목할 점을 살펴봤다.

4월 15일 시작된 수단 군부 간 무력 충돌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필자는 지난해 6월 수단 다르푸르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해당 지역에서 진행된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수단 다르푸르 평화와 재건을 위한 청년자원활동(The Youth Volunteers Supporting Peace and Recovery in Darfur, YoVoReD)’ 사업에 대한 연구 목적이었다. 지난해 방문 당시 수단 수도 하르툼은 안전에 큰 문제가 없었고, 오랜 기간 전쟁으로 고통받은 다르푸르 지역도 안전했다. 하지만 현재 수단은 다시 한번 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수단 무력 충돌의 역사적 배경
현재 수단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지였던 두 장군의 갈등에 그 원인이 있다. 수단 군부 지도자인 압델 파타 알 부르한 장군과 수단 정부가 운영한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 리더인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의 갈등이 무력 충돌로 이어진 것이다.

RSF는 공식적으로 2013년 창설됐지만, 그 전신은 다르푸르 학살 주범으로 알려진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다. 잔자위드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약 30만~40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을 학살하고 200만~300만 명에 이르는 국내 실향민을 만든 21세기 최악의 학살 ‘다르푸르 학살’의 주요 가해자로 알려져 있다.

2006년 수단 독재자였던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은 RSF를 정규 군사조직으로 편입시켰으나, RSF는 다르푸르 지역에서 대규모 금광을 발견한 후 독자 세력을 키웠다. 30년 동안 수단을 지배한 알 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시위가 격화하자 RSF는 2019년 4월 11일 알 부르한 장군이 이끌던 수단 군부와 협력해 알 바시르 대통령을 축출했다. 다갈로와 부르한이 손을 잡은 것이다. 2년 뒤인 2021년 10월 25일, 군부는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민간인 총리였던 압달라 함독을 가택연금하며 정권을 차지했다. 이때도 다갈로는 부르한과 한편에 섰다. 양자의 갈등이 시작된 건 쿠데타 이후 군부 즉 부르한 세력이 중심이 돼 국정을 운영하면서부터다. 두 세력의 대립은 4월 15일 물리적 충돌로 이어졌다.

지난해 9월 13일(현지시간) 수단 수도 하르툼에서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대가 권력의 즉각적인 민간 이양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하르툼=AP/뉴시스)
수단은 이전에도 여러 분쟁에 시달렸다. 그 배경에는 지리적 역사적 맥락이 있다. 수단 북쪽 지역에는 주로 무슬림인 아랍인이 거주하는 반면, 남쪽 지역 거주민의 주류는 아프리카 흑인 지역민이다. 이들 간에는 오랜 기간 지속되는 갈등이 있다. 수단이 중동·북아프리카(Middle East and North Africa, MENA)에 속하는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Sub-Saharan Africa)에 속하는지에 대해서도 논쟁이 있다. 2011년 남수단이 독립함으로써 수단이 현재 형태로 분리되기 전부터 민족 간 갈등은 수단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갔으며, 현재 수단에서도 이러한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오랜 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수단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다. 수단을 언급하면 분쟁, 난민 문제, 인종 학살, 절대 빈곤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필자 또한 현지를 방문하기 전에는 수단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다르푸르에서 지역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편견을 깨고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수단은 MENA 지역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양쪽에 속할 수 있으며, 그래서 두 세계를 잇는 관문 구실을 할 수 있다. 이는 지리적으로 상당한 이점이 될 수 있는 요소다. 더불어 홍해와 접해 물류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도 갖추고 있다. 금과 석유 등 지하자원이 풍부해 경제적 발전 가능성 또한 높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단 시민들이 좋은 국가를 건설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수단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대변한다.

국제정치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수단의 외교관계는 아직 기초적인 단계로 평가할 수 있다. 두 나라는 1976년 영사관계를 수립하고 1977년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었다. 북한과 비교해도 8년 늦은 시기다. 이후에도 수단의 불안정과 한국 정부의 관심 부족으로 인해 양국관계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이 수단을 대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함으로써 한국과 수단 관계는 더욱 멀어지게 됐다. 2020년 미국이 수단을 대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했지만, 여전히 수단을 방문하려는 한국인은 미국 방문 시 비자를 새로 신청해야 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볼케르 페르테스 유엔 수단특사가 5월 22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 사회에서 최근 수단 상황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국내외 찬사받은 ‘프로미스 작전’의 함의
그럼에도 진전이 없지는 않았다. 필자가 연구한 YoVoReD 사업은 코이카 지원을 받아 유엔개발계획(UNDP)이 시행하는 개발협력사업으로, 다르푸르 지역에 평화를 구축하면서 지역민의 생계 안정과 청년층 경제 활동을 지원하는 내용이라 지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앞으로도 이러한 개발협력 사업을 바탕 삼아 한국과 수단의 외교관계를 더욱 확장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 수단이 보유한 천연자원과 풍부한 인적 자원을 고려할 때 수단은 향후 아프리카에서 한국의 중요한 투자 대상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물론 수단이 빠른 시일 내에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이번 수단 사태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실행한 ‘프로미스 작전’은 한국의 외교 및 안보 역량을 만천하에 과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르툼에서 발생한 무력 분쟁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한국은 즉각 외교주재원과 재외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4월 25일 우리 교민 28명이 안전하게 서울공항에 도착하면서 마무리된 프로미스 작전은 단순한 교민 철수 작전을 넘어, 한국의 국력과 저력이 선진국 수준임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 작전은 전 세계에 한국의 대외 안보 능력과 신뢰도를 확고히 보여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르툼이 급작스럽게 혼란 상태에 빠지는 바람에 일본 등 많은 국가는 제대로 된 교민 철수 작전을 계획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수단대사관을 중심으로 상황의 심각성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한 뒤 빠른 시일 안에 수단 전역에 흩어져 있는 교민을 수도로 집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방탄차 등 보호 수단을 활용하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교민 안전을 확보했다. 이후 우리 교민들은 하르툼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포트수단 국제공항까지 무사히 이동한 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공항을 거쳐 한국으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이 작전 수행 과정에서 한국은 우리 교민뿐 아니라 다른 국적의 민간단체 관계자 탈출도 도왔다.

특히 주목할 것은 한국이 수단 주변 국가와 동맹국의 지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외교 전략을 전개한 점이다. 미군은 직·간접적으로 프로미스 작전을 지원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우리 교민 탈출을 위해 무력 충돌 두 주체 세력에 양해를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는 교민들이 제다 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안전히 귀환하도록 도왔다. 이러한 과정은 한국이 이 지역에서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프로미스 작전을 성공리에 마치고 4월 28일 복귀한 윤정한 소령이 가족들과 재회하고 있다. 윤 소령을 비롯한 공군 요원들은 우리 교민을 수단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제다공항으로 안전하게 후송하는 임무를 완수했다. (공군 제공)
수단의 미래와 한국 외교
수단에서 이번에 발생한 무력 충돌로 인해 5월 21일 기준 100만 명 넘는 사람이 수단을 떠나거나 원래 살던 지역을 이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스럽게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로 협상이 진행됐고, 무력 충돌을 벌인 두 세력이 5월 22일부터 일주일간 임시 휴전을 갖는 동안 주민을 위한 기본적인 서비스와 인도적 지원이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2년 만에 또다시 무력 분쟁의 늪에 빠지게 된 수단이지만 수단의 미래 가능성은 무한하다. 앞서 설명했듯 지리적 장점과 풍부한 천연자원 그리고 노동력을 고려할 때 수단은 빠른 시일 내에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많은 수단 사람들이 평화를 갈망하며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필자가 만난 수단 사람들은 남을 해칠 줄 모르고 정직하게 일하고자 하는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소수의 위정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단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은 수단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수단이 빠른 시일 내에 평화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한국의 외교력을 활용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다른 국가보다 빠르게 행동한다면, 수단이 안정을 되찾았을 때 한국은 아프리카에 수단이라는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 영 완 서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