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02023.06.

지난해 10월 판문점 3초소에서 촬영한 북한 풍경. 한때 남북 교류의 상징이던 개성공단이 보인다. (뉴시스)

특집


윤석열 정부 통일·대북정책 중점 추진과제 분석

개방과 소통을 통한 민족동질성 회복

남북 미래세대가 중심 되는
개방, 소통, 공감 추진해야

윤석열 정부 통일·대북정책 비전은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네 번째 중점 추진과제 ‘개방과 소통을 통한 민족동질성 회복’에 대해 집중 분석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여가 흘렀다. 그동안 정부는 국정 운영 전반에 걸쳐 ‘비정상의 정상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통일·대북정책에서도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 구현을 위해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북핵 문제의 실효적 해결을 추진하고, 원칙 있고 실용적인 남북관계를 추구하면서 자유민주적 평화통일 기반도 내실 있게 준비하고자 한다.

이 글 주제인 ‘개방과 소통을 통한 민족동질성 회복’은 정부의 통일·대북정책 5가지 중점 추진과제 중 하나다. 여기서 정부는 북한 비핵화 이전이라도 민족문화·역사, 체육·예술·종교·학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고자 한다. 방송·언론·통신 분야에서도 상호개방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 대응은 이념과 국경을 넘어선 글로벌 현안이라는 인식을 갖고 남북 그린데탕트를 통한 한반도 기후·환경공동체 구축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남북 그린데탕트의 경우 산림·식수·위생 분야 협력을 시작으로 마을단위 친환경 협력, 재해·재난 협력, 남북 간 수자원 공동이용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서 더 나아가 한반도 ‘기후·환경 협력 인프라’ 구축을 포함하고 있다. 아울러 70여 년 남북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를 생태, 문화, 평화와 안보의 가치를 담은 세계적인 협력·소통의 공간으로 발전시키려는 구상도 갖고 있다. 특히 ‘DMZ 그린평화지대화’는 DMZ와 한강 하구를 포한한 남북접경지대를 다방면의 발전적 협력을 통해 확고한 평화지대로 만들려는 계획이다. 남북은 접경지대를 통해 산과 하천, 공기 등 자연을 공유하기 때문에 수자원과 산림 관리, 전염병 등에 대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따라서 접경지대에 적합한 남북협력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상호 이익을 창출하고 신뢰를 높여갈 수 있을 것이다.
민족동질성 회복의 기반은 인간 존중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정책 내용과 추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기대한 만큼 충분한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그 배경에 70여 년간 지속돼온 남북관계의 속성, 그리고 혼돈의 국제 정세 등이 놓여 있다. 한반도는 지금 비핵화는커녕 오히려 핵 위기가 더욱 고조된 실정이다.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는 갈수록 수렁에 빠져들고 있고, 미·중 패권경쟁은 전방위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장기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사회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자신의 세 번째 임기가 끝나는 2027년 안에 대만 통일전쟁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이 널리 퍼져 있다. 전쟁이 현실화한다면 한반도는 대만 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중국이 주한미군의 대만 파병을 막고자 북한의 대남(對南) 도발을 부추기거나 묵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반도가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려면 남북한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한반도의 주인은 우리”라는 인식과 용기가 절실하다. 그런데 당연한 듯하면서도 콕 집어 규정하기가 힘든 문제가 있다. 바로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그 ‘우리’를 우리(대한민국)는 남북과 해외동포를 포함한 한민족으로 본다. 그러나 북한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북한은 스스로를 ‘김일성민족’으로 칭하는데, 그 범주에 남쪽 시민이 포함될 수는 없다. 김정은은 2021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 연설에서 ‘우리국가 제일주의 시대’를 공식 선포했다. 그는 ‘우리국가 제일주의 시대’를 “국가의 존엄과 지위를 높이기 위한 결사적 투쟁의 결과로써 탄생한 자존과 번영의 새 시대”로 규정하면서 자존은 ‘국가 핵무력 완성’으로, 번영은 ‘자력갱생’으로 이루겠다고 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월 31일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그 어떤 큰물(홍수)에도 끄떡하지 않게 하천 정리를 실속있게 해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지난 해 봄 가뭄과 가을 홍수로 농업 생산에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의 ‘우리국가 제일주의’는 김정일의 ‘우리민족 제일주의’와 대비된다. 북한이 ‘민족’ 말고 ‘국가’를 내세운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동안 김정은의 언행으로 볼 때 우리국가 제일주의에는 ‘투 코리아’ 지향이 함축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이러한 관점을 갖고 있는데 과연 남과 북의 ‘민족동질성’은 무엇에서 찾을 수 있을까? 또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 꽉 막힌 남북관계를 뚫어 개방과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민족동질성 회복 정책을 실천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민족동질성 회복의 인식 범위를 인간 존엄성 회복과 인간 다양성 존중으로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시대에는 10가지 중 9가지가 달라도 하나가 같으면 서로 존중하고 화합할 수 있다.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지금은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기보다 ‘만들어가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특히 글로벌 시대의 민족동질성은 인간 존엄성과 다양성의 존중과 조화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배타성이 깔려 있는 민족 ‘통합(integration)’보다는 개방성에 바탕을 둔 민족 ‘화합·조화(harmony)’가 더 어울린다. ‘민족’을 ‘인간’으로 확대해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 중 하나인 ‘자유’의 가치는 민족을 넘어 인간 존엄성과 인간 중시를 의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요컨대 민족동질성 회복은 자유의 가치를 바탕으로 인간 존엄성과 다양성을 회복, 지향하는 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 통일·대북정책 중점 추진과제의 또 다른 키워드인 ‘개방과 소통’은 일단 남북 당국이 대화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처럼 대화가 단절된 채 상대방에 대해 일방적 말 폭탄을 쏟아내는 것으로는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서로 만나야 이해가 가능하다. 또 상호 공감대 형성과 동질성 회복 또한 기대할 수 있다.

동질성을 찾아가는 대화는 덜 민감하고 서로 필요로 하며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순서다. 그래서 정부가 제시한 문화·역사, 체육·예술·종교·학술 등 비정치적 분야에서 공감대와 관심사를 넓혀가는 대화를 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이와 함께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대북 인도적 협력은 정치·군사적 고려 없이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식량·보건·환경 분야뿐 아니라 북한이 큰 관심을 보이는 농업생산성 향상과 연계된 사안을 남북대화 의제로 제기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글로벌 네트워크 활용한 대화 추진
이제 남북 교류와 관련한 패러다임 전환을 고려할 시점이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은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단기적인 성과 위주의 이벤트성 교류협력에 관심이 많았고, 민간 교류협력에서도 정부가 과도하게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우리 정부와의 대화는 거부하면서도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원을 요청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북한의 시도를 좌절시키기보다 거꾸로 활용할 방도를 찾을 필요가 있다. 남북 양자 대화나 교류만 고집하지 말고 국제사회가 북한과의 교류에 나서도록 적극 지지하면서 그 과정에 우리 정부가 이해관계자로 참여하는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와 글로벌 기여 외교를 통한 ‘당당한 외교’와도 결이 맞다. 나아가 윤석열 정부의 남북 그린데탕트 구상을 현실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남북 그린데탕트는 환경생태 협력을 넘어 북한 주민의 삶 개선을 포함한 인도적 협력으로 범위를 넓히는 구상이다. 북한은 기후환경 관련 상황과 관리 역량 한계를 공개하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북한 주민의 삶과 직결될 수 있는 남북 그린데탕트 협력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경기도 파주시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풍군 풍경. 한복을 입은 북한 주민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다만 남북 그린데탕트는 북한 비핵화와 별도 트랙으로 접근하면서 실용과 유연성의 원칙 아래 추진하는 것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북한은 세계에서 자연재해에 가장 취약한 나라로 평가되는 만큼 우선 DMZ를 중심으로 남북 자연재해 공동대응에도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태풍, 홍수, 산불 등 자연재해뿐 아니라 아프리카돼지열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등에 대한 남북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접경 이북 기후환경 문제는 ‘저들(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과 북 미래세대의 개방과 소통을 강조하고 싶다.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10여 년 동안 김정은은 ‘어쨌든’ 자기 시대를 열었다. 돌발변수가 없는 한 그리고 김정은의 연령으로 볼 때 앞으로 20~30년은 김정은 시대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을 떠받치는 세력의 연경화(年輕化) 또한 상당 수준 이뤄졌다. 김정은 키즈(kids)가 북한 주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과연 김정은 키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실 통일은 미래세대 문제다. 진정 ‘평화적으로’ 통일을 하고 싶으면 남북 미래세대가 개방하고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정책에 우리 미래세대가 주도하고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회복해야 할 민족동질성은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에서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적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 낙 근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