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북한인권보고서, 공개 의미와 주요 내용
북한인권 증진, 국제 연대
및 협력 강화 계기될 것
3월 30일 정부가 ‘2023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했다.
2016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지 7년 만이다.
통일부는 북한인권법 제정 이듬해인 2017년부터 매년 보고서를 작성해왔으나 3급 비밀로 분류해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인권보고서 공개 의미와 주요 내용을 살펴봤다.
3월 정부가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 발간은 2016년 3월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설립된 북한인권기록센터의 △북한주민 인권실태,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에 대한 조사와 연구, △북한인권 실태 수집·보존·발간 기능에 따른 것이다. 이번 보고서는 정부의 첫 공개 보고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부는 북한인권법 제정 후 7년여의 시간이 흐를 동안 보고서를 공개한 적이 없다. 그동안 민간단체와 국책연구기관 등에서 북한인권백서를 비롯한 관련 자료를 발간해왔지만 정부 차원에서 북한인권보고서 공개 발간을 통해 북한인권 실태를 공식적으로 밝힌 점은 7년이라는 지체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준다.
이번 보고서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 입소한 북한이탈주민 3412명을 면담해, 이 가운데 508명이 경험한 1600여 개의 인권침해 사례를 중심으로 작성됐다. 보고서에서는 북한이탈주민 증언을 토대로 북한인권 실태를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조약 기준에 따라 △시민적·정치적 권리(강제노동, 이동 및 거주의 자유에 관한 권리,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 등 자유권)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식량, 건강, 근로, 교육 등 사회권)로 분류해 균형적·객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취약계층(여성, 아동, 장애인) 인권 실태와 △특별사안(정치범수용소,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도 별도로 기술했다. 그 항목에 따라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 시민적·정치적 권리(자유권)
세계인권선언 제6조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자유권규약’)에서는 생명권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북한 역시 자유권규약 당사국으로서 북한 주민의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나, 북한 주민들은 자유권규약에서 보장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자의적 생명 박탈이 빈번하게 자행되고, 마약범죄, 한국 영상물 유포, 종교·미신행위 등 자유권규약하에서 사형을 부과하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사형이 부과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더욱이 사형수 대부분은 상소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채 총살 방식으로 사형 집행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유권규약에서는 18세 미만 아동과 임신부에 대한 사형 집행을 금지한다. 그러나 2015년 북한 강원도 원산의 한 경기장에서 16~17세 아동 6명이 한국 영상물을 시청하고 아편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고 곧바로 총살됐다는 증언이 있다. 또 2017년 집에서 춤을 추던 도중 손가락으로 김일성 초상화를 가리킨 동작이 문제가 돼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는 이유로 임신 6개월인 여성이 공개처형됐다는 증언도 있는 등 북한에서는 18세 미만 아동과 임신부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3 북한인권보고서 표지와 본문. 이 보고서에는 북한 주민들이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현실이 담겨 있다.
이뿐만 아니라 고문 및 비인도적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비롯해 강제노동을 하지 않을 권리,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 피구금자의 권리, 이동 및 거주의 자유에 대한 권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사상·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 참정권과 평등권 등 시민적·정치적 권리와 관련해 북한 주민들은 자유권규약에서 보장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것으로 파악됐다.
■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하 ‘사회권규약’) 제11조에는 “모든 사람이 식량, 의복 및 주택을 포함해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한 적당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기아로부터의 해방을 기본적인 권리로 인정하고 개별적이거나 국제협력을 통해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사회주의헌법(2019) 제25조에 ‘국가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먹고 입고 쓰고 살 수 있는 온갖 조건을 마련하여 준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충분한 식량 확보가 어려워 북한 주민은 계층이나 경제력 수준에 따라 차별적으로 식량에 접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권과 관련해 일반 주민은 공적 의료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워 사적 의료행위가 만연해 건강한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열악한 의료 여건 탓에 마약을 의약품 대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증언에 의하면 북한 주민들은 마약을 의약품 대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으며, 질병 치료나 통증 완화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일반 가정에서 마약을 상비약으로 구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식수 공급 역시 원활하지 못해 집에 수도가 없거나 물이 잘 공급되지 않을 경우 우물, 공동수도, 강물 등을 식수로 사용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2019년 함경북도에서는 오래된 하수도관에서 배출된 하수가 지하수를 오염시켜 그 물을 마신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설사병에 걸렸다는 증언도 있다. 이 외에도 북한 주민들은 근로권, 교육권, 사회보장권 등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4월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한인권 조사기록의 의미 및 북한인권 인식 제고를 위한 민 · 관 · 국제사회의 역할’ 토론회에서 홍성필 통일과 나눔 이사(왼쪽에서 세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뉴스1)
■ 취약계층(여성, 아동, 장애인)
북한은 1990년 아동권리협약, 2001년 여성차별철폐협약, 2016년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했다. 그러나 북한의 여성, 아동, 장애인은 충분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가정, 학교, 군대, 구금시설 등에서 차별과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고, 탈북 과정에서는 인신매매, 성폭력 등에 노출됐다. 특히 탈북 여성이 중국 당국에 체포돼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는 경우 구금시설에서 나체검사, 체강검사(질 내부 검사), 성폭력, 강제낙태 등 다양한 인권침해에 노출된다는 점이 다수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
아동 권리 역시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가정과 학교, 보호시설 등에서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으며, 북한 당국은 피해 아동에 대한 적절한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만 아니라 북한 학생들은 교과과정에 따른 생산노동 외에도 학교에 의한 각종 노동에 동원되며, 학교 이외 기관이나 단체에 의해서도 여러 노동 현장에 강제 동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에 대해서도 북한은 장애인의 존재를 불명예로 인식해 차별하며, 이에 따라 북한 거주 장애인은 이동 및 편의시설, 치료 및 재활, 교육, 근로, 생활지원 등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 특별사안(정치범수용소,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북한에는 정치범을 따로 수용하는 곳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번 조사를 통해 파악된 정치범수용소는 총 11곳이다. 이 가운데 현재 운영 중인 것으로 보이는 곳은 평안남도 개천시 14호·18호, 함경북도 화성군 16호·청진시 25호, 함경남도 요덕군 15호 등이다. 이들 정치범수용소에서는 공개처형이나 비밀처형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설마다 다르지만 정치범수용소의 수용민은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주거 및 생활환경, 보건의료, 교육 등에 있어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국군포로, 납북자, 이산가족 등 소위 남한 출신 북한 주민의 경우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일상생활에서 차별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상급학교 진학, 직장 배치, 승진, 입당 및 입대 등에 있어 차별을 받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감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가운데)가 지난해 12월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31개국을 대표해 북한 인권 침해를 비난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주유엔 미국대표부 사이트)
북한인권 문제 공론화 의의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북한을 자극해 자칫 남북관계를 경색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그동안 우리나라는 북한인권 문제에 있어 소극적 자세를 취해왔다. 2005년 이후 유엔총회에 매년 상정돼 채택되고 있는 ‘북한인권결의안’의 경우에도, 우리나라가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남북관계를 우려해 불참 혹은 기권을 선택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개최된 유엔총회에서 4년 만에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으로 복귀한 데 이어 이번 북한인권보고서 발간을 통해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명확히 드러냈다. 특히 이번 북한인권보고서 발간은 정부 차원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북한 주민의 인권 실상을 국내외에 알려 북한인권 증진에 기여함은 물론 정부와 민간, 국제사회 간 연대와 협력 강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에도 인권의 보편성에 기반을 둔 지속적이고 일관된 북한인권 정책 추진과 더불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국내외적 공론화를 통해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김 에 스 라
민주평통사무처 정책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