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52023.11.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해 8월 “평안북도 선천군이 연료사업소 , 땔감판매소 등을 통해 땔감 문제를 해결했다”며 “다른 지역에서도 이 경험을 받아들여 지방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을 이룩할 것”을 주문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평화통일 창

북한의 에너지 현황과 월동 준비 실태

난방 공급 중단 30년 양극화 심화
땔감 도난 방지 위해 자물쇠 달고 큰 개 키워

북한 주민들은 춥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김장을 담그고 창문에 비닐을 친다.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난방연료다. 북한의 에너지 실태와 월동 준비 실상을 점검해봤다.

북한의 민생 인프라 중 가장 열악한 부문이 바로 ‘난방(열 에너지)’이다. 쌀은 필요량이 정해져 있고 시장에서 사거나 대체재를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방은 겨울철 24시간 내내 연료가 사용되며 날씨와 주택 구조에 따라 소요량이 커진다. 그래서 적지 않은 북한이탈주민이 이구동성으로 “쌀보다 난방이 더 시급하다”고 말한다. 초기 북한에는 일제가 남겨둔 공장과 발전소 등이 많았고, 소련과 동독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여러 도움을 주었다. 그 덕에 1960~1970년대 대다수 도시 주민은 넉넉하지는 않았으나 아껴가며 난방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중앙난방을 하는 평양 일부 지역을 제외한 도시 주민들은 대부분 석탄을 공급받았고, 농촌은 마을 전체가 날짜를 정해 함께 땔나무를 마련했다.

평양서도 중앙난방을 ‘아궁이’로 개조
그런데 정치시설, 군수시설, 산업시설 순서로 에너지를 배분했기 때문에 민생 인프라 개발·공급은 가장 후순위였다. 또 인프라 설계 자체가 지역·계층별 접근성 차등화 전략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도시가 농촌보다, 평양이 다른 도시보다 특혜를 받았다. 성분이 매우 좋거나 고위직 간부라면 중앙난방과 풍족한 연료 배급을 누렸지만 농촌은 연료 공급에서 모두 배제돼 주민들이 직접 땔감을 구해야만 했다.

북한은 주탄종유(主炭從油) 정책을 추진해왔는데, 북한의 산업, 경제, 기술 상태에 비춰봤을 때 화폐적, 시간적, 기술적 비용 소모가 커서 실패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1980년대 북한 경제가 내리막길에 들어서면서 주민 생활에도 그 충격의 여파가 전해져 공급된 연료만으로는 겨울을 버티기 어려웠다. 1990년대 들어서는 경제난 심화, 광산·설비 침수, 유지보수 중단 등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면서 평양의 중앙난방도, 도시 전역의 석탄 공급도 완전히 중단됐다. 북한 주민들은 큰 곤란을 겪게 됐고, 난방 공급이 재개될 기미는 지금까지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난방 공급 중단은 이제 30년을 훌쩍 넘겼고 그 사이 난방의 양극화는 심각해졌다. 여력이 있는 소수는 권력, 인맥, 화폐를 활용해서 가스, 석유, 전기 등의 다양한 연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반면 대다수 주민은 연료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땔나무를 직접 벌채하려 해도 산림은 매년 줄어들고 단속도 심해져 겨울나기가 힘들다. 벌채 속도에 비해 나무 성장 속도가 늦어 땔감을 구하려면 매년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나마도 산림감시원에게 담배나 화폐를 지불해야 한다. 산림 황폐화는 가뜩이나 상태가 좋지 않은 지형을 홍수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각종 재해의 파괴력을 높인다. 외부 도움으로 광산이 재가동되더라도 양질의 석탄은 북한당국이 중국에 대량 수출해버린다. 대북제재로 석탄 잉여분이 발생했지만, 그것이 다수 주민의 난방생활을 개선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간 북한당국의 정책에서 배제됐던 농촌이 난방 공급 중단으로 인한 타격을 가장 적게 받았다. 농촌 주민들은 현대적 난방시설이 아닌 아궁이를 쓰면서 스스로 나무 땔감을 조달해왔기 때문이다. 반면 가장 편하게 양질의 난방 공급을 받았던 평양과 대도시 상류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이들이 사는 중앙난방식 주택은 개별난방이 아예 불가한 구조라서 연료를 구해도 의미가 없다. 가스, 석유, 전기 등의 연료로 난로를 사용할 수 있지만 가격이 매우 비싸다. 전기 난방은 많은 전력이 소모된다는 이유로 북한당국이 금지시켜버렸다.

결국 북한당국이 친정권적 사람들을 선별해둔 평양에서조차 북한당국이 설치해준 ‘근대적’ 중앙난방 시스템을 철거하고 주민들 스스로 ‘전근대적’ 아궁이로 개조해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석탄이건 나무건 무엇이라도 이용해야 겨울을 버틸 수 있기 때문에 북한당국이 개조를 단속했지만 별수 없었다.

땔감 도난 방지 위해 자물쇠 달고 개 키워
북한 주민들은 11월을 전후해 월동 준비를 한다. 김장을 담그고 창문에 비닐을 치고 간단한 목욕을 위해 ‘목욕주머니’를 정비해둔다. 김장이라고 해봤자 고춧가루가 귀하기 때문에 배추를 소금에 절여 외부에 보관하는 정도다. 겨울철 동치미는 필수 반찬이자 빈번한 일산화탄소 중독의 유일한 자구책이다. 의학적으로 동치미가 일산화탄소 중독에 직접적 해독 효과가 없다고 이미 판명됐지만, 북한 의료계도 주민도 별다른 대안이 없다.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석탄이나 땔나무를 구매해 집 창고에 쌓아두기도 하는데 도난 방지를 위해 큰 자물쇠를 달고 큰 개를 키우기도 한다.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겨울철 추위에 크게 피해를 본다. 북한 주민은 이미 건강과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고 월동 준비도 어렵다. 특히 부양가족이 없는 노인과 고아, 임산부와 영아, 가난한 사람들, 수용시설에 갇힌 사람들은 더욱 취약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민 일부는 동상에 걸려 살갗이 터지면 환부에 소변을 바르고 극도의 고통을 참아낸다. 감염 우려가 크지만 대안도 없다. 부디 북한 주민들이 이번 겨울을 잘 이겨내길, 북한당국이 주민 생존권을 귀중하게 여기길 바랄 뿐이다.

박 민 주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연구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