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52023.11.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10월 19일 접견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0월 20일 보도했다. 김 총비서는 이 자리에서
“조 · 로(북러) 수뇌회담에서 이룩된 합의들을 충실히 실현하여 안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새시대 조 · 로관계의 백년대계를 구축하자”는 뜻을 밝혔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특집


북·러 접근에 따른 동북아 신냉전 구도와 전망

북·중·러 미래, 중국 입장과 직결
한국, 중국과의 관계 관리 만전 기해야

지난 9월 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 이후 북·러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분위기다. 미국 정부는 10월 13일 컨테이너 1000개 분량의 군사 장비가 북·러 정상회담 전에 이미 북한을 떠나 우크라이나 전장 부근까지 운송됐다면서 증거 위성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반도와 동북아는 물론 세계 질서 변화에 무시 못 할 변수로 떠오른 북·러,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분석해봤다.

북·러 밀착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신냉전’ 조류가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분석이 많다.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일이 공동의 위협에 맞서 안보 협력에 적극적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중·러 연대는 아직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중·러가 이익에 의해 의기투합할 수는 있어도, 공유하는 가치와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강력한 한 팀을 구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본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은 반은 틀리고 반은 맞다. ‘반미’와 ‘다극화’ 그리고 ‘주권 수호’가 북·중·러 연대를 추동하는 공유 가치이자 전략적 목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세 나라의 전략적 목표는 같을지라도 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역량과 수단, 그리고 각자의 셈법은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국의 인식과 입장이 중요하다.

김여정 “북·러 한 전호에 있을 것” 큰 울림
일단 러시아와 북한의 전략적 이해는 상당히 근접해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접근한 이유가 단지 탄약과 포탄, 재래식 무기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러시아는 서방과의 ‘문명적’ 결별을 선언하고 미국에 이의를 제기하는 모든 국가들을 규합해 반미 전선을 구축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올해 3월 러시아 정부가 발표한 ‘대외정책개념’은 미·서방에 대한 적대감과 비타협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문명의 승패를 건 ‘성스러운 싸움’에서 타협이나 양보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번 북·러 밀착이 군사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원인도 푸틴과 김정은 사이에 세계 인식과 전략 목표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특히 1월 북한이 러시아와 ‘한 전호(참호)’에 서 있을 것이라고 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발언이 러시아 관·학계에 큰 울림을 주었다. 러시아 언론에서 북한과의 연대 필요성을 주장하는 담론이 확산한 것도 김여정의 발언이 결정적 계기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조건’ 러시아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북한을 도와야 하며, 북한과 연대하기 위해서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무력화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주장이 늘어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푸틴 대통령과 대화할 때마다 미국의 패권을 종식시키고 다극화된 세계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러가 흔들림 없이 공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 관료들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의 행동을 ‘침략’으로 부르지 않으며, 나토(NATO)를 확장하고 러시아 안보 우려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미국과 서방을 비판한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10월 13일(현지시간) 밝힌 북 · 러 간 무기 운송경로 지도. (출처=NSC)

또 중국 관영 언론은 러시아와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게재하지 않는다. 2022년 10월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 대회에서 3연임이 결정된 시 주석은 집권 3기 출범 후 첫 해외 방문지로 러시아를 선택했고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2023년 3월 21일 중·러 정상회담 자리에서 푸틴은 시 주석의 3연임을 축하했고,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에게 2024년 러시아 대선 승리를 확신한다는 덕담을 건넸다. 두 정상은 반미 연대를 재확인하고 “각국의 영토 보전을 지지한다”며 타이완과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공조를 약속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적 고립에 직면한 러시아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가고 있으며, 중국은 오히려 미·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을 이용해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결국 두 나라의 전략적 연대는 서방의 비판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중국이 중·러 사이에 북한을 끼워줄지는 미지수다.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미국 패권 종식과 다극화 세계 질서를 앞당기자는 점에서는 러시아나 북한과 인식을 함께하지만, 북·중·러 연대를 통해 이를 실현하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북한 규탄이나 대북제재 강화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북한과 연대한다기보다는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힘들게 획득한 G2의 자리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필요하다면 미국과 타협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또 수시로 핵무기 협박을 입에 담는 러시아나 북한과는 달리 중국은 비확산 체제를 견지하며 핵보유국들이 책임 대국으로서 국제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중국은 북·러관계가 새롭게 조성된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에 대한 경고 의미 이상으로 발전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북·러가 군사적으로 결속함으로써 한·미·일을 자극해 신냉전 구도를 고착화하는 상황은 중국이 바라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북·중·러 경제적 연대 가능성 주목해야
물론 러시아와 북한 입장에서는 중국의 이런 태도가 불만일 수 있다.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김정은에게 북·중·러 해상 연합훈련을 공식 제의했다는 국가정보원의 주장,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대사가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연합 군사훈련에 북한을 포함하는 구상이 적절해 보인다고 한 발언, 푸틴과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중국을 제치고 “조·로관계를 대외정책의 ‘제1순위’로 하고 ‘최중대시’한다”고 말한 점 등은 북·러 군사 협력에 중국의 참여를 촉구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그럼에도 중국은 북·러의 군사적 밀착에 거리를 두면서 중국 특유의 모호성을 유지하고 오히려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국의 접근이 북·러와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계기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북·중·러 연대 가능성을 무조건 낮게만 평가하는 것도 위험하다. 미·중관계가 지금의 미·러관계 수준으로 악화한다면 중국의 선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북·중·러 연대가 반드시 군사적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경제적 연계 방식으로 연대할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와 중국에게는 북한 체제의 존립 자체가 지정학적 전략 자산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해 다소간의 인식차가 존재하더라도 북한 체제가 생존할 수 있도록 중·러는 기꺼이 공조할 것이다. 그 일환으로 러시아와 중국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무력화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나갈 수 있다. 그럴 경우 러시아와 중국이 공동 혹은 독자적으로 대북제재 무효를 선언하는 방식보다는 인도주의적 예외 조항 등을 활용해 제재를 약화시키는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노동력 부족이 심각한 러시아는 대북제재를 무력화하는 데 더 진심이다. 북한 노동자 활용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를 위한 법적 근거도 이미 마련해뒀다. 푸틴 대통령은 2020년 국내법과 국제조약이 충돌할 경우 국내법을 우선하는 법안을 제안했고 의회가 이를 승인했다. 또 러시아연방 헌법에 위배되는 국제기구의 결정은 러시아에서 집행되지 않는다는 조항을 개정 헌법에 추가시켰다. 이를 근거로 러시아 정부는 북한 노동자의 파견을 정당화하려 시도할 수 있다.

북 노동력·중 자본·러 영토, 삼각협력 이뤄질까
북·중·러 상업지대 구상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러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2023년 11월 개최 예정인 제10차 ‘무역경제 및 과학기술 협력에 관한 러시아연방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간 위원회’에서 러시아는 북한 측에 북·중·러 상업지대를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나선 특별시, 즉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와 중국의 훈춘 국제자유무역지대를 연계하고, 과거 남북·러 삼각 경협 추진을 위해 북·러가 합작 설립한 ‘라손콘트라스’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북한의 노동력과 중국의 자본, 러시아의 영토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북·중·러 삼각협력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들 구상이 성공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과거 러시아와 북한의 사업 경험에 비춰봤을 때, 북·러 간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시작 단계까지는 무척 진행이 더딜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이 삼각협력을 주도한다면 속도감이 붙을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일부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북·중·러 상업지대가 정착하면, 장차 북한과 사업을 원하는 한국 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기반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0월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3차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별도 양자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냉전형 진영화가 본격화할지는 미지수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과, 미·러 및 미·중관계의 추이, 러시아와 북한 체제의 내구성 같은 변수들에 따라 전망은 가변적이다. 그 전망이 어떻던 한국은 북·중·러 연대를 확대 해석하거나 의도적으로 의미 축소하기보다는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국내 정치를 의식한 정무적 판단을 자제하는 일이 중요하다.

북·중·러 관계의 미래는 중국의 입장과 직결될 수 있어, 중국과의 관계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또 북한의 도발을 부추기는 러시아의 의도와 협박에는 당당히 대응하되, 대화의 공간은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 미·중 경쟁과 미·러 갈등에서 한국이 생존과 번영을 지속하는 길은 세계 질서 대변환의 추이를 정확히 예측하고 그에 걸맞은 국가 전략을 면밀히 준비하는 일이다.

현 승 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