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52023.11.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가 9월 26~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개최됐다고 9월 28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이번 회의 에선 ‘핵무력 정책’을 북한 헌법에 명시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포커스

제9차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본 북한

인민 경제난 뒷전 ‘퇴행적인 옛길’ 고집
헌법에 ‘핵 무력’ 명기, 반서방 연대 강화 천명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가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석하에 지난 9월 26일과 27일 이틀간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렸다. 북한은 이 회의에서 핵 무력 정책을 헌법에 명기하는 한편 미국과 서방에 반대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내적으로 직면한 경제난 개선을 위한 돌파구는 제시하지 못했다. 회의 결과를 토대로 북한의 정세 인식과 정책방향을 짚어봤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결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핵 무력의 지위와 핵 무력 건설에 관한 국가 활동 원칙’을 헌법에 명기한 조치다. 북한은 이미 2012년에 헌법을 개정하면서 서문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해 핵무장을 기정사실화한 바 있다. 이후 2013년에는 ‘핵보유국 지위를 공고히 할 데 대한 법령’을, 2022년에는 ‘핵 무력 정책에 관한 법령’을 제정했는데,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헌법에까지 명시한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 보유한 핵을 ‘영원한 전략자산’으로 보존하고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이를 훼손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은 “단지 임박한 정세 악화만을 이유로 핵 무력 강화 정책을 헌법화한 것이 아니다”면서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로 존재하는 한, 제국주의자들의 핵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핵보유국의 지위를 절대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이는 향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어떠한 협상도 거부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대북 압박과 외교를 통해 한반도 정세를 호전시키려는 한미를 포함한 주변국의 노력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북한, 한·미·일 위협 가시화 인식
김정은이 이번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핵 무력의 급속한 질적, 양적 강화라는 기존의 군사정책을 재차 강조한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올해에 이룬 가장 큰 성과가 나라의 국가방위력, 핵전쟁 억제력 강화에서 비약의 전성기를 확고히 열어놓은 것”이라면서 “핵 공격 수단들과 새로운 전략무기체계 개발·도입에서 급진적인 도약을 이룩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핵 무력의 질적, 양적 강화라는 중대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핵무기 생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핵 타격 수단들의 다종화를 실현해 이런 무기들을 실전배치하는 사업을 강력히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김정은이 북한의 만성적인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자원을 핵 개발을 비롯한 군사력 강화에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정책을 앞으로도 고수할 것이라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김정은은 “미국과 서방의 패권전략에 반기를 든 국가들과의 연대를 가일층 강화하겠다”는 대외전략도 공개했다. 이는 심화하고 있는 미·러 간, 미·중 간 대립에 편승하는 것은 물론 미국을 위시한 서방 대 반서방 세력 간의 대결구도를 강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전 지구적 범위에서 신냉전 구도가 현실화하고 있으며 한미가 핵무기 사용을 목적으로 핵협의그룹을 출범시켰고, 한·미·일 3각 군사동맹체계 수립이 본격화해 ‘아시아판 나토’가 실체를 드러냈다”고 한반도를 둘러싼 작금의 정세를 평가했다. 핵 무력 정책의 헌법상 명기 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장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북한이 냉전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한·미·일의 위협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이런 위협 인식을 바탕으로 북한은 중·러와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안보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18년 김정은이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회담을 가진 이래 북·중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또 국가 주권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던 기존의 입장과 배치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지난 9월 김정은 방러를 전후해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급속히 강화하고 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김정은이 반미·반서방 연대의 강화를 강조한 것은 중·러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를 중·러·북 대 한·미·일의 진영 간 대결구도로 만드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둘러싸고 러시아를 적극 지원해 세계적 차원의 서방 대 반서방 대결에서도 한몫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이처럼 반서방 진영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고 안보환경도 개선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경제 분야 각료 대거 ‘경질성’ 교체, 왜?
이번 최고인민회의 결정 사항 중에서 북한이 위성 발사 등을 담당해온 국가우주개발국을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으로 격상시킨 것도 눈에 띈다. 북한은 올해 두 차례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해 체면을 구긴 바 있다. 지난 6월에 열린 8기 8차 당 전원회의에서는 5월 31일의 1차 발사 실패를 ‘가장 엄중한 결함’으로 규정하고, 위성발사를 책임지고 추진한 간부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8월 24일 시도한 2차 발사마저 실패했음에도 북한 당국은 오히려 국가우주 개발국을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으로 승격시켜 10월로 예정된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는 물론 향후 우주 개발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이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찰위성 발사를 포함한 우주 개발을 성공시키겠다는 북한의 의지가 반영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지난 9월 김정은 방러 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의 위성 개발을 돕겠다고 공언한 것과 관련해 우주 개발을 둘러싼 북·러 협력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주목된다. 새로 설립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이 러시아의 기술적 지원을 바탕으로 위성 개발에 매진한다면 북한은 서브미터급 카메라를 장착하는 등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군사위성을 머지않아 보유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한군의 감시·정찰능력이 크게 강화돼 우리의 안보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북한 대내정책과 관련해 김정은은 “북한이 경제 건설의 각 분야에서 뚜렷한 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농사가 풍작을 거두고 있고, 새 거리, 새 살림집 등이 건설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타 분야의 성과를 제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인민경제발전 12개 고지를 비롯한 경제 목표들을 달성하는 것이 절박한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10월 17일 오전 한반도에 전개한 미국 공군의 B-52H 전략폭격기와 한국 공군의 F-35A 전투기들이 한반도 상공에서 한미 연합공중훈련을 하고 있다.
(공군 제공)

김정은의 연설에서 핵 무력 정책의 헌법상 명기, 반서방 연대 강화 등 군사 및 외교 분야의 비중이 컸던 데 비해 경제 분야의 비중이 작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교체설이 돌았던 김덕훈 총리가 유임됐으나 경제 분야 각료들인 기계공업상, 국가건설상, 수매양정상, 중앙은행 총재 등이 교체됐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볼 때 북한은 올해 경제 운영 면에서 내세울 만한 성과가 적었던 것으로 보이며, 여전히 경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하다.

당면한 경제 문제 해결과 관련해 북한 김정은은 연설을 통해 “농업 부문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부단히 늘리겠다”며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관개법을 채택한 것도 농업 발전을 위한 노력의 일환인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의 내용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대체로 농업 생산을 위한 기반시설인 관개시설의 건설, 정비, 보수 등에 관한 법적 책임을 규정하는 내용일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은 또 “평양시 5만 세대 살림집 건설과 지방 및 농촌 살림집 건설을 힘 있게 추진하고 경공업정책들을 정확히 집행하겠다”고 경제 운영 방안도 간략하게 언급했다. 하지만 농업에 대한 지원 강화나 살림집 건설 추진 등을 강조한 것은 기존의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도 경제난 해결을 위한 현실적이고 새로운 정책이 제시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새로운 길’ 아닌 ‘퇴행적 옛길’ 고집
이처럼 경제적 성과가 미미하고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뚜렷한 대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가운데 제한된 자원을 핵 개발 등 군사력 강화에 쏟아 붓는 정책을 고수함에 따라 북한주민들이 느끼는 피로감과 불만도 커져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당국은 이러한 문제점을 규율과 통제의 강화, 대중운동 활성화와 같은 상투적인 방식으로 극복해나가려 하는 듯하다.

지난 9월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공화국 창건 75돌(9·9 절) 경축 민방위 무력 열병식. (평양 노동신문=뉴스1)

이번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김정은은 나라의 기강을 강하게 세우고 온 사회에 공산주의적 국풍을 수립할 것을 투쟁과업으로 제시했다. 또 모든 기관, 기업소, 주민들이 국가의 중앙집권적 규율에 복종하며 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온갖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억제하도록 통일적이며 강도 높은 통제와 투쟁을 계속할 것을 요구했다. 나아가 과거에 유행했던 대중운동, 애국운동의 전통을 되살리며 이를 대를 이어 계승·발전시킬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들이 큰 효과를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북한 지도부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판단하에 새로운 길이 아닌 퇴행적인 옛길을 고집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향후에도 북한은 중·러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미·일 등과 대결하며 핵전력을 비롯한 군사력을 강화하는 한편 농업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자력갱생형 경제노선을 고수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북한주민들의 곤궁한 삶이 계속되는 것은 물론 남북관계와 한반도 안보환경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것으로 우려된다.

이 상 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