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칼럼
오사카성 비극이 남긴 교훈
1614년 겨울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과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이 일본 내 패권을 놓고 벌인 오사카성 전투가 있었다. 도요토미 군의 오사카성은 성벽을 따라 땅을 파서 물을 채워 놓은 해자(垓子)에 둘러싸여 있어 난공불락이었다. 이 해자가 있는 한, 도쿠가와 군은 성 근처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전쟁이 길어지자 결국 도쿠가와 군은 화해를 제안했다. 조건은 오사카 성의 해자를 없애달라는 것. 철군을 약속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체면을 세워주는 한편, 평화의 상징적 행위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도요토미 군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자, 도쿠가와 군은 직접 나서서 서둘러 해자를 흙으로 메워버렸다. 몇 개월 후 평화가 깨지자 도쿠가와 군은 해자가 사라진 오사카성을 쉽게 함락하고, 도요토미의 아들 히데요리를 포함한 도요토미 가문을 멸족시켰다. 처음부터 도쿠가와가 화해를 제안한 목적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해자를 없애기 위한 노림수였던 것이다.
오사카성 공략에 제일 큰 장애가 됐던 해자 폐기에 얽힌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 국가의 멸망이나 정권의 붕괴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힘을 비축하기보다는 상대의 선의를 너무 믿었기 때문에 종종 발생한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문서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점은 우크라이나의 핵 폐기 대신에 주권과 안전보장을 약속한 부다페스트 협정이 사문화됐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북한은 6·25전쟁 이후 수많은 합의를 파기하곤 했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북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지 및 폐지, 주한미군 철수, 유엔사 해체 등을 주장한다. 지난 2018년 합의한 9·19 남북군사합의를 보더라도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이 여럿 있다. 예컨대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북한의 임박한 전선지역 도발 징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역량을 매우 제한하는 등 비무장지대 주변 우리 군의 대북억지력을 약화시키는 내용과 같은 것들이다. 더구나 북한은 9·19 합의 이후 지금까지 18차례에 걸쳐 군사합의를 위반했다. 북한이 계속해서 위반하고 있는 이 합의를 우리가 무조건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
한때 국제정치 이론에서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자유주의 중에 현실에 더 적실성 있는 이론은 무엇인가에 관한 논의가 많았다. 탈냉전 이후 초국가 기구들이 등장하고, 초국경을 지향하는 움직임들이 많아지면서 주권국가의 역할과 존재보다는 상호 합의와 협약을 통한 국제질서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주권국가를 중심으로 힘의 질서가 유지된다는 현실주의 논리를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러시아와의 군사무기 거래를 진행하고 있는 최근 북한의 행태를 보면서 한반도는 여전히 현실주의에 바탕한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안보 분야는 ‘설마’ 하는 방심의 순간에 위기가 온다. 자유민주주의 통일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안보 분야에서의 경계가 늘 있어야 한다. 상대의 평화 공세에 기만당해 우리만 남북합의문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도요토미 가문의 멸족을 가져온 오사카성 몰락의 비극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 평화통일 칼럼은 「평화통일」 기획편집위원들이 작성하고 있습니다.
이 수 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