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평화
북한인권 공감연극 ‘인차, 다시 만나자요’
북한 정권의 잔혹한 감시와 탄압 피해
탈북 과정서 벌어진 세 가지 비극적 스토리
남북 분단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은 모두 3만3981명(올해 6월 말 기준). 이들 대부분이 남모를 아픈 경험과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함께 탈출하지 못해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오거나 탈북 과정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남한 사회에 온전히 정착하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연극 한 편이 대학로 무대에 올라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통일운동 NGO ‘새롭고하나된조국을위한모임(약칭 새조위)’이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나흘간 대학로 SH아트홀에서 공연한 북한인권 공감연극 ‘인차, 다시 만나자요’다. 연극은 세 가지 이야기가 엇갈려 전개되다가 때론 중첩되면서 흘러간다. 북한의 비인간적인 감시와 탄압을 피해 탈출하는 과정에서 생이별을 한 남매의 이야기, 무사히 남한에 넘어온 남동생이 북한에서 누나와 자신을 검열하고 핍박했던 북한군을 남한에서 다시 만나 갈등하는 이야기, 어머니를 홀로 두고 온 탈북여성이 연인으로 발전한 남한 남성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를 남한으로 데려오는 이야기다.
남한의 한 조그마한 물류업체 창고. ‘물류는 사랑을 싣고~’라는 표어가 벽면에 붙어 있다. 탈북민 정민(북한 이름 연호)이 이리저리 바삐 오가며 배달할 물건을 정리한다.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회사 선배 선우는 이런 정민을 기특한 듯 쳐다보지만, 동료 상민은 왠지 못마땅한 표정이다. 적당히 쉬엄쉬엄 일하고 싶은데 은근히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다.
“북에서는 미래가 안 보인다 생각한 거지”
세 남자의 업무를 관리 감독하는 과장 정란 역시 탈북민이다. 밝은 성격에 일도 똑 부러지게 잘하는 그에겐 남모를 아픔이 있다. 탈북하면서 어머니를 홀로 북한에 두고 온 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선우는 그런 정란을 좋아하고, 어떻게든 돕고 싶어 한다.
잠시 시공간은 몇 년을 거슬러 북한의 한 마을로 이동한다. 연화와 연호 남매는 부모를 잃고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외화벌이에 나섰던 아버지가 반동분자로 몰리면서 부모 모두 숙청을 당한 것이다. 아버지 친구인 동섭이 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가끔씩 찾아와 도움을 준다.
하루는 연호가 장마당에서 남한 드라마를 보다가 단속반에 쫓겨 집으로 도망쳐 들어온다. 마침 이들 남매를 살피러 집에 온 동섭이 가방에서 이런저런 ‘불온한’ 선물을 꺼내려던 순간, 북한 단속반이 집으로 들이닥친다. 결국 단속반에 걸린 동섭은 그 길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다. 이때 연호네 가족을 무자비하게 검열하고 동섭을 끌고 가 끔찍한 고문을 자행한 사람이 북한군 출신 진혁이다. 고문을 받고 풀려난 동섭은 남매에게 함께 탈북하자고 설득하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려준다.
“니 아버지 외화벌이 한 거, 니들 데리고 자유 찾아 남조선으로 가려고 한 거다. 이 땅에선 미래가 안 보인다 생각한 거지. 당에서 외화 가로챈 반동분자, 약쟁이로 몰아간 기야.”
결국 세 사람은 어느 야심한 밤을 틈타 탈북 브로커와 만나 탈북을 시도한다. 그런데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단속반이 이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한 세 사람과 이들을 잡으려는 단속반 사이에 쫓고 쫓기는 긴박한 시간이 이어지고, 동섭과 연화는 또다시 진혁에게 잡히고 만다. 그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총성이 울린다. “탕!” 이내 연화가 쓰러지자 부여잡고 울부짖는 동섭.
‘반동분자’ 색출하던 사람을 남에서 만나다니…
다시 바삐 돌아가는 남한 물류업체 창고. 홀로 탈북에 성공한 연호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남한 생활에 적응하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지만 누나 연화를 떠올릴 때면 그립고 가슴 아프다. 그러던 어느 날 물류업체에 탈북민 직원이 한 명 새로 들어온다. 다들 반기는데 그의 얼굴을 본 연호의 낯빛이 돌변한다. 북한에 있을 때 반동분자를 색출한다면서 자신과 누나를 괴롭히던 바로 그 진혁이었던 것. 하지만 진혁은 그런 연호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후 연호는 하루하루 힘들고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견디다 못한 연호는 술자리에서 진혁을 공격하며 북한에서 그가 했던 만행을 폭로한다. 같은 탈북민인 정란과 동료들이 연호에게 이해를 구하지만, 상처가 깊은 연호에게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 본인의 잘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진혁은 연호에게 깊이 사죄하고 회사를 떠난다. 그때 마침 동섭이 회사로 연호를 찾아와 누나 연화가 남긴 편지와 함께 사망 소식을 전한다.
연출을 맡은 이주한 극단 ‘달팽이주파수’ 부대표.
“사랑하는 내 동생 연호야, 남조선에서는 잘 살고 있네?… 먼 훗날 누나 만나면 어떻게 지냈는지 하나하나 다 얘기해줘야 한다, 알겠디? 우리 인차 다시 만나자요.”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연호는 이내 슬픔에 절규한다. 연극은 이들의 4년 후 달라진 삶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연극 연출을 맡은 이주한 극단 ‘달팽이주파수’ 부대표는 “남한 사람이나 북한 사람이나 사는 게 다 똑같다는 거,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거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이 끝난 후 무대에 오른 김영수 새조위 연극단장(북한연구소장)은 관객들에게 “통일은 차가운 이성도 필요하지만 뜨거운 마음도 필요하다”면서 “남과 북이 같이 살아갈 날을 위해 서로가 상처를 보듬고 치유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 더 깊은 마음을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이 연극은 통일부의 2023 통일나눔펀드 일반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