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흔들리는 유럽 난민정책의 명암
유럽 내 난민에 대한 두려움과 반감 확산
차별적 난민 수용으로 ‘인종주의’ 논란 일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대홍수와 지진, 대형 산불 등 각종 자연재해 등으로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는 가운데 유럽 각국의 난민정책들도 변화하고 있다.
각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유럽 난민정책의
실태와 명암을 집중 분석해봤다.
난민은 일반 이민자와 구분되는 개념이다. 통상적으로 일반 이민자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국경을 넘어 이주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반면 난민은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부득이하게 비자발적 이주를 감행한 사람 가운데 국제사회가 합의한 5가지 사유-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정치적 견해-로 박해받을 우려가 있지만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을 특정해 지칭한다.
이 같은 난민과 일반 이민자의 구분은 유럽에서 시작했다. 국제사회 합의로 난민의 정의를 명문화한 최초의 문서인 ‘1951년 난민 지위에 관한 일반 협약(The 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 이하 난민협약)’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에서 발생한 유민을 염두에 두고 제정됐다.
난민법제의 발원지에 걸맞게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난민정책 발전을 선도해왔다. 난민정책을 이민정책과 분리된 기관에서 담당하면서 인도주의를 토대로 한 효과적, 효율적 난민 수용 및 정착지원 제도를 개발하고 전개해왔다. 유럽 주요국의 난민정책은 세계 각국이 난민정책 개선을 위해 참고하는 모범사례로 활용되기도 한다. 전후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핵심 행위자인 미국에 맞서는 주요 행위자로서 유럽 국가들이 내세운 미국과의 차별화 중 하나가 인도주의였으며, 이를 근간으로 하는 난민정책은 유럽 국가들의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최근 유럽의 난민정책은 과거의 명성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유럽 각국은 난민 신청자에 대한 거부감, 난민에 대한 진위 의심, 나아가 왜 난민을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반론이 팽배하고, 난민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불만 등을 이유로 난민 수용에 조심스러워한다.
유럽 난민정책, 새로운 갈등 요인 부상
유럽에서 난민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가시화된 것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2010년 12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이른바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전례 없는 반정부 시위와 혁명의 물결이 시작되면서 정치적 변동과 혼란이 확산됐다. 그 여파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난민의 유럽행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자 유럽 각국 정부는 이들을 수용하는 데 대한 부담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중해와 유럽 동쪽 육로를 이용해 유럽으로 진입하려는 난민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위기와 자연재해, 내전 등의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난민들까지 더해졌다.
유럽 각국은 기존 시설로는 더 이상 난민을 수용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에 조성된 난민 집중거주지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을 마주한 유럽인들이 경계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난민정책은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부상했다. 유럽 극우세력들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난민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정부의 난민 수용정책을 비난하면서, 난민정책은 유럽 각국 선거의 주요 변수가 됐을 뿐만 아니라 여론을 분열시키는 매개체가 됐다.
가자지구 칸 유니스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집을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유엔개발기구(UNDP)가 제공한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AP/뉴시스)
여전히 숭고한 인도주의 정신에 호소하면서 유럽 각국이 더 많은 난민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정부의 난민 수용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실정이다. 난민촌에서의 성범죄, 난민을 가장한 입국자의 테러 가담 등 난민 수용과 관련된 사건 사고까지 접한 유럽인들 사이에 난민을 향한 두려움과 반감은 이미 널리 확산된 상황이다.
2010년부터 10년 가까이 유럽 각국의 난민정책은 전반적으로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2015년 난민 신청을 위해 지중해를 건너 유럽을 향하는 사람들을 태운 배가 침몰해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특히 2015년 9월 가족과 함께 유럽을 향하던 시리아 출신 3살의 어린이 쿠르디(Alan Kurdi)가 타고 가던 배가 난파돼 터키 해변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진이 전 세계에 송출되면서 유럽인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유럽 각국의 난민정책 변화를 되돌리지 못했다.
2020년 초부터 전 세계에 확산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유럽 각국이 전염병 확산을 이유로 국경을 차단하는 계기가 됐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5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같은 해 8월 탈레반 세력이 재집권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해 난민 신청을 하려는 사람이 폭증하자 유럽연합이 적극적인 아프간 난민 수용을 천명했지만, 실제로는 아프간 난민 대부분이 신속하게 유럽 국가로 진입하지 못했고, 주변국 난민캠프에 머물며 유럽으로의 재정착을 기다려야만 했다. 10여 년간 지속돼온 유럽 각국의 난민 수용 부담감 표출은 유럽 난민정책이 인도주의보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시대 조류에 편승한 것으로 보기 충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계기 ‘인종주의’ 논란
그런데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각국이 난민정책 기조를 재검토하도록 만들었다.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사람들을 주변 국가는 물론이고 시민단체와 개인들까지 나서서 적극 수용하는 등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에는 그동안 유럽연합 차원의 난민정책 논의에서 강력하게 수용 반대 및 불가 입장을 내세우던 동유럽 국가들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런 변화된 분위기를 어떻게 봐야 할까. 유럽의 인도주의에서 찾는 해석이 있지만 또 다른 해석에 더 무게가 실린다.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유럽국가 출신 백인 기독교 계열 신도(우크라이나 정교, 가톨릭, 개신교 등)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나온 해석이다. 실제로 유럽의 일부 난민활동가 사이에 서유럽의 난민 다수 수용국가에서 우크라이나인을 신규 난민으로 수용하기 위해 아랍권 출신 기존 난민들에게 난민숙소에서의 퇴소할 것을 종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비난이 나오곤 했다.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이 지난해 3월 7일(현지시간) 폴란드 메디카 국경 건널목에 도착해 보호소로의 이송을 기다리고 있다. 당시 유엔은 약 350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인접 국가로 탈출했다고 밝혔다. (AP/뉴시스)
난민 수용에서 유럽인과 비유럽인,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구분하는 현상이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인류의 난민제도 발전 과정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난민협약에서부터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정치적 견해를 초월하는 개념으로 정의돼 있다. 개별 국가의 국내법에 명시된 난민의 정의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난민협약에 정하는 5대 박해 사유는 난민 인정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건으로 인정돼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인을 난민으로 수용하고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유럽인들의 마음은 분명 선의에서 비롯된 숭고한 실천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그동안 폐쇄적으로 흘러가던 유럽인들의 난민에 대한 태도를 개방적으로 변경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인종을 구분하는 행동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국내 거주 난민, 인도적 체류자 4000명 육박
우리나라는 2001년 처음으로 난민을 인정한 이래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난민제도를 발전시켜왔다. 2012년 출입국관리법에서 규정한 난민 관련 법조문을 빼내 아시아 최초로 독립된 난민법을 제정했고, 2013년 난민법 발효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난민 인정 및 정착 지원을 위해 관련 법제를 발전시켜왔다. 2023년 8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1399명에 이르고, 난민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국내 체류를 허용받은 인도적 체류자도 2541명에 이르는 등 4000명에 가까운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인도주의적 이유로 체류자격을 취득해 생활하고 있다.
향후 우리나라에서 난민을 신청하고 난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인재와 자연재해로부터 탈출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국경을 넘는 일은 계속될 것이며, 이 가운데 일부는 우리나라에 난민 신청을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수용하고 지원할 의무가 있다. 이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불법 이민과 난민을 구분하고, 난민을 위한 합리적 법제를 발전시키는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우리나라 난민법제 발전을 위해 그동안 유럽의 선진 난민정책을 본받으려는 시도가 많았다. 향후에도 유럽의 난민정책 수행 경험은 한국에 많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의 난민정책 그 자체가 우리나라에 유용한 것은 아니며, 유럽의 난민정책에 대한 비판적 분석 과정이 필요하다. 유럽의 잘못을 굳이 우리나라가 반복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오 정 은
한성대학교 국제이주협력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