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시대 북한 청년·학생 강제 노동 실태
北 학생 휴일·졸업 후에도 강제 동원
무직 청년들 ‘노동교양대’ 징집 악순환
최근 북한은 홍수로 큰 피해를 보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해 복구 현장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연일 보도할 정도다. 앞으로 다가올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말미암아 청년과 학생들이 강제 노동 현장에 더욱 내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정은 집권 이후 강화된 북한 청년·학생들의 강제 노동과 인권침해 실태에 대한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김정은 시대에 강제 노동이 강화된 배경에는 김정은 유일 지도체제 확립을 들 수 있다. 지도자로서의 정당성과 권위가 부족한 김정은은 업적을 내세울 수 있는 대규모 건설공사를 추진했으며, 도시 현대화라는 명분으로 많은 도시들을 재개발했다. 특히 김정은의 평양 도시 건설 확대 지시에 따라 도시 풍경 개선과 거리 조성, 기념비적 건축물 건설 등에 북한의 청년과 학생들이 많이 동원됐다.
김정은의 간부에 대한 질책도 강제 노동이 강화된 이유다. 김정은은 현지 지도를 하면서 낡은 건축물이나 시설, 거리를 보면 지적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북한 내 당·정·군 간부들은 시설 개선과 도시 미관 조성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일을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숙청당할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에 간부들은 과잉 지시를 내리면서 주민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시킬 수밖에 없다.
핵·경제 병진 노선 완성을 위한 압박 역시 강제 노동의 중요한 원인이다. 김정은 시대 최대의 국가적 전략 목표였던 핵·경제 병진 노선을 달성하기 위해서 북한 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와중에 주민들의 강제 노동은 당연히 포함됐다.
학업보다 강제 노동 동원이 최우선
필자는 2019년 이후 5년간 한국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 45명을 대상으로 강제 노동에 관한 연구를 시행했다. 그 결과 북한 청년과 학생들의 참혹한 강제 노동 실상과 특성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첫째, 김정은 시대에는 학교 당국과 청년동맹의 지시로 학생들은 공부보다는 매일 강제 노동에 시달린다. 학생들은 휴식 없는 노동 때문에 과거보다 더 힘들어졌고, 많은 작업량 때문에 늦게까지 일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다 보니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휴일에도 일해야 하고 심지어 졸업한 후에도 일정 기간 학교 소속으로 강제 노동에 동원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학생 본연의 학업이나 시험을 치르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학교나 당, 국가 차원에서도 학생들의 노력 동원이 가장 우선적인 과업이면서 시급하게 추진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학생들의 진로나 당원 가입 등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는 청년동맹 역시 조직의 성과를 내기 위해 학생들을 강제 노동의 최전선으로 내몰고 있다. 그래야만 이들이 당성을 의심받지 않고 북한 체제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 시대에 이러한 강제 노동 양태가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정은 시기 들어 북한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강제 노동이 더욱 심해진 것이다. 제대로 공부할 시간조차 주지 않아서 수업을 아예 못 할 때도 많다고 한다. 오후에 계속 일을 하는 관계로 힘들어서 다음 날 수업을 결석하거나, 참석하더라도 잠자는 학생이 절반 이상이라고 한다. 교원들도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을 비판하거나 처벌하지는 않는다.
북한 학생들이 수해 피해 복구 현장에 보내달라는 탄원서를 쓰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둘째, 학생들이 강제 노동을 하지 않는 대신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증가했다. 북한에서 강제 노동은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당 간부 집안 등 부잣집 자녀들은 뇌물을 주고 동원에서 아예 빠지거나, 혹은 식당으로 배치받아 강제 노동에 동원된 다른 학생들의 식사를 마련하는 일을 한다.
김정은 시대에는 학생들이 금전을 상납하는 빈도가 더 늘어나고 금액도 인상됐다. 이전에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되고, 혹은 적당한 수준의 돈을 제공했으면 괜찮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는 외화벌이가 신통치 않아 당국이나 기관, 학교에서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족한 자금을 주민이나 학생들에게서 갈취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먹이사슬 구조다. 심지어 강제 노동으로 학교에서는 시험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과목당 시험 통과를 위한 가격이 매겨져 있다고도 한다.
몸이 아프거나 개인적인 사유 등으로 강제 노동에 불참한 경우에는 다음 날 교사가 수업 시작 전에 생활 총화를 열고 비판함으로써 수치심을 준다. 그래서인지 웬만하면 모든 학생들이 노동 현장에 나와 전원 출석에 가깝다. 이러한 강제 노동 동원은 교과 과정에 포함돼 있지 않은데도 학생들에게 부과됐다.
이는 절대적인 학습량이 많은 대학생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학교나 전문학교에 가면 매일같이 돈을 내라고 하는데 농촌에서 자란 학생들은 돈이 없으니까 휴학하거나 퇴학을 당하게 된다. 북한에는 휴학사례가 별로 없어 퇴학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학생들은 학습의 부담 때문에 학교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강제 노동의 부담과 학교에서 요구하는 돈을 제공할 수 없어 학교를 떠난다.
무직 청년들 ‘노동교양대’서 강제 노동
셋째, 무직 청년들에게도 강제 노동 동원의 악순환이 발생했다. 경제난으로 북한 주민들은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월급과 배급이 나오고 부업을 비공식적으로 묵인할 정도로 근무시간에 융통성이 있는 직장을 구해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데, 그런 직장을 구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북한 청년들은 무직 상태에서 다시 강제 노동에 동원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직장이 없어 강제 노동을 위한 수용소인 ‘노동교양대’로 잡혀가는 청년 역시 많아졌다. 직장을 다녀도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직장 대신에 장사를 하는데, 이 경우 무직으로 단속돼 잡혀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월급이 나오지 않는 직장이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근무할 곳을 정해놓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직에 대한 처벌로 노동교양형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대학 졸업생들은 자기 전공 분야에 바로 취업을 못 하고 2022년부터 김정은의 지시로 평양 건설에 강제 동원돼 6개월 동안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직장을 다니거나, 집에 가지 못하고 일정 기간 계속 강제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넷째, 기본적인 장비를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 노동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은 성인이고, 일할 만한 나이라고 간주해 농장이나 건설 현장에 동원되었을 때 노동 강도가 농장원들이나 공사장의 노무자와 동일한 수준이다. 노동의 강도가 매우 높아 힘들고, 이 때문에 도망을 치려는 대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평안북도 수해 피해 지역에서 살림집(주택) 건설 준비를 위해 복구 작업 중인 청년 건설자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방의 발전소 건설 당시에는 날씨가 추운 편이었는데도 곡괭이와 삽으로 추위를 참아가며 땅을 파야 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건설 장비가 없어 학생들의 노동력에만 의존하는 그야말로 원시적인 강제 노동 형태인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는 안전모나 안전화를 지급하지 않았고 추락했을 때를 대비한 어떤 안전장치도 없었다는 지역이 많았다.
건설 현장에서는 여자들도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일한다. 삽이나 곡괭이는 본인이 알아서 준비를 해야 하고, 그 이외에도 건설 현장에 맞는 도구를 스스로가 챙겨서 가야 한다. 장갑과 마스크, 작업복이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작업복은 자기가 스스로 입고 나가야 하고, 식사가 제공되지 않아 집이 먼 학생들은 도시락까지 지참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갑자기 노동에 동원되는 날에는 작업 도구를 구할 수 없어, 장마당에서 구매를 해서 나가야 한다. 때론 작업복이 없어 교복을 입고 일해야 하기도 하고, 작업복 여벌이 없다 보니 세탁해서 밤새 말려 다음 날에 또 입고 나오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좌절한 北 청년들 남한 내려오고 싶어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북한에서는 무보수 강제 노동이 일상적이다. 직장에서 월급을 제대로 받지 않고 근무하는 경우도 넓은 의미에서 사실상의 강제 노동이다. 청년과 학생들은 이런 무보수의 직장에 취업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무직 상태에서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는 직업 선택의 기회를 상실한 것이며 청년과 학생들에 대한 인권침해로도 볼 수 있다.
무리한 강제 동원에는 한계가 있다. 언제까지 강제 동원을 당해야 하는지 한탄하는 북한의 청년과 학생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들은 현재의 삶이 고달프고 미래가 없다는 점에서 좌절한다. 한류를 통해 대한민국의 소식을 듣고 있어 누구나가 남쪽으로 내려오고 싶어 한다. 우리 앞에 북한 청년과 학생들의 고통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북한 청년과 학생들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수 석
국민대 글로벌평화·
통일대학원
평화안보전공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