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정착 이야기Ⅱ
북한 축산 공무원 출신
조충희 사단법인 굿파머스 연구소장
“개도국 지원 경험,
언젠가 北 농촌 성장 밑바탕 될 것”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3월 기준 대한민국 내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수는 3만4121명이다. 대다수 탈북민에게 대한민국에서 선망받는 의사, 변호사, 연구원 등과 같은 직종은 넘어설 수 없는 벽에 가깝다. 이러한 벽을 넘어 탈북민으로서는 흔치 않게 국내 민간 농업연구기관 농업 전문가로 활약하는 이가 있다. 조충희 사단법인 굿파머스 연구소장이 그 주인공이다.
北에서 월북 재일교포로 차별당해
조 연구소장은 “한국 땅을 밟기까지 북에서 지난한 시간을 버텨야 했다. 한국에 왔을 때도 아득하긴 마찬가지였다. 그 시간을 묵묵하게 버티고 나자 나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고 회고했다.
조 연구소장은 1963년 평안남도 평성에서 태어났다. 10년간 수의사 겸 축산 전문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북한에서 시장화가 확산하던 2011년 2월 탈북했다. 압록강을 건너 한 브로커의 안내로 중국 선양과 라오스, 태국, 방콕을 거쳐 2011년 3월 말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북한에서 쌓은 경험과 전문성을 살리고자 48세 나이로 사이버대학교에 진학해 졸업 후 한식 조리사, 전산회계, 축산기사, 사회복지사, 건강식품 전문가 등 자격증을 두루 취득했다. 이후 북한에서 쌓은 경험과 축산 분야 전문성을 살려 2014년 북한대학원대학교에 들어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박사과정 논문 주제는 ‘1990년대 이후 북한 축산업의 변화에 관한 연구’다.
이듬해 사단법인 굿파머스가 개최한 농업 논문 공모전에 참여한 일이 계기가 돼 굿파머스의 개도국 지원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다. 2016년부터 그는 굿파머스 연구소장으로 일하며 동남아시아 개도국 축산 농가 돕기에 앞장서고 있다. 굿파머스는 농·축산 분야 전문 비정부단체(NGO)로, 농업과 축산을 통해서 북한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 저소득 농가 농민들의 소득 증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한다.
북한 주민들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보다 시장에서 안정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북한 간부인 조 연구소장이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 무렵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북한 정계가 혼란에 빠졌고, 그 틈을 타 간부들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어요. 제 아버지가 월북 재일교포입니다. 북송 재일교포 귀국자 가정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출신성분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당원 자격은 주어지지 않았고 대학 입학은커녕 취업도 안 됐어요. 행정 관료가 돼서도 승진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더군요.”
사회적 차별을 당하기는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복싱 국가대표로 선발돼 국제 경기 출전을 앞두고 훈련하던 그의 아들이 선수 선발 경기에서 이기고도 귀국자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선수 명단에서 제외됐다.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복싱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조 연구소장은 “내 자식들이 나와 같은 대우를 당한다고 생각하니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북한에서 더는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때 탈북을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북한 농촌 현실과 유사한 라오스 농가
대한민국 정착 초창기 시절을 회고하던 조 연구소장은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도 축산 전문가로서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북한 수의사 면허는 한국에서 효력을 갖지 못했어요. 수의사는 국가 면허 시험에 바로 응시할 수 없었죠. 당장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편의점, 공장, 식당 등을 전전하며 일했습니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할 당시 저녁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근무하면 일당 8만 원 정도 받았습니다. 쌀은 물론 간단한 부식물 해결이 가능하겠더군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대한민국 정착 2년 만에 전문 자격증을 여러 개 취득할 수 있었어요.”
탈북민으로 지내던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순간을 꼽자면 단연 굿파머스가 개최한 농업 논문 공모전 참가다. 대학생, 대학원생 등 ‘청년’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이었기에 그에게는 참가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굿파머스가 조 연구소장의 논문을 눈여겨보고는 그를 각종 토론회의 토론자로 불러줬다. 이 인연은 훗날 그가 굿파머스에서 북한에서 쌓은 농축산 실무 경험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기회로 이어졌다.
조 연구소장은 요즘 라오스, 캄보디아, 우간다, 방글라데시 등 저개발 국가 농촌 소득 증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가 직접 돌아본 라오스 농촌은 북한 농촌 현실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착 후 도움만 받아오던 제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북한에서 쌓은 실무 경험과 지식, 노하우를 라오스 농민에게 전수하는 일이 언젠가 북한 농촌의 성장을 위한 프로젝트의 밑바탕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농민들을 떠올리며 라오스와 캄보디아 농가와 목장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글·김 건 희 기자 | 사진·지 호 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