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칼럼
‘1절만’, 이게 문제다
애국가 부를 때마다 안쓰럽다. 한 옥타브 낮게 부르는 사람, 입만 벌리고 소리 안 내는 사람, 카메라 오면 크게 부르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한 탈북 대학생은 이 모습을 보면서 “희한하다”고 했다. “차라리 경청하지 왜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따라 부르냐”는 것이다. 북한에선 같이 부르는 것보다 ‘경청’하는 게 더 높은 수준이란다. 더 희한한 건 대부분 행사에서 1절만 부르는 거란다. 4절까지 있는 애국가를 무슨 이유로 1절만 부르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시간 관계상’ 1절만 부르겠다는 진행자 멘트가 웃긴단다. 시간 없으면 안 부르면 되지 1절은 굳이 왜 부르느냐는 거다. 그러면서 4절은 꼭 불러야 한단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처럼 가슴 찡한 가사가 어디 있냐는 거다.
북한 체제 속에서 자란 탈북 대학생의 구구절절 옳은 지적에 토를 달지 못했다. 파리 올림픽 하늘에 태극기를 높이 게양한 채 선수와 응원단이 부르는 애국가는 참 멋있었다.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힘차게 부르는 모습은 참으로 뭉클한 장면이었다.
마지못해 부르는 희한한 모양새를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우선, 애국가 제창을 알리는 진행자 멘트를 바꿔야 한다. ‘1절만’을 ‘1절을’로 바꿔야 한다. 행사 진행자의 멘트는 행사 분위기를 결정한다. “애국가 1절을 힘차게 부르겠습니다”라는 멘트는 1절만 부르겠다는 소극적 뉘앙스를 한 번에 날려보낼 수 있다. ‘만’이라는 한 단어가 주는 심리적 효과가 적지 않다. 이제부터 모든 공식 행사 멘트에서 ‘만’은 ‘을’로 바꾸자.
‘시간 관계상’이란 표현도 공식 행사 멘트에서 지우자. 불필요한 멘트 때문에 애국가 부를 마음이 식어버린다. 한편 ‘힘차게’를 덧붙인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민주평통 행사를 주관하는 진행팀은 이 점에 유념해 협의회 전체 행사 멘트를 꼼꼼하게 재점검해서 족보로 이어오는 멘트 파일을 통째로 바꾸자.
둘째, 애국가 반주를 국악 반주로 바꿔보자. 전통 리듬이 깔린 국악 반주는 애국가 부르는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는 신선한 선택이다. 국악 반주에 부르는 멋진 모습을 경험하면서 느낀 제언이다. 조금 파격적이지만 “오늘은 애국가 1절과 4절을 함께 부르겠다”는 멘트도 생각해보자.
셋째, 애국가 반주의 음역대를 반음 정도 낮춰 틀어주자. 기계적으로 조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많은 행사에선 반주 옥타브 조정을 통해 제창의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음역대가 너무 높아 부르기 어렵다는 얘기를 조용히 수용해보는 행사 테크닉도 필요하다.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나라를 알 수 있다. 국민 모두가 잠시라도 하나가 되는 순간에서 나라 전체를 느끼고 정체성을 확인한다.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던 날 부른 애국가, 전장에서 불렀던 뜨겁고 벅찬 애국가를 늘 부를 순 없다. 그렇다고 형식적으로 마지못해 애국가 1절만 부르는 안쓰러운 모습은 이제 더 만들지 말자. 진행자 멘트 하나만 바꿔도 가능한 것을 왜 안 바꾸는가.
민주평통 행사에서만이라도 ‘1절만’이란 표현은 그만 쓰자. ‘만’과 ‘을’이 주는 효과는 애국가 제창 분위기를 좌우한다. 행사 시나리오에서 ‘만’을 모두 지우자.
※ 평화통일 칼럼은 「평화통일」 기획편집위원들이 작성하고 있습니다.
김 영 수
북한연구소 소장 /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