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회 탐방
진도에 모인 12개국 세계인 ‘통일 한마음 올림픽’
남북 주민, 다문화가정, 외국인 근로자
1000여 명 참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진도군협의회(회장 김남중)가 주최한 제1회 글로벌 근로자 통일 한마음 올림픽이 7월 20일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대회를 1시간 앞둔 오전 9시부터 인근 도로가 정체될 만큼 사람들이 붐볐다.
야외에서는 진도군협의회와 여성단체 주최로 올림픽 식전 행사인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의 줄임말) 바자회’가 열렸다. 김남중 회장이 자문위원들과 지인들로부터 2000만 원에 달하는 의류와 신발, 생활용품 등 다양한 상품을 지원받아 행사 참석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마련한 행사다.
개회식 시각인 오전 10시가 되자 실내체육관이 전국에서 몰려온 북한이탈주민을 포함해 12개국 외국인 근로자 1000여 명이 모여 뜨거운 열기로 가득찼다. 공중에 매달린 만국기 아래로 ‘글로벌 근로자 통일 한마음 올림픽’, ‘너의 꿈을 응원해’ 등의 문구가 한국어를 비롯해 신할리어(스리랑카 언어), 베트남어, 타갈로그어(필리핀 언어), 크메르어(캄보디아 언어), 인도네시아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8개 국가 언어로 번역된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출신 국가별로 빨간색, 노란색, 연두색, 파란색 등 4개 유니폼을 맞춰 입은 참석자들은 연신 웃는 얼굴이었다. 허리가 굽은 고령의 어르신부터 마냥 신이 난 어린이들까지 함께했다.
개회식에는 김남중 회장과 김희수 진도군수, 박지원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등이 참석했다. 김 회장은 인사말에서 “외국인 노동자 120만 명 시대를 맞아 올림픽 정신을 바탕으로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위로의 시간을 마련하고자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며 “탈북민도 함께하는 올림픽을 통해 한반도의 자유, 평화, 번영을 촉진하고 나아가 세계 평화 구현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희수 군수는 축사를 통해 “오늘 행사가 올해 한 번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매년 이어지기를 바란다”며 “인종, 국적, 종교의 차별 없이 화합하며 진도뿐만 아니라 전라남도와 대한민국을 통합하는 글로벌 통일 한마음 잔치로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탈북민·외국인 없으면 지역 경제 큰 타격
진도 출신이자 해남·완도·진도 지역구인 박지원 의원은 먼저 이번 행사를 마련한 민주평통 진도군협의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박 의원은 이어 “이 자리에 참석한 탈북민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극복했는지 잘 알고 있다”며 “탈북민 출신으로 민주평통에 새로 부임한 태영호 사무처장이 여러분의 권익을 세우기 위해 더 큰 일을 하시리라 믿는다”고 말해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경기 종목은 통일 장벽 넘기, 통일 지구공 띄우기, 통일 줄넘기, 한마음 사다리 등 4가지로 진행됐다. 선수들은 경기 시작 5분 만에 땀투성이가 됐다. 경기는 행사명과 취지인 ‘통일 한마음’대로 팀별 단합력에 의해 승부가 갈렸다. 이어진 장기자랑 시간에는 참가자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발산했다. 골드바, TV, 아이폰15, 자전거, 전기압력밥솥, 선풍기, 쌀, 진도군수협 로컬푸드마켓 상품권 등 다양한 경품이 걸린 만큼 모두 평소 숨겨둔 끼와 재능을 마음껏 드러냈다. 이어 태권도 시범과 초대가수의 흥겨운 공연이 이어졌다. 시상 후에는 ‘하나 되기 퍼포먼스 강강술래’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이 손을 잡고 동그랗게 모여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염원했다.
이날 행사에서 특히 눈에 띈 것은 탈북민을 비롯해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근로자 참가자가 400여 명에 이른 것. 일부 외국인 근로자는 고향과 국적이 같은 이를 만나고 교류 기회를 얻고자 타 지역에서 진도로 내려오는 등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진도군협의회 자문위원들이 진도는 물론이고 전국에 거주하는 탈북민과 외국인 근로자들의 참가를 적극적으로 유도한 덕분이다.
7월 20일 전라남도 진도군 실내체육관에서 색색의 유니폼을 맞춰 입은 참석자들이 경기에 참여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전남 진도군에 정착한 탈북민 김미영 씨는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소속감’이라는 걸 느낀 하루였다. 북한에서는 이런 기회가 생겨도 자유롭게 놀 수 없었다”면서 “하루빨리 남북이 통일을 이뤄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면 좋겠지만 당장 통일이 어렵다면 북한이 개방돼 그곳의 소식을 듣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2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외국인 근로자 안 씨도 “이렇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가슴 아프다”며 “앞으로 외국인 근로자들과 탈북 주민들의 교류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도군협의회가 이번 행사를 연 이유는 진도 경제의 밑바닥을 지탱하는 산업 현장에서 외국 인력이 그만큼 중추 인력이 됐기 때문이다. 진도는 명량해협과 진돗개, 진도아리랑 등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지역으로, 전남을 대표하는 우수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청정구역이다. 자원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지방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일손이 부족해 탈북민과 외국인 근로자가 아니면 지역 경제 자체가 유지되기 어려운 처지다.
외국인 근로자 ‘남북통일 파수꾼’으로 활용
김남중 회장은 “이들이 일손을 보태 젊은 근로자들의 몫을 톡톡히 해내는 데 대해 고마운 마음이 크다. 진도군협의회는 이들이 소속감을 느끼고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통일 한마음 올림픽을 매년 개최할 것”이라며 “이들에게 고국에 돌아갈 때 한반도 평화통일 여론의 파수꾼 역할을 하도록 한국의 문화와 한반도 평화통일 의지를 알린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추진했고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 참여를 계기로 한반도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외국인 근로자들도 많았다. 이들은 탈북민과 대화하며 북한에서의 생활과 실상을 파악했다. 필리핀에서 와 다문화가정을 이룬 박수희 씨는 “필리핀에 돌아가면 한반도 통일의 중요성과 실천 의지에 대해 현지인들에게 꼭 알리겠다”며 “하루빨리 통일이 돼 탈북민이 고향을 방문하고, 그곳에 계시다는 가족들도 만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 2월 설 명절을 맞아 진도군노인복지관에서 진행한 ‘설 밀뵙기’ 행사에 참여한 김남중 진도군협의회 회장(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을 비롯한
자문위원과 북한이탈주민들.
진도군협의회는 이전부터 탈북민과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소통하고 돕는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탈북민이 지역에서 소외되는 것을 막고 순조로운 정착에도 큰 도움이 된다. 탈북민들에게 이웃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앞서 올해 2월 설을 맞아 진도군협의회가 진도군노인복지관을 방문해 ‘설 밀뵙기’ 식사 지원과 배식봉사를 진행할 때 탈북민 여성들이 참여한 것이 한 사례로 꼽힌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 부득이 찾아가지 못할 때 미리 음식을 준비해 인사하는 것을 ‘밀뵙기’라고 한다. 진도군협의회는 해마다 노인복지관을 방문해 설 밀뵙기 식사 지원 및 배식봉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올해 설에는 2023년 민주평통 의장(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두 사람의 후원으로 성금을 마련한 데 이어 백설기 400인분과 생선전, 잡채, 갈비, 떡국, 식혜 등 설 음식을 지역 노인들에게 전달했다.
올해 하반기 ‘통일 염원비’ 세울 것
진도 특유의 지역적 정서를 고려하면 이 행사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진도는 해남군과 연결된 진도대교를 이용해 육로로 오갈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서남쪽으로 돌출된 섬이다. 주민들이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혀 있다 보니 진도에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선 서로 협력하고 끌어주는 문화가 강해 외부에서 온 탈북민이 정착하기 쉽지는 않다.
그러나 진도군협의회가 남북 주민이 함께 어울리는 행사를 꾸준히 추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주민 간 화합과 단합도 더욱 강화됐다. 이것이 진도군협의회에도 좋은 영향을 미쳐 지난해 9월 출범한 21기 자문위원들의 결속력이 돋보인다. 진도군협의회는 김 회장을 중심으로 차영란 수석부회장, 박우광·허범술 부회장, 고문, 간사, 분과위원장 7명 등 모두 50명의 자문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통일 한마음 올림픽 개최 당시 자문위원 50명 전원이 참여해 출석률 100%를 기록하기도 했다. 20대 자문위원부터 고령의 자문위원까지 세대 구성도 다양하다. 사업을 추진할 땐 회장 임의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운영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토대로 분과별로 활동하며 공정성까지 겸비한다.
진도군협의회는 올해 하반기 내로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위치한 첨찰산 봉우리에 ‘통일 염원비’를 세울 계획이다. 통일 염원비는 한반도 지형 모형으로 제작해 한 면에는 제주부터 백두산까지의 산맥을 따라 새기고 나머지 면에는 ‘첨찰산의 정기, 백두산을 품다’라는 글귀를 새기고, 염원비 아래에는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타임캡슐을 묻는 구상도 세웠다. 김 회장은 “한반도 최남단 진도에서부터 최북단 백두산까지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정기가 흘러 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한 사업”이라며 “진도군협의회는 남북이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활동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 건 희 기자, 신 선 청년자문위원 기자 | 사진·신 선 청년자문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