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까지 남북관계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북한의 지속적인 비판과 접촉 거부로 전면적인 소강상태에 처했고, 북핵문제도 위기 국면에 처해 향후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의 전망을 낙관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2019년 남북관계가 난관에 빠진 배경을 살펴보고 북한이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기피하는 주요 원인을 분석한 뒤, 2020년 남북관계를 전망하면서 한국 정부의 대응 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난관에 빠진 남북관계
2017년 한반도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평화공존과 공영을 지향하는 대북정책에 힘입어 2018년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전되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이후 북·미는 지속적으로 기싸움을 벌이면서 비핵화와 상응조치에 관한 양보 없이 밀고 당기기를 이어왔고 다시금 위기국면에 처하게 되었다. 북한은 지속적으로 우리 정부에 대한 비판을 가해오다 최근에는 도가 지나친 비난까지 내놓고 있다. 또 10월 15일 평양 월드컵 남북 예선전을 無 관중, 無 중계로 치르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0월 22일경 금강산을 방문해 “남측 관계 부문과 합의해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해 한국의 소극적인 경협 태도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독자 관광개발을 지시했다.
또 11월 21일 조선중앙통신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 앞으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 초청장을 보내왔지만, 한국이 남북 간 합의 이행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거부했다고 발표했다. 우리 정부의 외교적인 호의에도 불구하고 현단계에서는 북한의 남북관계 개선 의향이 별로 없음이 확인됐다. 또 11월 말에는 잇따른 군사 행보를 보인 뒤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9주년을 맞아 서해 NLL 인근 창린도 방어대를 방문해 9·19 남북군사합의서를 위반하면서 포 사격을 지시하고, 뒤이어 초대형 방사포 발사 현장을 참관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북·미 간 신뢰를 구축하는 조치로 제시된 종전선언을 무시하자, 남북 간에라도 이에 준하는 평화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비핵화 동력을 살린 의의를 지닌 9·19 남북군사합의서를 의도적으로 위배한 것은 남북관계가 군사 부문에서 급속히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주고 있다. 즉 남북 간 접촉이나 대화가 중단되고 인도적인 지원마저 끊겼으며 그간 지켜온 9·19 남북군사합의서마저 흔들리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더구나 2019년 말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연속적으로 엔진 개량시험을 진행하고 있어 만약 이후 장거리 미사일이나 인공위성을 발사할 경우 유엔안보리의 대북 추가 제재가 불가피하고 북·미 관계도 2017년의 위기 상황으로 후퇴해 전면적인 대립·충돌의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도 한동안 대립 국면에 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정책에 대한 북한의 불만 제기, 그 배경은?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계속 우리 정부의 대북 및 국방·안보·대외정책에 불만을 제기해왔고 점차 그 강도도 강해졌다. 향후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고 발전하려면 그 이유가 어느 정도는 소명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그 배경이 되는 다양한 이유를 분석해 본다.
첫째,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의 설득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선언에서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로 영변 핵 폐기를 약속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낮은 수준의 1단계 합의 체결을 거부하자, 북측은 이를 문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상응 조치를 얻어내지 못한데서 기인했다고 평가하고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에 강한 회의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미 협상 수단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이 유일한데 문 대통령의 설득으로 상당한 양보를 미리 약속하고 미국의 상응 조치도 얻지 못했다는 책임을 문 대통령에 물은 것이다. 다분히 자기의 책임을 전가하는 부당한 비판으로 평가된다.
둘째, 우리 정부가 남북경협을 미국과 공조해 진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진전이 더뎠다. 북한은 이를 한국의 대미 의존적인 태도 때문이라면서 비난해왔다.
2019년 3월 18일 참여연대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관련 유엔안보리와 국제사회를 향한 한국 시민사회 단체 호소문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
셋째, 한국 정부가 ‘국방개혁 2.0’으로 국방비를 크게 증액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으로 북한을 비운 4월 25일 한·미공중연합훈련을 했다. 8월에도 한미 연합훈련을 시행했고, 자신들의 방공망을 무색하게 하는 F-35 스텔스 전투기를 계속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해왔다. 한국군의 경항공모함 건조 계획이나 원자력잠수함 도입 의사, 그리고 함박도 초토화 고려 발언 등도 북한의 반발을 유발했다.
넷째, 우리 정부의 주선으로 북·미 협상과 정상회담까지 진행되었지만, 정작 양측이 직거래 협상을 진행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친서가 빈번히 교환되자 한국의 중재 및 평화 촉진자 역할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다섯째, 북·미 간 기싸움에서 북·미 관계의 판은 깨지 않으면서 미국에 대한 불만을 한국에 대신 제기하는 측면도 있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려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어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공장 방문부터 성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0년 남북관계 정상화 위해 금강산, 개성 열어야
정부는 이제까지 북·미 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도록 모든 지원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대북제재 하에서도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협력 사업을 진행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북한이 중단기적으로 이에 호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된다. 현재 북한은 미국과의 기싸움 차원에서 대미 강경 기조를 채택하고 있다. 정부는 중거리 이상의 미사일 발사나 핵 실험 감행은 북·미 협상판 자체를 깰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해 이를 막아야 한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미국이 책정해 놓은 금지선을 넘어서는 추가 도발을 감행할 경우 남북관계도 상당 기간 경색되는 것이 불가피 할 것이다.
또 북한이 큰 도발을 하지는 않지만 북·미 협상 재개가 늦어져 북한이 설정한 만료기한인 연말을 넘기게 될 경우, 우리 정부가 나서서 2020년 초라도 북·미 협상이 이루어지도록 명분을 제공하고 주선해야 할 것이다. 향후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평화 촉진자나 사실상의 협상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우리의 입장을 현명하게 책정한 뒤 한·미 정책 조율에서 우리의 입장을 원칙에 따라 보다 명확히 드러내고 미국에도 할 말은 함으로써 공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특히 우리 정부가 북·미 협상의 합의 촉진자 역할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부담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북·미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동안은 한·미연합훈련을 보류할 것을 미국에 제안해야 한다.
또한 북·미 협상의 성공과 남북관계의 발전을 이루려면 북한 정권의 체면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사실상 ‘지원’하는 사업일지라도 사업의 진전을 이루고 남북관계의 발전을 도모하려면 ‘협력’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다. 북한이 우리 지도자를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 조롱하는 듯한 언사를 남발하는 상황에서는 너무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면 얕잡아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유의해야 하나, 순수한 문화·체육교류 사업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 2020 도쿄올림픽 공동입장 및 단일팀 구성 등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결국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려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 해야 할 바를 명확히 알려주면서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비핵화에 진전이 이루어지면 이들 사업이 가장 먼저 재개되어야 한다. 그동안에 우선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공장 방문부터 성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9년 11월 18일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각계 대표 평화외의에서 1,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한목소리로 남북교류 사업이 다시 이어지기를 염원했다.
동시에 정부는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북·미 협상이 급진전될 가능성, 그리고 북·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중국이 단둥에서 개성까지 고속철사업을 추진하고 북한의 요구로 일본이 평양-원산 간 신간선 철도 부설 사업을 한다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럴 경우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끝으로 대북정책과 주요 대외정책에 대해 여야 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독자적인 성과를 과시하려 하고 야당은 정부 정책을 무조건 폄훼하거나 반대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 국익이 소모적으로 훼손되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와 여당 수뇌부가 주도해 대북·대외정책에 관한 초당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운영해 여당은 성과를 독점하지 않고 야당도 협조하는 초당적이고 합리적인 대북·대외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요구된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