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옥(사회) | 2019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교착 국면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더불어 2020년 남북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전망해보고,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 의견을 듣고자 한다.
이호령 | 지난 2018년 남북관계의 큰 진전 이후, 2019년에는 북·미관계나 비핵화 문제에 남북관계가 종속변수가 되는 상황이 전개됐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올해 한반도 비전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북한이 대미 압박을 지속하는 가운데 한국을 향해서도 ‘남북관계를 외세 의존적으로 풀어 갈 것이냐’며 압력을 가하는 상황이다. 이는 결국 우리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정치·군사 분야에서는 원칙적인 입장을 보이되 문화·스포츠 등 인도적인 분야에서는 열린 태도를 병행하면서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홍순직 |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김정은 위원장은 제대로 된 선물을 받아 가지 못했다. 우리 정부도 2018년의 낙관적인 상황을 기대하다가 호기를 놓친 감이 있는데, 앞으로 사회·경제·문화 분야에서 우리가 좀더 적극적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그리고 북핵 협상 정체가 장기화되고, 남북 교류협력도 거의 중단된 상황이다. 남북관계가 북핵 협상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가 되기 위한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 차원에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해법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남은 임기 동안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초기 성과를 마지막까지 잘 가져갔으면 한다.
김성경 | 지난해 우리와 북한, 그리고 미국과 북한의 생각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언제 제시됐으며, 또 언제부터 다시 꼬이기 시작했는가?’에 대한 철저한 복기가 요구된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정부가 국방비를 증액한 것에 대해 북한은 “평화를 말하면서 군사적 위협을 만들지 말라”는 입장을 보여 왔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개최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북한만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도에 그치는 건 아닐까 염려되는 부분도 있다. 결국,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타개할 만한 내부적인 힘이 있는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 한반도 상황이 비관적이라는 데 힘이 실리고 있다고 본다.
전영선 | 올해 국내외 정치 상황이 복잡하지만, 어떻든 보다 명확한 입장이 필요하다. 경색된 국면을 풀어나가기는 쉽지 않다. 국제 사회의 협력 없이 한반도 문제 해결을 바라기도 어렵다. 남북관계의 돌파구로 관광사업을 활용하자는 의견이 있는데 그 가능성을 높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북한도 국제관광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북한의 3대 관광사업이 원산갈마지구, 백두산(삼지연), 양덕온천지구인데 2019년부터 이 부분에 정책적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곳을 전략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북한의 고민이 큰데 남북 협력사업의 돌파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올림픽도 중요하다. 북한이 처음 올림픽에 나온 게 1964년 도쿄 올림픽이었다. IOC가 북한을 인정하지 않아서 참가하지 못했다. 그때 북한은 강력하게 단일팀을 요청했었다.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인데, 둘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2020년 도쿄 올림픽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에서 우리가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게 설득 논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 한반도 문제의 독립변수로 재정립 필요
이희옥(사회) |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실질적 전제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안정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기본훈련을 지속해야 하는 상황도 맞물려 있다. 과연 이 딜레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어디에서 그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남북관계를 둘러싼 인식과 해석의 차이는 무엇이고 관계 개선을 위한 창의적인 해법은 무엇인가.
이호령 | 북한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평화의 선행 조치로 내세우며, 영구 중단하라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남북관계에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북한의 요구에 반응하며, 안보 카드를 넘기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여기에 우리가 반응을 보인다면 앞으로 북한이 요구하는 안보 관련 협상의 수위만 높아질 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전시작전통제권은 전환 3대 조건 중 하나인 ‘북핵과 관련한 우리 군의 필수 대응 능력 구비’를 명시해서 원칙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현재 북한이 비핵화 협상 관련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고, 사실상 핵물질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대북 레버리지를 낮추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 대신에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할 수 있는 동력으로써 안보카드를 활용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전영선 | 우리 정부는 전작권을 위해 지속적으로 전력증강에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방력은 남북관계를 넘어 주변국과 일정 부분 맞춰 나가야 하므로 향후 상당한 지출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제 국방비 50조 원 시대다. 북한과 비교가 안 되는 규모다. 이 상황을 북한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군사훈련 자체를 중단할 수는 없다. 군사훈련의 횟수를 조정하거나 훈련을 축소하는 방안은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를 둘러싼 인식과 해법에서는 현실 적합적 정책이 필요하다. 북한을 바라보는 세대별 인식 차이가 크다. 북한을 두려운 존재로 여겨 공포나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던 1세대, 가능한 한 북한을 이해하거나 바로 잡으려고 했던 2세대가 있었다. 3세대인 2030세대는 ‘취향’으로 북한을 본다. 흥미, 재미의 관점이다. 이들에게 독일통일 30주년을 이야기하는 건 의미가 없다. 태어나기 전의 일이고, 30년 전 이야기는 와닿지 않는다. 미래를 상상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정치·군사 분야는 원칙적으로 인도적인 분야는 열린 태도로 병행하며,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이호령 연구위원
“남북관계가 북핵 협상의 독립변수가 되기 위한 창의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홍순직 수석연구위원
“과거 독일의 분단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평화의 동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김성경 교수
김성경 | 하지만 독일의 분단 역사와 비슷한 입장의 우리는 그 상황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평화의 동력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통일이나 평화 이슈가 생각보다 많이 회자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의 문제’라는 인식보다는 ‘국가가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안 좋아지면 바로 무관심하고, “역시, 안 될 줄 알았어”하는 패배감으로 이어진 이유다. 그래서 우리 국민의 평화 의식을 고양할 방안과 함께 ‘통일과 남북 간 교류가 필요하다’는 당위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민사회의 논의와 역할이 요구된다. 이를 발판삼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을 줄이는 계기로 삼고, 군사적 위기가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에 대한 논의가 적극 개진되는 길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2020년 한반도 정세를 예측해보면, 작년보다 국제 변수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점차 국제사회와의 연동성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희옥 교수
“통일의 보편가치가 새롭게 구성되는 상황에서 평화주의적 시각으로 통일론을 재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서보혁 연구위원
“남북관계를 둘러싼 해법에서는 현실 적합적 정책이 필요하다.
그 돌파구로 관광사업이 제기되는데 이 가능성을 높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전영선 교수
2032 남북 공동올림픽으로 정치분야의 변화도 촉진해야
이희옥(사회) | 올해 한반도 정세를 예측해보면, 작년보다 국제변수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결국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도 ‘중·러 공동행동계획’을 마련했다고 한다. 한반도가 점차 국제사회와의 연동성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홍순직 | 2020년은 북한 경제에 있어 중요한 해다. 북한이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과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완성하는 시기로 삼은 해이기도 하고, 김 위원장이 공식 등장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특히 7차 당대회 때 인민 생활 향상이나, 에너지 문제 해결 등 경제 발전 기반 구축을 강조한 만큼 일정한 성과를 거둬야 한다. 지금 북한의 구명줄인 북·중 무역도 반 토막 이상 줄어든 상황이고, 관광 인프라 구축에도 한계가 있다. 보다 근본적 회생을 위해서는 소재산업 등의 제조업 회복과 인프라 확충이 필요한데,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한 제재 완화와 외자 유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2020년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 한다면 향후 정권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는 데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입장에서도 어떤 태도를 취할지 결단을 내리는 해가 된다고 본다. 북핵 협상과 미국 정세에 따라 북한이 2017년 위기 상황으로 회귀할 것인지 2018년의 대화국면으로 전환할 것인지를 결단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우리는 북한이 과거로 회귀하지 않도록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적극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서보혁 |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파상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상수가 있다. 결정적인 북·미 핵협상 타결이 없는 이상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고, 우리가 관계개선의 여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해도 한계는 있다. 북한 정권도 내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이 가중되리라는 걸 예상해서, 주민들에게 ‘자력갱생’과 같이 예방적 차원의 조치를 취하는 측면도 있다. 이 상황에선 북한의 움직임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무리한 돌파보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관계 현안에 대한 정경분리 원칙을 지켜야 한다. 마찬가지로 정부와 민간이 각자 제 역할을 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관민분리의 자세도 필요하다. 최근 남·북·미 3자에서 남·북·미·중 4자로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깊숙이, 적극 개입하는 양상도 유의할 부분이다. 올해는 이를 큰 틀에서 다시 바라보고, 비핵화와 평화체제, 남북관계의 선순환적 발전을 재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032년 남북 올림픽 공동 개최는 일본의 협조나 지지를 이끌어 내면서 소위 비정치 분야가 정치 분야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촉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6·15 남북공동선언 2항에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남북연합을 쪼개서 지금보다 더 낮은 수준에서 가능한 분야부터 협력하고, 이를 제도화하므로 생활 속에서 ‘사회적인 통일의 초기단계’로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호령 | 2018년~2019년은 남북문제를 한반도 중심에서 풀어나간 해였는데, 그 과정에서 놓친 것이 많았다. 유엔 차원이나 주변국 4강 그리고 유럽과의 외교까지 상대적으로 많이 약화되었다. 미·중 간 무역 경쟁과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면서 안보와 경제의 구분이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 이 구조의 틀을 바꾸고 큰 변화를 줄 만큼의 역량을 쏟기에는 늦은 감이 있다. 미·중 간의 변수도 있고, 정권 임기도 중반을 넘어섰다. 그래서 오히려 기존의 구조를 인정하고, 국제 환경 변수를 한반도 상황에 적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경우도 지난해 호의적인 중·러 관계를 이어왔다. 특히 군 인사외교 분야가 활발했는데 북한이 對 중·러 안보 영역에서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는 때에 이를 활용해서 한·중·러 삼각 협력의 틀을 만들어 북한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고 본다. 최근에는 신남방 정책의 하나로 한-아세안 간의 협력 질서를 새로이 하고 있는데 아세안 국가 대부분이 북한과 수교를 맺고 있는 만큼 이 협력 프로젝트를 잘 활용해서 북한을 국제사회의 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간접적인 루트를 만드는 역할을 우리가 주도하고, 주변국과의 외교를 강화하는 해로 나아가야 한다.
2020 민주평통이 가야할 길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소통
이희옥(사회) | 민주평통이 최근 출범한 19기와 함께 청년·여성·해외 자문위원의 참여를 강화하는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2020년 새로운 민주평통은 국민이 주도하는 평화만들기에 앞장서기 위해서는 어떤 실천이 필요한가?
홍순직 | 민주평통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평화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높은 청년 실업률과 양육비·교육비, 주거비 등으로 통일에 대한 청년·여성들의 관심이 낮아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대학교와 지자체가 협력하여 이들의 관심도와 참여도를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대학생 통일토크대회, 국토순례 등과 같은 외곽체험 활동과 함께 평화·통일에 대한 재미있는 창작곡과 창작극, 삼행시, 유명 연예인 초청공연, 유튜브 홍보 확대 등의 도심 활동도 필요하다.
김성경 | 최근 일련의 일들을 보면 엄청난 변화를 느낀다. 그런데 민주평통뿐만 아니라 국가 수준에서 그러한 변화를 모두 반영할 수 없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평통이 무엇을 더 하기보다는 오히려, 완전한 플랫폼 역할에 집중하는 것도 한 방편이지 않을까 한다. 평화통일에 대한 홍보가 원활한 소통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홍보의 과잉을 피하고 어떻게 평화통일을 주제로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전영선 | 통일 현안에 있어서 총체적인 고민과 기획이 필요하다. 막연하게 ‘하면 되는’ 통일이 아니다. 냉철한 현상 인식과 치밀한 기획, 범국민적인 실천력이 필요하다. 톱다운 방식이 아니라 범지역적인 통일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그 역할에 대한 고민을 제기하고 풀어갈 수 있 는 것은 민주평통이 유일하다. 자문위원들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서보혁 | 민주평통의 법적인 위상과 역할로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서 정부 정책에 실제로 반영했으면 한다. 특히 기존의 통일 담론에 대한 회의감보다는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갤럽에서 지난 2007년부터 진행한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이 생각하는 통일의 필요성이 최근에는 50% 수준이다. 2007년보다 10% 정도 감소한 결과다. 국민들은 민족 동질성보다 전쟁 위협 제거나 인권·인도주의, 삶의 질 제고 등을 통일 이유로 거론하고 있다. 이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통일에 대한 지지도 가 감소하는 데 비해 통일되어야 한다는 의견은 다변화 되었다는 점이다. 통일의 보편가치에 대한 기대가 새롭게 구성되는 상황에서 평화주의적 시각으로 통일론을 재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