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얀 쥐의 해입니다. 쥐는 힘이 없고 약해 보이지만 근면성과 인내력,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동물입니다. 인간의 삶과 함께해 온 쥐는 풍요와 다산, 재물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상징을 표현하듯 2008년 쥐띠 해에 가장 유행했던 말이 바로 ‘부자 되세요’였습니다. 2020년 새롭게 찾아온 쥐띠 해에 여러분은 무엇을 소망하십니까?
저는 ‘오직 평화’를 말하고 싶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우리는 경제력도 커지고 안보도 강해졌습니다. 이제는 이를 토대로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견고한 장벽을 뚫고 통로를 만드는 쥐와 같은 인내력과 꾸준함, 그리고 영리함이 빛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흔들림 없는 평화를 위해 ‘우리의 길’을 가야합니다
‘평화’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제각기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합니다. 그 길은 대결과 대립으로 가는 길입니다. ‘전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길입니다. 일상의 삶을 옥죄는 분단이 견고해지고 우리 내부의 갈등도 격화될 것입니다. 동북아 안보경쟁이 심화되고 신냉전질서가 공고화되는 길입니다. 세계 평화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길은 가서는 안 되는 길입니다. 이제는 함께 가는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앞장서서 그 길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야 합니다.
통일문제는 남북의 문제이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국제 문제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렇기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조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변 국가는 기본적으로 통일의 구심력과는 거리가 먼 통일의 원심력입니다. 자기 국가의 이익 차원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국들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제대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남북관계의 주도성을 확보하면서, 통일의 구심력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2019년은 참으로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우리가 남북관계의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거의 상실된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은 ‘주고받기’에 실패하고 제 길을 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북한은 한겨울의 백두산으로 향했습니다. 항일 빨치산 정신으로 버티면서 미국의 압박과 제재에 굴하지 않고 대응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에서도 무력사용 등 강경한 언사들이 다시 나왔습니다. 북·미가 극한 대결을 했던 2017년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 속에서 한 해를 마무리했습니다.
2019년을 마무리하면서 「교수신문」이 뽑은 사자성어가 ‘공명지조(共命之鳥)’입니다.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의 이야기입니다. 자기만 살려고 한쪽을 없앴다가 결국 모두 죽고 만다는 뜻입니다. 정치권과 국민의 분열을 빗댄 말이지만 남북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남과 북은 하나의 몸을 가진 운명공동체입니다. 한쪽을 죽이려 하면 공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있습니다. 2019년의 경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바로 우리가 주도성을 발휘하면서 남북이 공생하는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0년 하나의 코리아를 향한 초석을 다집시다
2020년 다시 희망을 품습니다. 올해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해이고, 대결의 관계를 화해협력의 관계로 전환시킨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국제적으로는 독일통일 30주년이 되고,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도쿄올림픽이 열립니다. 무엇보다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이 한반도 평화의 길을 열었듯, 국제평화와 화합의 축제인 올림픽을 계기로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지난해 9월 30일 19기 민주평통 출범식에서 의장이신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민주평통이 2032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실현을 위해 힘을 모으고, 국민의 목소리를 폭넓게 수용하면서 시의성 있는 정책건의를 해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주도하는 평화’를 위한 19기 민주평통의 실천과제이기도 합니다.
2020년에는 2032 올림픽 개최지 선정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이 성사되면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한반도 냉전이 해체되고 ‘하나의 코리아’로 가는 초석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공생을 넘어서는 통합을 만들 수 있습니다.
19기 민주평통의 슬로건도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한반도’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한반도는 국민이 중심에 서고 국민이 주도하는 평화 한반도입니다. 국민과 더 밀접하게 호흡하고 함께하면서, 국민이 평화의 중심에 서도록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2020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는 잘못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반구저기(反求諸己)’와 함께, 서로 다르지만 서로 존중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가 되길 기대합니다.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위한 ‘우리의 길’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힘을 모아 새해의 희망을 만들어나갑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정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