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우리는 스포츠가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음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남북한 두 정상은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대회 남북단일팀 구성과 2032년 하계올림픽 공동 유치 등에 합의하면서 지속적인 체육교류를 위한 밑거름을 마련했다.
그러나 2019년 북·미 비핵화 협상의 난항과 함께 남북관계 또한 정체기를 겪고 있고, 체육교류 역시 대부분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정부는 북한과의 체육교류 재개를 위해 회담을 제안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10월 4일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 연설에서 “1988년 서울올림픽이 ‘동서화합의 시대’를 열고, 2018년 평창올림픽이 ‘평화의 한반도 시대’를 열었듯이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은 ‘공동번영의 한반도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올림픽이 세계 평화와 한반도 평화에 기여했음을 상기시키고, 올림픽이 남북관계의 재도약을 위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이처럼 서울 올림픽과 평창올림픽에서 경험했듯이 우리에게 올림픽은 단순히 ‘스포츠 대제전’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추동하는 ‘평화의 대제전’인 것이다.
갈등과 평화의 올림픽 역사
스포츠는 대결과 갈등보다는 협력과 평화적 관계를 지향한다고 알려져 있다. 갈등을 겪는 국가 또는 외교관계가 없는 국가 간에 정치·군사 교류는 어려워도 스포츠 교류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행해진다는 점에서 스포츠는 평화지향성을 띠고 있다. 이처럼 스포츠를 매개로 하는 교류는 상호불신을 해소하고 협력의 기반을 다지는 데 효율적이기 때문에, 국가의 외교적 수단으로도 적극 활용된다.
스포츠와 평화의 관계를 논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는 ‘올림픽’이다. 올림픽은 ‘평화의 대제전’으로 불릴 만큼 스포츠를 통한 평화 달성의 상징적 메가 스포츠 이벤트라 할 수 있다. IOC 헌장은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한 상호 이해와 우호증진의 정신을 통해 더 발전되고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 하는 것이 목표임을 밝히고 있다. 우리 또한 올림픽을 ‘비둘기’, ‘친선’, ‘전 세계의 축제’ 등 대부분 ‘평화’와 ‘화합’과 관련된 이미지로 연상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올림픽의 역사는 ‘평화’가 아닌 ‘갈등’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 정권의 정치선전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1956년 영국과 프랑스가 수에즈 운하를 침공하자 이집트, 이라크, 네덜란드, 스페인 등이 항의의 의미로 같은 해 열린 멜버른올림픽에 불참했다. 또한 1972년 뮌헨올림픽은 이스라엘 선수단에게 ‘검은 9월단’이 테러를 가해 ‘피의 올림픽’이 되었고,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25개 아프리카 국가들이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1984년 LA올림픽에는 냉전 대결 구도로 인해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번갈아 대회에 불참했다.
하지만 올림픽의 모든 역사가 갈등과 대결의 소산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이전 두 번의 올림픽에서 경험한 냉전 대결 구도를 타파하고 동서 진영 대부분의 국가들이 참가하여 스포츠를 통한 전 세계화합의 장을 이루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은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핵심 역할을 하여 ‘평화 올림픽’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이처럼 국가 간 대결과 갈등은 화해와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에서조차 투영되고 있으며 이는 평화가 그만큼 이루기 힘든 명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올림픽은 국가가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갈등과 대립의 장’이 되기도, ‘화해와 협력의 장’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8년 2월 25일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함께 입장하며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
동아시아 평화 정착의 기회, 릴레이 올림픽
현재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정세를 살펴보면, 냉전구조가 해체된 지 30년 가까이 되고 있지만 한반도에는 여전히 군사적 대결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북·미관계는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어 동아시아 지역은 물론 세계적으로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아울러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충돌, 동아시아 역내 국가 간 갈등 구도 등은 지역 및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지역·국가 간 갈등은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서로 얽혀 갈등의 정도가 높아지는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현 시점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의 갈등구도를 완화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회복할 전환점(Turning Point)이 필요하다. 2018년 평창에서 시작하여, 2020년 도쿄, 2022년 베이징에서 연이어 개최될 ‘릴레이 올림픽’이 그 기폭제(Trigger)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2032년 남북한이 공동으로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다면 지역 및 세계평화 달성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릴레이 올림픽이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발전, 더 나아가 인류의 평화에 기여한다면, 우리 모두는 올림픽 역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올림픽 유산’을 창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릴레이 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표명했다. 2018년 5월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3국 정상들은 상호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민 간 소통과 교류가 더욱 확대되어야 하고 동북아 릴레이 올림픽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공유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릴레이 올림픽’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2019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평창, 도쿄, 베이징올림픽은) 올림픽 사상 최초로 맞는 동아시아 릴레이 올림픽입니다. 동아시아가 우호와 협력의 기틀을 굳게 다지고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입니다.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이 도쿄 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해 올림픽이 동아시아 평화 달성의 중요 기제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가까이 다가오고, 2032년 하계올림픽의 유치 경쟁이 시작되는 현 시점에 우리는 릴레이 올림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한반도 및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답을 찾아야 한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노력과 함께 국제사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펼쳐지는 릴레이 올림픽을 한반도 평화는 물론
아시아 평화의 기틀을 닦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올림픽 활용한 평화 달성의 조건
그렇다면 동아시아 3국의 릴레이 올림픽이 한반도와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평화 달성에 기여하기 위해서 필요한 점은 무엇일까?
첫째, 대화와 소통의 확대를 위해 인식의 변화가 필요 하다. 대부분의 갈등 해결은 상호 대화와 소통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형식적인 대화와 소통은 갈등을 수면 아래로 잠시 가라앉힐 뿐, 진정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기초 한 대화와 소통이 우선되어야 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갈등은 ‘나와의 차이’가 부각되면서 시작되기 때문에 인식의 변화는 상대방에 대한 ‘차이 인정’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동아시아 역내에서 상대방을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내셔널리즘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갈등 종식과 평화 달성을 위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 올림픽이 인종, 언어, 문화, 역사 등 상대와의 차이를 극복하고 ‘스포츠’라는 매개체를 통해 화합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릴레이 올림픽은 인식의 변화를 추동하고 대화와 소통을 재개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준다.
둘째, 올림픽을 계기로 국가 간 적극적인 교류를 추진해야 한다. 현재 동아시아에서는 정치·군사적 이슈가 국가 간 대화와 교류를 막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교류와 소통이 더욱 확대되고 활발해져야 국가 간 협력이 재개 및 강화될 것이고, 이는 정치·군사 분야에 긍정적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 따라서 국가 간 정치적 상황이 어렵다 하더라도 인적교류는 유지되어야 하고 비정치 분야, 특히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즉, 비정치 분야의 교류가 정치·군사 분야의 교류에 긍정적인 파급효과(Spill-over Effect)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올림픽은 스포츠 이벤트이기는 하지만 체육을 비롯해 문화, 예술, 관광 등 비정치 분야의 전 세계적 교류를 활성화하는 국제 이벤트이기도 하다. 따라서 동아시아 릴레이 올림픽을 계기로 비정치 분야의 교류가 확대된다면 정치·군사적 갈등 해소와 평화 달성의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2032년 남북 공동 하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평화는 기다리기보다 주도할 때 달성할 수 있음을 우리는 평창올림픽을 통해 경험 했다.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릴레이 올림픽의 완성은 한국, 일본, 중국을 거쳐 남북한이 추진하는 2032년 남북올림픽 공동개최라 할 수 있다.
남북한이 올림픽을 공동개최하기 위한 조건은 북한의 비핵화가 안정적으로 추진되고 남북관계가 진일보하는 것이다. 남북한은 이미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이를 실현한 바 있다. 현재 동아시아 지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격한 대결구도를 겪고 있는 남북한이 올림픽을 통한 화해와 평화 무드를 실천한다면, 도쿄와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올림픽 또한 자연스럽게 평화의 시너지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노력과 함께 국제사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펼쳐지는 릴레이 올림픽을 한반도 평화는 물론 아시아 평화의 기틀을 닦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