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612020.03

진단

2019년 11월 15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1차 안보협의회(SCM) 회담장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 2019년 11월 15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1차 안보협의회(SCM) 회담장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 한미동맹 갱신은 자기주도외교,
이익, 집단안보 고려해야

트럼프 미 행정부의 등장 이후 한미관계는 몇 가지 면에서 갈등과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2017년 4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협정 재검토를 지시한 행정명령에 따라 2018년 1월 5일 한미 FTA 1차 개정 협상이 2개월 반만에 타결되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과 비핵화 협상에 맞춰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관계를 갖고 공조해 왔다. 다만 미국측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기존의 5배도 넘는 50억 달러를 요구하면서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한미동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갈등이라기보다 이해조정의 과정이다. 먼저 국제정치학의 동맹이론에 기초해 한미동맹의 현황을 진단해 보자.

국제 안보 환경 변화와 한미동맹 갱신

첫째는 한미동맹의 ‘연루-방기 딜레마’다. 그동안 국내 여론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이 철수 내지 감축하지 않을까 우려해 왔다. 이른바 ‘방기’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런 이유로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역대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 전투병 파병, 소말리아해협 해군함 파견, 이라크 비전투병 파병 등의 요구를 들어 주었고, 최근에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파견할 것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이어 중거리핵전력(INF) 배치와 인도·태평양 전략에 따른 남중국해 군함 파견 등의 요구는 우리의 외교·안보에 부담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에 한국이 ‘연루’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동맹을 금전거래로만 보는 무리한 방위비 분담금 요구,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둘러싼 한일 갈등에서 보여준 일본 편향성, 우리 군의 독도 방어훈련에 대한 부당한 문제 제기 등은 우리 안보에 부담을 주는 것이다.

둘째는 한미동맹의 ‘자주-의존성 딜레마’다. 현재 한미 양국은 2021년 말까지 주한미군 기지와 한미연합사령부가 평택으로 이전하는 데에 맞춰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을 전환하려 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한·미 군사연습의 일부 축소·중지가 이루어졌다. 일부 예비역 장성들이 전작권 전환과 한·미 군사연습 축소를 반대하며 70년 한미관계 역사상 최악’이라며 폄훼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원인 진단을 잘못한 것이다. 2015년 한미 양국은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에 합의한 바 있고, 지금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첨단무기 도입과 함께 전작권 전환을 위한 연습을 하고 있다. 한미군사연습의 축소·중지는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의 레드라인(핵실험, 중장거리·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중지) 준수를 조건으로 사전에 우리 정부와 충분히 협의하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과 약속한 데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미국의 뜻을 이해하면서도 전작권 전환을 위한 최소한의 한미군사연습을 진행하면서 비핵화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협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현안은 ‘동맹의 위기’라기보다는 국제 안보 환경이 변화하면서 미국이 한국의 역할을 높여달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동맹의 갱신’을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한미동맹의 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진통을 굳이 위기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그것은 한국이 원인을 제공했다기보다는 미국측 요인에서 기인한 것이다. 지난 11월 21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내정자)은 우리 국회의 여야 3당 원내대표단과 만난 자리에서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래 70년 가까이 지속되어 온 ‘한미동맹의 갱신(Renewal)’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거나 역내 안보 역할을 높이는 차원이 아니라,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안보 환경의 변화와 한국의 국력 신장 및 한국민의 자주성 강화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성격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무역·기술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현재 전개되는 미·중 갈등이 첨단 군비경쟁으로 발전하고 동맹·우호국들과의 관계를 재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냉전시기와 달리 가치에 기반한 진영 논리에 따른 세력 재편은 아니다.

현재의 국제정세는 미국의 상대적인 힘이 약화하고 주요 강대국들이 부상하지만, 어느 새로운 국가가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고 주도하지 못하면서 각국이 국익을 바탕으로 각자도생을 꾀하는 혼돈의 시기이다. 2011년 다보스포럼에서 이언 브레머가 전 세계를 이끌던 특정국의 영향력이 약해져 뚜렷한 주도 세력이 없는 상태를 ‘G-Zero 시대’라고 부른 바 있다.

이처럼 국가 간의 역학관계가 변화하는 가운데, 미국이 전통적인 세계 경찰의 역할을 거부하고 ‘미국 우선주의’와 ‘힘에 의한 평화’만 강조하면서 한미관계도 갱신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첫째, 한미 양국은 1994년 12월에 평시 작전통제권의 한국군 반환에 이어 전작권의 반환을 추진하고 있다. 2015년 한미 양국은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약속했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국방중기계획’을 1년 앞당겨 완수하고, 전작권 전환 능력을 점검하기 위해 한미 군사연습을 세 차례 실시하기로 해 작년 8월에 첫 훈련을 했다. 한국군이 한미 연합사의 전작권을 갖게 되면, 한국방위는 한국군이 책임지고 미국은 지원 역할만 하게 된다. 이는 한미동맹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될 것이다.

둘째, 최근 들어 주변국들의 저강도분쟁 시도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들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진입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특히 작년 7월 23일에는 러시아 정찰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하는 일이 벌어졌다. 『2019 일본 방위백서』는 15년째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독도에 전투기의 출격 가능성을 시사하는 도발적 태도를 보였다. 이 같은 주변국들의 회색지대 전술에 대한 한미동맹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는 ‘외부의 무력공격’에만 미국이 군사개입을 검토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 회색지대 사태가 발생해도 미군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셋째,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의 증대다. 2018년 2월 북한선수단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마련된 남북 및 북·미 대화 속에서 외교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4·27 판문점 공동선언’과 ‘9월 평양 공동선언’, 그리고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 성명’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동아시아 질서 재편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비핵화 협상은 중단되고 남북관계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으로 한미동맹의 갱신도 점진적으로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019년 8월 5일 전작권 전환에 초점을 맞춘 하반기 한미 연합연습이 시작된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헬기들이 계류되어 있다. ⓒ연합

자기주도외교 원칙과 입장 견지 필요

그렇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안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한미동맹을 갱신해 나가야 할 것인가?

우선, 자기주도외교(Self-Directed Diplomacy) 원칙을 확고히 해야 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나올 때마다 이를 둘러싸고 전면 동참, 부분 동참, 불참 등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 논란을 벌여왔다. 우리의 정책적 입장을 주도적으로 결정한 뒤 미국의 대외정책과 접점을 찾아 나가는 방식으로 한미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지난 6월 30일 한·미 정상회담과 10월 5일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는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접점을 찾아 조화롭게 추진하기로 하였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것이야말로 주권국가로서 올바른 자세일 뿐만 아니라 국익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2019년 8월 2일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열렸다. ⓒ연합

다음으로 우리의 외교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통적인 ‘허브-스포크(Hub & Spoke)’의 동맹구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 틀 속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유지,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냉전시대는 물론 탈냉전, 탈탈냉전으로 불리는 현재까지 지역협력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미일안보조약, 앤저스조약(ANZUS) 등 양자 동맹을 맺고, 한국과 일본, 호주는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미·일 주도로 중국을 겨냥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면서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의 하위구조로 재편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끝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이 특정 국가를 반대하기 위한 지역동맹으로 발전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관리해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전문에서 밝힌 대로, 한미동맹의 임무는 이 지역에서 집단안보조직이 출현할 때까지 존속하는 과도기적인 집단방위조직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한일 지소미아가 유지되더라도 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비롯한 역내 안보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에 국한해 운영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집단안보(동북아 다자안보기구)가 아닌 집단방위의 심화(한·미·일 군사동맹)로 가지 않는다는 원칙과 입장을 확 고히 견지해야 한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조 성 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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