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22021.02

평화통일의 길을 묻다


배기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남북 합의 이행하고 국민 의지 모으며
평화를 진전시켜야 합니다”


지난해 12월 25일 배기찬 사무처장이 민주평통 24대 사무처장에 임명됐다. 코로나19와 교착된 남북관계,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미·중 경쟁 등 갖가지 변수들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평화를 진전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를 위해 민주평통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배 처장은 남북 합의를 이행하는 것, 국민의 의지를 모으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진행 | 신지은 민주평통 청년자문위원





Q | 민주평통 제24대 사무처장으로 임명된 지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어떤 부분을 주력해서 점검하셨습니까?
  지난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임명을 받았는데요, 연말연시인데다 2020년 사업평가와 2021년 사업계획 수립이 맞물려 말 그대로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취임사에서 사명에 충실한 조직과 비전에 성실한 사람을 강조했는데, 사명과 비전을 재점검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적극행정을 위한 소통과 협업, 그리고 효율성, 창의성, 전략성을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Q | 대학시절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랐습니다. 1982년에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다녔는데, 그해 봄 민주화운동이 학교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때 데모를 하던 여학생이 머리채를 잡혀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됐죠. 방학 때 고향집 지붕에 올라가 하늘을 보면서 물었습니다.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가?’ 그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사랑’ 이고 그것을 민족에게 적용하면 ‘통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통일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통일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고, 그 후 40여 년을 평화통일 분야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Q | 지나온 길에서 성과와 아쉬움은 무엇입니까?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보람 있었던 순간은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1997년 하버드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있을 때 북한 동포들이 굶어 죽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아파 매일 점심을 금식하면서 동포들이 굶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나 노무현 대통령을 모시고 평양에 간 거죠. 수십만의 평양 시민들이 한복과 양복을 차려입고 환영하는 모습을 차창밖으로 유심히 봤는데, 10년 전 이들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던 순간이 떠올라 참 감격스러웠습니다. 평양에서 동포들을 만나고, 합의문 작성팀에 합류하여 10·4 선언을 만드는 데 일조했던 것이 가장 보람된 순간입니다.

“민주평통 40년,
국민의 의지와 역량 파악하는 능력 높여야”

Q | 올해는 민주평통 창설 40주년입니다.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의장이신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구인 만큼, 평화통일에 대해서 의장과 같은 수준의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또 하나는 5천만 국민, 나아가 전 민족의 평화통일 인식과 의지를 파악하는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이와 함께 평화통일의 현실적 주체인 대통령과 기본적 주체인 국민을 연결하고 소통하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문위원과 사무처 직원들이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국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도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Q | 19기 활동이 앞으로 7개월 정도 남았는데,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십니까?
  민주평통은 지난 1년 동안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비교적 잘해왔습니다. 비대면 방식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올해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해 화상회의가 활성화되면서 국내외에서 자문위원을 연결하고 접촉면을 넓히는 것이 상당히 용이해졌습니다. 2021년에는 이를 더 활성화하는 동시에 여성과 청년의 역할을 높이고, 지역회의와 지역협의회의 활동을 내실화하면서 국민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노력을 강화하고자 합니다.

Q | 사무처 차원에서는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2021년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이 ‘평화’입니다. 저는 평화란 ‘각자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자유롭게 어울려 사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평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 「우리고장 평화플랜」과 같은 평화실천 사업을 펼치고자 합니다. 또 남북교류협력의 기반을 만드는 역할도 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지자체가 교류협력의 주체가 되도록 했습니다. 전국에 지역회의와 협의회가 있는 민주평통은 지자체 교류협력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반을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생존전략은
영민한 돌고래가 되는 것”

Q | 미·중 패권 경쟁 속 우리의 생존전략은 무엇일까요?
  그 질문은 제가 30년 동안 고민한 주제인데,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우리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과거만 생각하며 한국이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에 들며, 군사력도 최근 보고에 의하면 세계 6위라고 합니다. 한류 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고 정치적 민주화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우리 주변의 강대국이 고래라면 우리는 ‘영민한 돌고래’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두번째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와 정체성은 분명합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무역을 통한 경제발전, 과학기술 발전이 그것입니다. 그렇다고 중국과 완전히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중추적인 중견국가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를 만드는 국가가 되어야 하고, 이것이 우리의 전략이자 방편이 되어야 합니다.

Q | 북한의 생존전략은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2007년 10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호랑이를 이긴 고슴도치’라는 북한 만화영화를 봤습니다. 호랑이가 고슴도치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들다가 몸을 잔뜩 웅크린 고슴도치 가시에 찔려 피범벅이 되어 도망갑니다. 저는 북한의 전략을 고슴도치 전략이라고 봅니다. 국방력 강화, 핵무력 완성, 미사일 개발 등은 고슴도치의 가시를 강화시키는 전략입니다. 이것을 엄중하게 봐야 하지만, 한편으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남북관계는 곰처럼 인내를 갖고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은 어두운 동굴에서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인간이 되기를 꿈꿨고, 결국은 인간이 됐습니다. 우리도 새로운 코리아, 통일 코리아를 꿈꾸고 인내하면서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북한에 대해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우직하게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진전의 열쇠는
‘합의 이행’”

Q |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이라는 과제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푸는 열쇠는 합의 이행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신년사에서 남북 합의 이행을 강조했고, 김정은 위원장도 8차 당대회에서 남북 합의를 언급했습니다. 그동안 남북은 많은 합의를 했습니다. 2018년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선언이 있었고, 2007년 10·4 선언, 2000년 6·15 공동선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1972년 7·4 공동성명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과 북한도 2018년 싱가포르 합의를 했습니다. 이러한 합의를 바탕으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풀어 간다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Q | 성과를 낼 시간이 별로 없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축구 경기로 비교하면 후반전 20분 정도가 남았죠. 그런데 후반전 20분은 적은 시간이 아니에요. 지고 있었더라도 20분 안에 얼마든지 골을 넣고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10·4 선언을 이뤄낸 것도 임기를 약 5개월 남겨둔 시점이었어요.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임기를 마칠 때 정점에 도달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남은 시간은 다방면에서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는 시간입니다.

배기찬 사무처장이 신지은 자문위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민과 대통령 연결하며 국민의 의지와
지혜 모아 나갈 것”

Q | 우리 정부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통합된 힘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중점을 둔 부분 중 하나가 미국과 북한 사이의 촉진자,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 역할을 잘해 나가야 합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남북이 당사자가 되어 대화하고 협상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국민적 의지의 결집이죠. 전 세계에 있는 자문위원들이 국민을 대표해서 의지를 결집하고 지혜를 모은다면, 우리 정부도 북한과 협상을 할 때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장벽을 돌파할 수 있을 겁니다.

Q | 끝으로 국민과 자문위원께 전하는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헌법 66조는 ‘대통령은 평화적 통일에 대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통일의 기본적 주체인 국민과 평화통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대통령. 이 두 주체를 연결하는 것이 민주평통의 역할입니다. 국민들께서도 평화통일의 헌법적 가치를 의미 있게 여기면서 민주평통과 소통하고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무처도 국민의 지지와 결집 없이는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국민의 의지와 지혜를 모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