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22021.02

평화읽기


헬싱키 프로세스와
한반도 프로세스

다차원적, 점진적 전략 마련하고
역내 국가들과 공감대 형성해야


인류는 전쟁의 역사를 반복해 왔지만, 이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노력도 끊임 없이 지속해 왔다.
냉전 시기 유럽에서 진행된 평화 만들기 노력을 살펴보고, 이것이 한반 도 평화 만들기에 주는 함의를 탐구해 본다.


  냉전 시기 유럽에서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 경쟁이 벌어진 동시에 긴장과 대결의 질서를 극복하려는 체제 간 대화도 진행되었다. 당시 대화는 크게 세축으로 전개되었다. 첫째, 미국과 소련 간 전략무기제 한협정(SALT), 둘째, 미·소와 유럽 중동부 국가들이 참여해 재래식무기 감축을 논의한 상호균형감축협상(MBFR), 셋째, 미·소를 포함한 유럽 35개국이 참여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그것이다. 이들 세 회의는 1970년대 데탕트(Detente) 무드를 만들었는데, 특히 CSCE를 통해 역내 국가들은 정치·군사·경제·사회·과학·인도주의 등을 망라하는 신뢰구축 논의를 전개해 나갔다.

유럽의 냉전 종식과 신뢰구축 노력
  평화로운 냉전 종식의 발판으로 작용했던 CSCE는 오늘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로 변신해 역내 안보협력을 제도화해가고 있다. 그 과정이 1975년 8월 1일 헬싱키 협정 채택을 계기로 본격화했다고 해서 ‘헬싱키 프로세스’라 부른다. 냉전기 CSCE의 군비통제 협상은 미·소간 SALT 협상의 부침과 MBFR의 실패 속에서도 유럽 전역의 군비통제 논의를 성공적으로 전개해 왔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협상 시스템의 구성요소는 참가자, 의제, 절차규칙 등이다. 먼저, 헬싱키 프로세스의 참가자는 35개국 대표였고, 그들 사이에는 균등 참가 원칙과 개별 국가별 참가 원칙이 공유되었다. 그러나 실제 협상과정에서 국가들의 입장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진영, 바르샤바 조약기구(WTO) 진영, 비동맹중립국가군(NNA) 등 크게 세 그룹으로 나타났다. 의제는 헬싱키 협정이 규정한 신뢰구축방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은 관련국들이 만들어 갔다. 그때까지 세계 역사에서 지역 차원의 신뢰구축을 논의한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1978년 5월 프랑스 데스탱(Giscard d’Estaing) 대통령의 유럽군축회의(CDE) 제안은 점차 CSCE 참가국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헬싱키 협정 이후 신뢰구축방안이 처음 논의된 마드리드 후속회담(1980.11.11.~1983.9.6.)에서는 비동맹 중립국들과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등 일부 국가들이 신뢰구축방안을 내놓았다.

  마드리드 후속회담의 합의에 따라 1984년 1월 17일 CDE 회담이 스톡홀름에서 열렸다. 이 회담은 신뢰구축 문제와 함께 안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신뢰안보구축방안(CSBM) 회담이라고 불린다. 스톡홀름 회담에서는 군사력 사용 금지, 군사활동 사전 통보 및 감시, 군사 기동 및 이동 규모 제한, 검증 등에 관해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는 이후 두 차례 비엔나 회의를 통해 확정되었다. 헬싱키-스톡홀름-비엔나 협약을 통해 신뢰안보구축의 범위는 유럽과 구소련일부(우랄산맥 서쪽)에서 전 유럽지역으로 확대돼 갔다. 합의의 구속력은 자발적 준수, 정치적 구속을 거쳐 제도적 의무로 나아갔다.

2016년 독일에서 열린 OSCE 각료이사회. 유럽은 OSCE를 통해 역내 안보협력을 제도화해 가고 있다. ⓒ연합
헬싱키 프로세스로 보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헬싱키 프로세스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주는 함의는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의 일부이고, 역내 안정과 역내 국가들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헬싱키 프로세스에서 특정 국가 간 관계(가령 동서독 관계, 프랑스와 서독 관계, 소련과 서독 관계 등) 개선은 유럽 질서의 안정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미·소 주도로 냉전 질서의 안정적 관리가 진행되었고 그 아래서 과거 적대국가들 간에, 그리고 동서 양 진영 간 대화가 진행된것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남북 간 관계 발전과 함께 남북이 역내 국가들과 협력관계를 증진해 역내 안정을 꾀하는 데서 출발한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경쟁보다는 공동선을 위해 협력하며 세계 및 역내 안정에 기여할때 남북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긴장 완화 및 평화 구축 노력은 다자적 차원에서 점진적으로,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헬싱키 프로세스에서의 군비통제 논의는 논의 틀 형성과 합의 도출, 합의 내용의 구체화, 합의사항 이행 및 제도화 등의 단계를 거치며 꾸준히 전개되었다. 미·소관계, 동·서독관계, 그리고 유럽 내 정치군사적 정세 등에서 변동이 없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군비통제 논의가 중단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국가 및 진영을 초월해 관련 전문가들의 대화가 이어져 그들 간의 인식공동체가 형성되어갔기 때문이다. 역내 정세나 국가 간 관계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군비통제 전문가회의(트랙Ⅱ)나 1.5트랙 회담이 필요하다. 또 헬싱키 프로세스가 미·소 핵회담과 유럽 내 MBFR과 병행된 점을 감안할 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다차원으로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남북 간 재래식 군비통제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 북핵 문제는 북·미 협상,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동북아 안보협력과 관련지어 4자 혹은 6자회담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다차원적, 점진적 접근전략을 마련해 역내 국가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바이든 정부 출범 직후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셋째, 헬싱키 프로세스는 결과적으로 평화적 방식으로 대결적 지역질서를 변경하였다. 평화적 방식이란 삼공(三共)의 접근을 말하는데, ①상대의 여건과 입장에 대한 이해(공감), ②상대의 존재 인정 및 신뢰 조성(공존), ③미래지향적인 자세로 협력 전개(공영)가 그것이다. 현상유지 질서를 인정하는 가운데 현상변경의 동력을 만들고 추진해 나간 것이 헬싱키 프로세스의 특징이자 교훈이다. 한반도 평화 역시 삼공의 접근이 필요하고 가능한데, 그것은 북한에 대한 존중과 남북 합의사항의 이행을 요구한다. 물론 그것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서보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