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722021.02

평화 Talk 통일 Talk

Book Talk 백남룡의 『벗』

이혼 위기 가정을 매개로 형상화한
사회주의 사회의 진솔한 내면



작가 백남룡
1949년 함경남도 함흥시 출생.
1979년 「조선문학」에 단편
『복무자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벗』,『60년후』 등이 있다.

가정 불화 고백의 중층적 진실
  백남룡의 『벗』(1988)은 이혼을 결심한 성악가-노동자 부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주인공인 판사가 자신의 부부생활에 대한 회한 등을 함께 드러냄으로써 사회주의 가정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벗』은 임마누엘 김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2020년 4월 『프렌드(Friend)』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했으며, 2020년 12월 미국 도서관 잡지인 『라이브러리 저널』에서 ‘2020년 최고의 세계문학’ 10편 중 하나로 선정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얻고 있다. 이미 남한에서는 1990년대 이래 ‘북한 바로알기 운동’ 차원에서 주목을 받아 온 작품이다. 특히 ‘이혼이라는 소재, 개별적 개인의 발견, 문화 정서적 세련미, 세계문학과의 소통 가능성 제시’(장용석) 등이 대중의 관심을 촉발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왼)2018년 한국에서 출간된 『벗』(아시아)              (오)2020년 미국에서 출간된 『Friend』 (Columbia University Press)
이혼 결심과 재결합 사이
  작품 속에서 시 인민재판소 판사 정진우는 도 예술단의 성악배우인 채순희로부터 이혼 신청을 받게 된다. 고목처럼 생활이 메마른 남편과는 도저히 ‘생활 리듬’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이다. 순희는 대중들의 선망 어린 눈길과 박수갈채 속에 사는 인기배우였지만, 남편 리석춘은 결혼 이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선반공으로 생활을 이어간다. 정진우는 가정불화의 실제 원인이 직장생활에 성실한 남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선반공이었던 과거를 잊고 음악가가 된 후 허영심에 들뜬 아내 순희의 이기적인 불만에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둘 사이에 ‘불협화음’으로 얼어붙어 있던 마음들이 판사의 중재로 풀리면서, ‘아량과 용서, 희망의 기대’ 속에 순희와 석춘 부부가 재결합을 이룰것을 예감하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이 작품의 실질적인 매력은 판사 정진우가 자신의 부부생활에 대한 진솔한 고백을 드러낸다는 점과 순희의 이기적 욕망에 대한 섬세한포착이 이루어진 점 등에 있다.

  먼저 주인공인 정진우 판사 자신의 부부생활에 대한 내적 고민이 주목된다. 20년이 넘는 가정생활에서 “연구 사업을 하는 아내 대신 어쩔 수 없이 주부 역을 담당했던 날들”을 떠올리면서, 화가 불쑥 치밀기도 하고 ‘아내의 양해’라는 말에 비위가 거슬리고 부아가 돋는 마음이 솔직하게 토로된다. 물론 결과론적으로는 불만과 짜증이 나는 일상 속에서도 보람 있는 생활이었음을 고백한다는 점에서 가정을 중시하는 사회주의적 인간의 전형이 드러난다. 하지만 “지난날에는 이런 진실하고 깨끗한 동지적 감정을 품지 못했다”라면서 자신이 ‘남편으로서의 당위적 책무감’에 충실하지 못했던 한계를 고백하고, 다른 가정처럼 “아늑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부러워”하면서 “목가적인 순수한 가정적 행복을 바란 적도 있었다"고 자기비판하는 측면은 과거의 가정생활에 대한 불만족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둘째로 순희 부부의 갈등을 포착하면서 순희의 욕망을 읽어내는 주인공의 입체적 시각에서 작품의 매력이 드러난다. 정진우 판사는 육체노동을 하는 남편과 정신노동을 하는 아내의 갈등에 주목하면서 순희의 허영심을 읽어낸다. 우월감을 지닌 순희는 노동자 남편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따분하고 구태의연한 생활에 만족하면서 정신생활에 변화가 없는 모습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다. 결국 둘 사이를 중재하던 판사가 ‘공장에서의 성실성’이 ‘가정의 화목’을 가져오는 필요 조건일 수는 있어도 필요충분조건일 수는 없음을 지적하면서, 부부의 애정에서 ‘사업’ 이외에도 ‘정신생활 영역에서의 교감’이 필요함을 강조하게 된다.

‘숨은 영웅’의 사실주의적 내면
  『벗』은 수령의 말씀이나 당의 지시를 실현하는 획일화된 ‘주체문학’이 아니라, ‘이혼결심과 재결합’을 매개로 북한 사회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의 생동감을 포착한 텍스트라는 점에서 매력과 흡입력을 지닌다. 물론 작품 속의 서사는 ‘사회주의 대가정론’에 입각하여 가정이 국가의 개별 단위에 해당한다는 ‘사회주의적 가정 윤리’를 재확인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1980년대 북한문학의 대표작인 『벗』은 정진우 판사가 순희와 석춘 부부의 이혼 위기를 극복하게 해주는 ‘숨은 영웅’이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부부의 가정생활에 대한 진솔한 고민과 고백 속에 동요하는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문학의 새로운 사실주의적 측면을 보여준다.


오태호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