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포커스
8차 노동당 대회 이후 북한,
중앙집권성 경제관리 강조 가능성
지난 1월 5일부터 12일까지 북한은 8차 당대회를 개최했다. 2016년 이후 5년 만에
개최된
8차 당대회의 내용을 분석하고 향후 북한이 가고자 하는 길을 전망한다.
  북한에서 당대회는 ‘승리자의 대회’로 불린다. 1961년 4차 당대회부터 그랬다.
이전 당대회에서 제시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목표 달성 투쟁에서 승리했다’)는 의미이다.
6차 당대회 이후 무려 36년 만에 열린 7차 당대회 역시 ‘승리자의 대회’였다.
하지만 이번 8차 당대회는 굳이 부르자면 ‘실패자의 대회’라고 해야할 듯하다.
7차 당대회에서 제시된 5개년 전략의 목표가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되었다”고 김정은 위원장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당대회는 “지난 시기의 당대회들과 달리 자기 사업을 긍정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비판적인 견지에서 냉정하게 분석총화” 하는 데 집중하였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9시간의 사업총화보고 중 대부분을 할애했을 것으로 보이는 비판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비전의 부재 혹은 실용적 접근
  승리가 확정되면 다음 단계 투쟁 목표가 제시된다. 이것이 전략과 함께 비전을 이룬다. 하지만 이번 당대회에서는 목표도 전략도 비전도 제시되지 않았다.
지난 총결기간(2015~2020) 투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실패한 ‘5개년 전략’(2015~2020) 대신 ‘5개년 계획’(2021~2025)이 채택되었는데,
이 계획은 새로운 목표, 점령해야 할 고지를 제시하기보다는 ‘정비전략, 보강전략’으로 규정되었다.
과거 북한에서는 중장기 경제계획이 실패하면 2~3년간 완충기를 설정하여 기존 목표를 달성한 후 새로운 중장기 경제계획으로
넘어가곤했다. 이번에는 새로운 중장기 계획 자체가 사실상 완충기 전략으로 설정된 것이다.
  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 과학기술강국 건설, 경제강국 건설(5개년 전략), 문명강국 건설,
조국의 자주적 통일, 세계의 자주화라는 거창한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번 8차 당대회에서는 이런 담론 자체가 사라졌다.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는 개정 당규약을 설명하면서 한 번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과학기술은 지난 시기에 편향이 있었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5개년 계획달성과 관련된 과제역량을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생산과 연계된 과학기술, 실용적 과학기술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역시 문학예술과 선전 부문의 고질적 결함을 지적하면서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 현상과의 강력한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전 사회적인 준법기풍 강조, 당 규약개정에서 당 중앙검사위원회의 권능 강화와 규율조사부라는 집행부서의 설치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계급투쟁 도구로서 문화의 기능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대외관계에서도 미국 제압이라는 보다 현실적인 어젠다가 강조되었다.
  한마디로 거창한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눈앞에 닥친 문제부터 풀어나가겠다는 판단, 좋게 말하면 실용적 접근인 것이다.
하지만 실용적 접근이 목표와 비전의 부재를 낳을 이유는 없다. 목표 없는 실용은 맹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은 구체적 목표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조차 곤란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독재체제에서 비전은 주민의 정신력과 노동력, 충성심을 동원하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하지만 비전 달성의 실패는 정치적 리더십의 약화를 초래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지난 5년간의 실패를 통해 이를 절감했을 것이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새로운 비전의 제시를 주저하게만드는 요인일지도 모른다.
김 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당대회를 마감했다.
  “나는 그 어떤 요란한 구호를 내드는 것보다 우리 당의 숭고한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 이 3가지 이념을 다시 깊이 새기는
것으로써 당 제8차 대회의 구호를 대신하자는 것을 제기합니다.”
지난 1월 8일 평양에서 노동당 제8차 대회 4일차 회의가 열렸다. ⓒ연합/조선중앙통신
지난 1월 14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노동당 제8차 대회를 기념하는 열병식이 진행됐다. ⓒ연합/조선중앙통신
경제와 국방 사이의 딜레마
  김정은 위원장은 당대회 결론연설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은 오늘 우리가 총력을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혁명과업”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2018년 4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장 이외에는 사업총화보고나 결정서 어디에도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에 대한 명시적 언급이 없다.
더욱이 당규약 개정 해설에서도 전략노선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은 2013년 3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경제-핵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이를2015년 7차 당대회에서 공식 승인하면서 당 규약에 반영하였다.
그리고 2018년 전원회의에서 경제-핵 병진노선의 ‘결속’을 선언하고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을 채택, 전략노선을 수정하였다.
그렇다면 이번 당대회, 특히 당규약 개정에서 이에 대한 공식 승인절차가 필요한데 그 증거를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번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건설과 함께 국방력 강화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언급, 강조하고 있다. 결론연설에서는 “핵전쟁
억제력을 보다 강화하면서 최강의 군사력을 키우는
데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당대회
보고를 통틀어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도 경제와 국방이다.
  반면 이번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건설과 함께 국방력 강화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언급, 강조하고 있다.
결론연설에서는 “핵전쟁 억제력을 보다 강화하면서 최강의 군사력을 키우는 데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당대회 보고를 통틀어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도 경제와 국방이다.
이러한 정황은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을 채택했음에도 사실상 병진노선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애매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인다.
즉 경제규모가 축소되고 있음에도 국방에 대한 투자규모를 그에 비례하여 축소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사실상의 병진노선’). 물론 북한이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을 폐기했다는 증거도 없다.
따라서 만일 다음 당대회까지 대외 안보환경과 경제 문제가 개선된다면 북한은 제9차 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을 채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다음 당대회까지도 대외관계와 경제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북한의 전략노선은 다시 병진노선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개혁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일관되게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추진하여 왔다.
하지만 대북제재로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특히 2020년 들어 제재, 코로나19, 수해라는 삼중고에 직면하면서 개혁을 후퇴시키고
재집권화를 추진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되곤 하였다.
특히 작년 10월에는 외화사용 금지조치까지 내린 바 있다.
시장에 대한 통제 강화
  김 위원장은 사업총화보고에서 상업 및 서비스에 대한 국가의 주도적 역할과 조절통제력 ‘회복’을 강조하고, 무엇보다 ‘생산물에 대한 통일적 관리’를 요구하였다.
이는 시장공간의 축소와 식량, 소비재, 생산재에 대한 중앙집중적 관리 확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결론연설에서는 “앞으로 2~3년간 해마다 국가 의무수매 계획을 2019년도 수준으로 정하고,
반드시 달성하며 전망적으로 수매량을 늘리라”고 지시하고 있다.
이경우 농업 생산물 중 국가 수매량이 크게 늘어나고 농민의 자율처분량은 줄어듦으로써 농업개혁의 인센티브가 사라짐은 물론 시장 기능도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생산재의 경우, 공장가동률 하락, 수입제재 및 외화부족 등으로 인해 중앙집중적 자재관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한편,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 국가적인일원화 통계체계 강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당경제,
군경제의 군살을 빼기 위한 조치로 판단된다.
특수경제가 원래 목적을 넘어 비대해지면서 내각경제가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결론연설에서 “당대회 이후에도 특수성을 운운하며 국가의 통일적 지도에 저해를 주는 현상에 대해서는
그 어느 단위를 불문하고 강한 제재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쐐기를 박고있다.
2019년 5월 20일 평양 봄철국제상품전람회가 3대혁명전시관에서 열렸다. ⓒ연합/조선중앙통신
  전반적으로 보면 향후 북한의 경제관리기조는 중앙집권성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공장, 기업소의 경영활동조건 개선, 계획화 사업개선, 재정·금융·가격 등 경제적 공간의 이용 등 개혁을 의미하는 표현도 간단히
언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북한이 거시경제와 미시경제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작년 4월 헌법개정을 통해 ‘대안의 사업체계’를 공식 대체한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가 당대회 전 기간에 걸쳐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임수호
국가안보 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