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782021.08

특집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남과 북,
한반도 생활공동체 만들어 가자



2021년 8월 15일 광복 76주년을 맞이했다. 광복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남과 북은 평화통일에 어떻게 접근해 나가야 할까.
평화통일의 길을 모색해 본다.



  올해로 광복 76주년을 맞았다. 통일을 이뤄야 진정한 광복을 달성한다. 그런데 통일은 염원할수록 멀어지는 듯하다. 분단 이후 우리 민족이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고 서로 다른 생활권을 형성하고 살아온 지도 두 세대가 훨씬 지났다.

평화공존과 통일의 양극화
  분단이 장기화되면서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관심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통일연구원이 지난 7월 15일 발표한 ‘KINU 통일의식조사 2021’에 의하면 남북관계의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이 ‘평화공존’ 과 ‘통일’로 양극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58.7%, 평화공존을 선호하는 응답이 56.5%로 나타났다. 향후 5년간 남북관계 전망에 대해서도 지금보다 나빠질 것이란 응답이 20.3%로, 좋아질 것이란 응답 13.0%보다 많았다. IMF세대 68.3%, 밀레니얼세대 74.1%가 남북관계에 관심 없다는 답변을 했다. 이른바 MZ세대(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라고 할 수 있는 ‘미래세대’들은 남북관계를 부정적으로 전망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대 자체를 접은 무관심층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세대가 남북관계와 통일에 무관심하고 비관적인 것은 북한의 지속적인 핵개발과 도발을 목격하면서 대북인식이 나빠졌고, 남북 국력격차 심화에 따른 막대한 통일비용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나라와 민족 그리고 국경을 초월하여 생산과 소비활동을 하는 지구촌 시대이다. 더 이상 미래세대를 좁은 한반도에 옭아맬 수는 없다. 19~20세기 과업이었던 ‘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통일에 미래세대가 관심 갖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북한의 신세대 지도자인 김정은 총비서도 ‘민족’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는 것 같다. 김정일 시대 ‘우리민족 제일주의’ 담론을 김정은 시대에서는 ‘우리국가 제일주의’ 담론으로 바꿔 핵보유 국으로서의 전략적 지위와 영향력을 내세우고 ‘애국주의’와 ‘국풍’을 강조하는 등 국가중심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성격은 다르지만 남과 북의 젊은 정치인들도 통일과 남북관계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다. 얼마 전 야당 대표가 ‘작은 정부론’을 펴면서 통일부 폐지를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이 지난 3월 15일 담화에서 “현 정세에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 대남대화기 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정리하는 문제를 일정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우리의 통일부와 유사한 통일부와 유사한 통일전담 정부기관이다. 남과 북의 신세대 정치지도자들이 통일과 남북관계 개선의 당위론적인 숙원과 과제에 매달리지 않고 이질화한 남북 현실을 반영하여 자기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체제경쟁과 국력격차 심화
  동족상잔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정전협정 이후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남과 북은 극단적인 불신 속에 체제경쟁에 돌입했다. 남한은 ‘유치를 통한 개발촉진 전략’인 수출주도형 산업화 전략을 채택하고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공세적으로 편입하여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 지난 7월 2일 대한민국이 유엔무역개발회의 (UNCTAD)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했다. 한국은 적극적인 북방정책을 추진하여 1990년 한소수교, 1992년 한중수교를 단행하고 사회주의 두 강대국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북한은 혁명과 건설의 기본단위를 ‘나라와 민족’으로규정하고 폐쇄적인 자력갱생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주체·자주를 표방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수령체제를 유지하고 제도화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아직 미국, 일본과 적대관계를 해소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먹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남한 국력이 북한의 40~50배에 달한것으로 추정돼 남북한의 국력격차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벌어졌다.

  한국은 세계체제 단위의 개방경제와 수출주도형 경제를 추진하여 세계 선도국가 반열에 들어섰다. 피식민지배, 분단과 전쟁, 북한 문제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 등 우리의 발전환경은 매우 열악했음에도 G2인 미국과 중국 두 나라와 다양한 연결망을 구축한 중심국가(선도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전쟁의 교전당사국이자 정전협정의 당사국으로 한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한국 또한 이들 국가의 경제발전에 기여한다. 한국은 중국의 생산력 발전에 기여하고 교역확대로 한국경제의 급속한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이제는 원조를 주었던 미국보다 앞선 기술력을 내세워 첨단 생산 시설을 미국에 건설할 정도로 선진국가 대열에 들어섰다. 이제 우리 국력은 미·중 전략경쟁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

1991년 9월 17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확정된 뒤 노창희 주 유엔 대사가 박길연 북한 대표부 대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

사회주의권 붕괴와 남북공존의 제도화
  북한은 사회주의 두 형제국가들이 한국과 수교한 데 크게 실망하고 남북공존을 제도화하기 위한 조치와 함께 핵무기 개발에 주력했다. 친자본주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1989년 혁명’을 계기로 사회주의권의 체제 전환을 목격하면서, 김일성 주석은 1991년 신년사에서 “남북에 서로 다른 두 제도가 존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조국통일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우지 않는 원칙에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에 기초한 연방제 방식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밝힌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수정했다.

  김일성 주석이 남북공존원칙에 입각한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주장한 것은 체제열세를 인정하고 흡수통일되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체제연합 성격의 연방제(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명명)로 통일방안을 수정한 것은 사회주의권 붕괴와 남북 국력 격차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부터 북한은 수세적인 남북공존을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1991년 9월 17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실현하고, 12월 13일 남북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유엔 동시가입은 국제법적인 남북공존 모색이고,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은 민족 내부의 남북공존을 제도화한 것이다.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불가침합의를 함으로써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고 남북공존을 제도화하고자 했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은 대외적으로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공존함을 알리는 것이었다.

  사회주의권 개혁·개방과 붕괴로 탈냉전시대가 열리자 남북한도 통일로 가는 과도체제 또는 중간단계로 ‘남북 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설정하고 공존을 모색했다. 북한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만들 때 김일성 주석이 1991년 신년사에서 밝힌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를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명명했다. 그리고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 앞에서 판문점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북한의 핵개발과 통일담론 후퇴, 그리고 ‘오직 평화’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남북공존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북한은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물리적 힘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주력했다.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핵을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김영삼 대통령),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박근혜 대통령)는 주장이 나오는 등 북한 핵 문제가 한반도 정세를 지배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본격화하면서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보다는 비핵화와 급변사태 대비가 주된 관심사가 됐다.

  김정은 시대 북한이 브레이크 없는 핵개발을 추진하고 이에 맞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 공언 등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기가 고조될 때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우선주의를 내세우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단호한 의지를 ‘오직 평화’란 언술로 집약적으로 표현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과 완전한 비핵화 실현을 평화-비핵 교환 프로세스로 구체화하여 2018년 4·27 판문점선언과 6·12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에 담고, 9월 평양선언을 통해서 북·미 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중재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코로나19 팬데믹 지속과 미국의 정권교체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가동을 멈췄다. 남·북·미 각각의 국내 구조의 반발, 미·중 간의 패권경쟁, 코로나19 팬데믹 등도 한반도 평화-비핵 교환협상의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1990년대 초 북한 핵개발 문제가 불거진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북핵 문제는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 ‘의무통과지점’이 됐다. 한국과 미국의 역대 정부들이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핵 고도화를 막지 못했다. 북핵 문제가 한반도 정세를 지배하면서 통일 담론은 설 자리를 잃었다. 보수정권의 선비핵화론과 북한 붕괴론, 진보정권의 선체제안전보장과 평화우선론 등 북핵 해법과 관련한 다양한 인식론과 방법론이 제출됐지만 북핵 문제를 풀지 못했다.

  2017년 11월 29일 ‘국가핵무력완성’선언 이후 북한은 ‘힘을 통한 평화공세’를 펴고 남북, 북·미대화에 나왔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미국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고 하면서 더 이상 비핵화 협상에 응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북한은 북·미 대결을 제재 대 자력갱생의 대결로 압축하고 미국이 셈법을 바꿀 때까지 ‘정면 돌파전’을 펴면서 장기전에 들어갔다.

광복 76년의 남과 북, 생활공동체 형성하자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조율된 실용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지만 북한은 관망하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과거와 달리 북한이 바이든 정부 출범 전후와 현재까지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자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6월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핵보유국으로서 ‘유리한 외부적 환경을 주동적으로 마련’할 데 대한 언급과 함께 ‘전략적 지위와 능동적 역할’을 강조했다. “조선반도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데 주력해 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당장은 전통안보인 핵위협보다 비전통안보인 코로나19가 더 위협적이다. 북한은 코로나19보다 식량난 등 경제위기가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세계인들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세계체제)로 통합됐지만, 한반도 절반을 차지한 북한은 세계체제에 편입을 거부하고 계획적인 자력갱생을 한다며 남북관계마저 차단했다. 금강산 관광 중단과 개성공단을 폐쇄한 데 이어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북한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완전히 고립됐다. 햇볕정책을 통한 남북 사이의 ‘경계 허물기(de-bordering)’가 북한의 핵개발과 도발에 대응하는 교류협력 중단으로 다시 ‘경계 쌓기(re-bordering)’로 후퇴하고 소통창구마저 닫아 남과 북은 2국가체제로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을 앞세우기는 쉽지 않다. 먼저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와 평화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통일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부터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민족통일도 중요하지만 한반도 생명공동체론에 따라 남북한 주민들의 일상이 편안해질 수 있도록 ‘한반도 생활 공동체’ 형성을 위한 남북협력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고유환 통일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