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782021.08

여수 돌산대교 ⓒ한국관광공사

우리고장 평화의 길

질곡의 민족사가 관통한 여수에서
평화의 찬가를 노래하다



2021년 6월 29일은 여순사건이 발발한 지 73년 되는 날이자 여수지역사회연구소가 여순사건을 세상에 공론화한 지 23년이 되는 날이다. 제16대 국회부터 상정되기 시작한 여순사건특별법이 20년 만에 4전 5기로 통과되었다. 푸른 유월의 하늘이 눈부신, 기억해야 할 일들이 많은 달에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특별법」이 제21대 대한민국 국회를 통과했다. 역사의 달력에 또 하나의 사건을 굵게 아로새겨야 할 시간이다.
『이충무공전서』를 보면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란 말이 있다.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라는 뜻이다. 물론 여수만이 아닌 호남인의 의기와 위상, 역할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임진왜란 당시 여수는 이충무공과 더불어 7년을 사생결단으로 싸운 ‘구국의 성지’다. 그때 이곳 여수에서(당시 전라좌수영) 선조들이 목을 지키지 못하였다면 왜적은 남해안을 거쳐 서해안으로 병기, 병참을 보급하여 조선의 전황은 걷잡을 수 없는 풍전등화가 되었을 것이다.
여수는 그런 자부심과 애국심이 가득한 시민들이 사는 도시이다. 73년 전 국가는 그런 시민들을 ‘킬링필드’나 ‘동티모르 학살’처럼 야만적으로 학살했다. 무려 1만 1,131명(1949년 집계)이 희생됐다. 당시 미군사고문단은 “여순 진압은 약탈과 강간이었으며, 의심할 것도 없이 가장 난폭한 꿈이 이루어지듯이 진행됐다”고 보고했다.


여순사건으로 당시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당했다.

오랜 저항과 항거의 역사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세월이 흘러 강산이 일곱 번이나 바뀌면서 여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하게 ‘강요된 역사의 침묵과 굴종’으로 73년이 흘러갔다. 그동안 여수는 전국 최초로 주민의 발의에 의해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을 통합하며 1998년 통합 여수시로 출범했고, 세계적인 행사인 2012 여수세계박람회가 3개월간 성대히 열리기도 했다. 현재는 연간 1,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국내 굴지의 해양레저 관광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백도의 근경 ⓒ한국관광공사

  돌이켜 보면 지난 120여 년간의 우리 민족의 역사는 참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어 왔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구한말 항일의병, 일제강점하의 항일독립운동, 3·1운동,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해방 후 대구 10월 항쟁, 제주 4·3항쟁, 여순항쟁, 6·25 한국전쟁, 4·19혁명, 광주 5·18 민중항쟁, 87년 6월항쟁과 7~8월 노동자대투쟁, 2016년 촛불항쟁 등 엄청난 민족사적 사건들이 바로 그것이다.

  고난의 민족사에 있어서 여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백제시대에는 신라의 삼국통일에 편입되기를 거부한 최후 저항지였고, 고려 말 조선 초에는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기를 들어 신생 조선왕국을 거부한 저항지였다. 그로인해 조선조 내내 여수는 세 번이나 폐현과 순천 복속, 다시 복현되는 이른바 ‘삼복삼파(三復三罷)’의 수난을 겪게 된다.

바다와 섬을 끼고 도는 연륙·연도교

  그런가 하면 임진왜란 때는 조선수군총사령부인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죽을힘을 다해 나라를 지켜왔다. 구한말 동학농민혁명,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해방 후 제주 4·3을 진압하기 위한 제주파병을 거부하면서 민족이 민족을, 동포가 동포를 죽일 수 없다며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역사는 가히 저항과 항거의 역사 그 자체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승수군이 활약한 흥국사 ⓒ한국관광공사

여수에서 찾아가는 평화의 모범답안
  이처럼 여수 평화의 길은 단지 남북 분단정세로 인한 평화통일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적 자원이 너무나 많다. 접경지역이 아닌 한반도 남단의 정서에 맞고, 북한과의 통일만이 아닌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로 접근하면 여수만의 평화통일 아젠다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에서의 평화통일 아젠다는 거대 담론이 아닌 동질의 역사와 문화라는 정서적 접근으로 민족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수와 북한, 동질의 역사와 문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임진왜란과 이순신, 일제 식민지하의 항일운동유적과 군사시설, 냉전과 분단 시대의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과 이순신, 의승의 활약
여수에는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진해루(현 진남관)가 있다. 북한에는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인 평양성과 충무공 이순신의 주둔지인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鹿屯島)가 있다. 또 북한에 의승이 활약한 묘향산의 보현사가 있다면, 여수에는 의승수군이 활약한 흥국사가 있다.

✔일제 식민지하의 항일운동과 군사시설
일제강점기 군사시설로는 여수의 요새사령부, 돌산 포대, 여수 항공기지와 벙커, 일본해군 지하사령부 넘너리 철도 터널 등이 있다. 항일운동유적은 여수청년회관, 우학리교회, 덕양교회, 윤향숙 열사 묘, 주재년 열사와 김홍식 화백 생가터 등이 있다.

✔분단시대,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여순사건은 제주 4·3사건과 더불어 단독 선거와 단독 정부 반대 운동인 ‘단선단정 분단거부운동’으로, 제주를 진압하라는 군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며 발생했다. 전남 동부 지역을 비롯한 전남, 전북, 경남지역에서 진행된 대규모의 국가폭력과 집단학살(제노 사이드)이었다.

전라좌수영 본영으로 사용된 진남관(진해루)

남과 북의 동질성을 만나는 평화의 길
  산자수려한 여수와 북한의 금수강산도 빼놓을 수 없는 민족공동체 동질의 문화이다. 북한에 금강산과 묘향산이 있다면, 여수에는 거문도의 부속 섬으로 백도를 비롯한 39개의 무인군도가 있다. 금오도에는 해안 절경이 일품인 금오도 비렁길(벼랑길의 여수 방언)이 있다. 앞으로 여수 돌산도에서 고흥까지 장장 39.1Km에 이르는 ‘백리섬섬길’이 완공될 예정이다. 바다와 9개의 섬을 끼고도는 환상적인 다리 박물관과 11개 연륙·연도교 등 여수의 절경을 기록한 사진과 그림 전시·교류전도 평화를 갈망하는 한반도 평화통일에 큰 몫을 할 것이다.

2021 여수 평화플랜 시민대화 행사장

  지난 6월 18일, 여수에서 ‘2021 평화플랜 시민대화’가 열렸다. ‘여수, 평화의 공간으로!’라는 주제발표에서 참석자들은 여수의 5대 평화의제를 선정했다. 여수시 평화통일 체험관 운영, 북한 해주시와의 자매결연, 평화 공간 현장 체험 등이었다. 이렇듯 여수 평화의 길은 접경지역이 아닌 한반도 남단의 정서에 맞는, 여수와 북한이라는 민족공동체 동질의 역사와 문화자원에서 출발하고 발굴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진 필자 제공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