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782021.08

평화읽기

영토 분쟁 이면에 숨어 있는 국제 정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분쟁의 대표적 상징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성격은 복합적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영토 분쟁이지만 이면에는 종교, 역사, 민족 및 힘의 국제 정치가 얽힌 고질적 사회 분쟁(protracted social conflict)의 성격을 띠고 있다.


딜레마에 빠진 두 국가 해법
  AD 70년 로마의 예루살렘 파괴 이후 2000년 가까운 이산(離散, 디아스포라)을 겪었던 유대인들에게 이 땅은 양보할 수 없는 약속의 땅이다. ‘에레츠 이스라엘(Eretz Ysrail)’ 즉, 신이 허락한 이스라엘의 땅이라는 개념은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유대교의 절대자 야훼가 부여한 약속의 땅을 회복한다는 일종의 고토 회복(irredentism) 운동으로 이해한다. 현대 국제법적 규범이나 다자간 합의를 넘어서는 초월적 세계관이 작동하다 보니 정치적 해법을 통한 타결이 쉽지 않다.

  반면 팔레스타인 입장에서 유대인들은 침략자다. 이스라엘 건국일이 유대인들에게는 해방의 날이겠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날을 ‘재앙의 날(al Nakbah)’이라 부른다. 특히 3차 중동전쟁(1967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상징인 동예루살렘과 함께 요르단 강 서안지구(Westbank) 및 가자지구(Gaza strip)를 점령했다. 이후 시오니즘 사상이 확고한 유대인들이 점령 지역으로 이주해 정착촌을 만들면서 유대인의 영토로 기정사실(fait accompli)화하고 있다.

  이 분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자 갈등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대의를 중심으로 아랍 22개국 및 일부 이슬람권 국가들이 단합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한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든든한 후원을 바탕으로 공세적인 팔레스타인 정책을 유지해 왔다. 이 과정에서 지역 갈등으로 심화되었고 국제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변곡점은 냉전 종식이었다. 소련을 무너뜨린 초강대국 미국의 중재로 1993년과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타결된 이·팔 문제의 양자 간 평화적 해법이 바로 오슬로 합의(Oslo Peace Accord)다. 오슬로 합의의 핵심 골간은 ‘두 국가 해법(two states solution)’이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이 더이상 점령지역 주둔 및 영토화를 고집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국가 독립에 합의한 것이다.

  이 합의의 배경에는 미국의 강력한 중재가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국가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주요 동기였다. 이대로 점령지역을 영토로 못박을 경우 서안지구 및 동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타인 아랍인도 이스라엘 국민으로 편입시켜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랍인이 유대인의 숫자를 넘어서게 되는 형국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유대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점령지역 주민들에게 시민권과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인종차별 국가로 전락한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을 지지할 수 없게 되는 딜레마가 생긴다.

  중동 내 거의 유일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존립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셈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스라엘의 유일한 해법은 팔레스타인을 떼어내 별도의 국가로 독립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두 국가 해법의 배경이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있는 부자 ⓒpixabay

복잡한 현실 뛰어넘는 리더십과 결단 필요
  팔레스타인을 독립시키는 데 대해 근본주의 시오니스트들의 반발은 극심했다. 결국 오슬로 합의의 주역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 총리의 비극적 암살로 귀결되었다. 이후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총리가 바로 들어서면서 오슬로 합의의 대의는 약화되어 왔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국제사회가 지지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두 국가 해법’이다. 그러나 이 역시 지지부진하다. 이·팔 양측 리더십의 박약한 의지, 국가가 되기 위한 팔레스타인의 최종 지위(final status) 관련 협상의 교착, 중재자 미국의 이스라엘 편들기 등으로 인해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네타냐후의 강경 정책과 트럼프 정부의 반팔레스타인-친이스라엘 노선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의 대미, 대이스라엘 불신은 극도로 높다.

  현시점에서도 이·팔 평화협상의 진척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전문가들은 두 국가 해법의 시효는 이미 소멸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해법이 없다. 이대로 분쟁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고 받아들이기에는 폐해가 너무 크다. 이 와중에 이스라엘에서는 네타냐후가 물러났고, 미국은 바이든 정부가 들어섰다. 팔레스타인의 노쇠한 현 압바스(Mahmoud Abbas) 리더십도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난해한 쟁점과 복잡한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동력은 리더십의 전략적 포석과 과감한 결단밖에 없다. 현안과 상황은 여전히 비관적이지만 그나마 리더십의 교체가 가져다줄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 없는 이유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