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1782021.08

지난 2021년 7월 5일 남북회담본부 회의실에서 국민참여단 10명이 직접 이인영 통일부 장관에게 협약안을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다. ⓒ필자 제공

평화통일 현장

한반도 평화통일을 향한 희망

국민참여단과 시민사회가 함께 만든
‘통일국민협약안’



“통일과 관련해서 국민적 합의가 담긴 협약을 만들어 보자고?” 놀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형, 내가 충고하나 하겠는데, 경력 망칠 불구덩이엔 아예 눈길조차 두지 말아!” 2017년 말, 한 시민단체를 책임지고 있던 후배의 말이었다. 뜻은 좋은데 불가능하다고 질책했다. 오기가 생겼다. 그 방향이 바르다면 가시밭길이라도 가야 하는 것이 시민운동의 자세 아닌가!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그 후배는 최근 이런 문자를 보냈다.
“형님, 기사 봤어요. 역시 대단해요. 밥 한번 살게요. 수고하셨어요.”


분단과 함께 갈라진 한국사회와 남남갈등
  한때 우리나라의 국시(國是)는 반공(反共)이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통일을 얘기하면 ‘간첩’이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였다. 정부가 북한과 연결 지은 모든 생각과 행동들을 감시했고 통제했다. 그럴 만도 했다. 70년대 산업화를 이룬 ‘한강의 기적’ 이전에는 북한과 비교했을 때 내세울 만한 게 별로 없었으니까. 일종의 콤플렉스였다. 심지어 TV에서 <113 수사본부>라는 드라마를 연재하기도 했다. 113은 간첩신고번호다.

  1989년 독일의 철의 장벽이 허물어졌다. 90년대에 들어 소련이 해체되면서 동서냉전은 막을 내렸다. 한반도에도 봄이 오는가 했다. 하지만 갈등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노태우 정부 시절, ‘한민족통일공동체방안’이 전향적으로 여야 정치인 모두가 동의하는 가운데 통과되었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정치권의 부침이 커질수록 국민은 그 갈등을 흡수했고 사회는 갈라져만 갔다. 휴전선은 한반도 허리에만 쳐진 것이 아니었다. 우리 마음 한가운데에도 있었다. 이른바 ‘남남갈등’이다. 정치권은 물론이거니와 국민 전체에 드리운 무형의 휴전선을 걷어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은 요원한 것처럼 느껴졌다.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그 과정을 통해 ‘통일’에 대한 국민적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보수, 진보 시민사회를 막론하고 시민운동의 우선 과제였다.

서울시에서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사회적 대화를 가졌다.

남남갈등 해소, 그 가능성을 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시민사회의 요구가 반영되어 ‘통일국민협약’을 국정과제로 추진했다. 하지만 누구도 이것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몰랐다. 말은 간단해 보였다. ‘통일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와 주제를 온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정리, ‘통일국민협약’이란 형식으로 여야 국회가 결의하는 것’이다. 일단 정치 논리가 앞장서는 정치권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다 가장 골치 아팠던 것이 ‘다양한 통일 관련 의제를 어떻게 토론’하고 ‘국민적 동의(또는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일단 남남갈등 해소 없이 통일은 없다는 명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국민참여단을 선발하여 통일국민협약안을 만들 수 있는지 도전해 보기로 했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전국과 해외에서 6천여 명이 넘는 국민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여론조사 기관이 선발했다. 성별, 나이별, 지역별, 정치 성향별로 균형을 고려했다. 전문가도 보수, 진보 성향을 고려해 섭외했다. 사업 전체를 이끌어 갈 별도의 시민단체 ‘평화통일비전 사회적 대화 전국 시민회의(통일비전시민회의)’를 조직했다. 보수, 진보, 중도, 7대 종교까지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모두가 설레하면서도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내디디며 조마조마했다.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항상 긴급한 의제가 떠올랐다. 보수와 진보 활동가 사이에는 늘 긴장이 서렸다. 자칫 잘못하면 자기운동의 근거가 완전히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무자들은 항상 배수의 진을 치고 균형을 잡는 데 최선을 다했다. 누군가 그랬다. ‘이 사업은 전쟁터의 화약 냄새가 풍겨’라고. 우리는 지난 4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면서 때로는 맞으면서 말이다. 화약의 연무가 가라앉고 그 자리에 들꽃이 피었다.

  “남남갈등은 해소 가능한 거지?”, “국민참여단과 우리가 그것을 증명한 거지?”

전국의 참가자들이 온라인으로 접속하여 통일국민협약안을 만들기 위해 숙의토론하고 있다.

국민의 지혜가 만든 ‘통일국민협약안’
  작년부터는 코로나19로 온라인 회의를 했기 때문에 환경은 더 힘들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서로를 격려하며 중요한 순간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그 결과가 국민이 만든 ‘통일국민협약안’이다. 여야 정치권도 놀라워했다. 아마도 이것은 새로운 희망을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내며 여기까지 왔다. 뒤를 돌아보며 생각한다.

  ‘산 속 눈길을 처음 걷는 이는 주의해야 한다. 잘못된 길을 갈 경우, 누군가가 그 발걸음을 따라올 수도 있으니까.’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할 때 마음에 새겼던 내용이다. 절망하고 포기할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그때마다 손을 잡아준 건 국민참여단과 묘한 동지애를 느끼게 된 다른편 활동가들이다. 사실 통일운동에 ‘다른 편’이 어디 있는가!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이, 합리적인 두 날개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펼쳐나갈 것이다.


임헌조 통일비전시민회의 공동운영위원장,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