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미·중 경쟁하 중국의 한반도 정책,
현상 유지 넘는 평화 진전 위한 협력 필요
미·중 경쟁구도 속 중국의 한반도 정책 핵심은 무엇일까.
북핵 문제를 비롯하여 한중관계와 북·중관계에 대한 중국의 정책을 분석한다.
  그동안 한국을 포함한 관련국들은 북한의 도발적 행동을 억제하고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대화 여건 조성에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강조해 왔다. 중국정부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기존의 4자·6자회담에서 자국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 2020년에도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북·미 간 소통과 대화를 통한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주장하였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실현이라는 대북정책 달성을 위해 동맹국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협력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중국 역할론’이 실제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중국은 오랫동안 한반도 문제를 미·중 전략경쟁의 하부구조로 인식해 왔고, 한반도 정세의 ‘관리’ 및 ‘현상유지’라는 소극적인 정책을 추진해 왔다. 중국의 ‘이중적’인 한반도 정책은 한반도 비핵·평화프로세스 추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향후 미·중 전략경쟁은 심화될 것이고 중국의 한반도 정책 딜레마 역시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시진핑 지도부의 한반도 정책을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현상 유지 중시해 온 중국의 한반도 정책
  중국은 그동안 ‘주변 정세의 평화와 안정 유지’라는 대외전략 기조하에서 한반도 정책의 3가지 원칙을 강조해왔다. 즉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관련 당사자들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보유는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화되었고, 한반도에서의 긴장과 갈등도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이 한반도 정책에서 가장 중시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소위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보다는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에 더 가깝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국정부는 남북한 분단체제를 종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기보다는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 방지를 통한 ‘현상 유지’를 좀 더 중시해 왔다.
  2012년 시진핑 체제 등장 이후에도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미·중 전략경쟁의 종속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유지 및 확대를 중시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현존 패권국인 미국과의 전략경쟁에 대비하여 미국의 역내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북·중관계의 조정’과 ‘한중관계의 발전’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한반도 정세를 ‘현상 유지’ 및 ‘관리’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실제로 시진핑 지도부는 ‘강대국 정체성(great power identity)’에 기반하여 ‘핵심이익’ 수호를 강조하고, 이전보다 더 주도적이고 공세적인 대외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기반하여 한반도 정책 역시 ‘현상유지’를 통한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호협력의 북·중관계, 협력과 긴장의 한중관계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에 따른 중국의 한반도 정책 딜레마는 북·중관계와 한중관계에서 모두 나타나고 있다. 먼저,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는 북·중 간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 북·중관계는 냉전시기 혈맹을 기초로 한 ‘특수관계’에서 탈냉전을 거치면서 점차적으로 국가이익에 기반한 ‘정상적인 국가관계’로 변모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감행하면서 북·중관계는 오랫동안 경색되었으나, 최근 한반도 정세의 대전환 추세 속에서 양국관계는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를 회복하였다. 북·중은 2018년 3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총 5차례의 정상회담을 개최했고, 이 과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는 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특히 시진핑-트럼프 시기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북·중 모두 자국에 유리하도록 외부 정세를 활용하고자 노력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중 전략갈등의 심화에 따라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는 주요 레버리지로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북 경제협력으로 대표되는 대북제재 우회 시도다. 실제로 중국은 2019년 12월 러시아와 함께 유엔 대북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북한 역시 2020년 내부 경제난과 자연재해, 코로나19라는 삼중고를 겪으면서 중국의 지지와 협력을 필요로 했다. 북한은 미·중 주요 갈등 사안이었던 홍콩 및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노골적인 ‘중국 편들기’로 미국과의 비핵화협상 장기 교착 상황에 대비했다. 또한 2021년 7월 11일 ‘북·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이하여 김정은 총비서와 시진핑 총서기는 상호 축전을 교환하고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는 한중관계에도 일정한 긴장과 변화를 불어넣고 있다. 1992년 수교 이후 한중관계는 경제통상, 사회문화 및 정치외교 분야에 이르기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고, 2008년에는 ‘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했다. 이후 2016년 사드배치를 둘러싼 갈등으로 역대 최악으로 악화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북핵, 사드배치 문제 등과 같은 외교안보 분야의 민감한 현안이 한중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은 한국에 대한 경제협력과 외교안보적 압력을 병행하고 있다. 즉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 심화 추세에서 한국의 전략적 위상을 고려하여 경제협력을 통해 한중관계를 발전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한국이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통해 대중국 견제와 압박에 동참하지 못하도록 유무형의 압력을 넣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에 ‘중국’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대만 문제를 포함하여 남중국해 문제까지 거론되었다는 점을 들어 중국은 자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한 것으로 인식하고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향후 한·미·일 안보협력 추세가 강화되고 중국 견제가 노골화될 경우 중국은 북·중관계 강화와 북·중·러 삼각협력 으로 맞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7월 9일 북한 국무위원회가 북·중 우호조약 체결(7월 11일) 60주년을 맞아 기념연회를 열었다ⓒ. 연합/조선중앙통신
한반도 비핵·평화프로세스 재가동과 ‘중국 역할론’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미·중 간 전략경쟁의 하위구조로 인식하고 있는 한 ‘중국 역할론’이 실제로 작동하기는 쉽지 않지만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 미·중 전략경쟁 심화, 북·미 협상의 장기 교착상태, 경색된 남북관계 상황에서 북·중관계의 밀착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만 기회요인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먼저, 북·중관계 밀착 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대북제재의 효과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란을 재점화할 수 있어 현재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작은 교역’을 포함한 남북협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북·중 ‘밀착’ 영향요인을 ‘활용’한다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특히 중국은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선호하기 때문에, 북한이 미국과 협상을 하되 중국과의 지속적인 전략적 소통을 하는 것을 가장 바람직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 전략을 추구하거나, 비핵화 협상을 통해 ‘친미’국가로 거듭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이다.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전략적 지렛대를 가장 많이 보유한 중국의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추동해야 한다.
2019년 6월 20일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중 정상회담에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
  첫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해서는 한중 협력의 목표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에 두되, 단기적으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역진을 방지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둘째, 한중 협력의 방식과 관련하여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유지하더라도 인도적 지원은 병행하는 방안과 함께, 한중 간 비전통적 안보 분야(방역·보건의료, 관광 등)에서의 협력을 통해 남·북·중 3각 협력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셋째, 미·중 갈등과 한반도 문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남북 관계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중국 및 미국의 지지와 협력을 동시에 획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또한 북·중 간 전통적 우호협력 유지는 지지하되 군사동맹화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넷째, 향후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논의과정에 중국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이 대중국 견제의 일환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중국의 의구심을 해소할 한중 간 전략소통이 필요하다. 다섯째,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이하여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중장기 전략과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한중관계 미래발전위원회’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양국의 리더십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회, 학술계, 시민사회 등)에서 협력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신종호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