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남·북·미·중 신년 메시지에서 읽는
2022년 한반도 정국의 향배
2022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국이 어떻게 바뀔지 혹은 현상 그대로 유지될지 주요국들의 신년 메시지 속에서 그 향배를 찾는다.
2022년은 평화의 세기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갈등과 냉전의 시대로 되돌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갈림길이 될 전망이다. 동유럽의 우크라이나 사태,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예멘 갈등이나 이란 핵 문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문제, 그리고 동아시아의 미중갈등과 대만 문제 등은 미래 지구의 향배를 좌우할 사태들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더해 연초부터 불거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의 미래도 글로벌 사태 전개로부터 무관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2022년에도 이어질 미국과 중국의 부정 교합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글로벌 리더로 돌아올 것(Amerca is back)이라는 임기 초 약속과는 달리 고유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특유의 단호한 리더십은 간데없고 매 의사결정에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다 타이밍을 놓치는 인상이다. 미국 외교의 오랜 전통인 초당적 외교가 살아나지 않음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의 결단이 제약받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이맘때쯤이면 나와야 할 신년 국정연설마저 올해에는 상원에서의 사회복지예산안과 투표권 법안의 통과 여부 때문에 3월 1일에나 발표하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역대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 중 가장 늦은 신년사이다.
이렇다 보니 미국의 리더십이 글로벌 체제보다는 국내 정치를 향하고 있는 양상이고, 결과적으로 미국 국내 정치에서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정책을 수정하는 현상 타파적 외교 정책에 대해서는 저어하는 양상으로 보인다. 중국에 대한 견제 즉 미중관계를 긴장 상태로 유지하며 나머지 지역정책에서는 현상 유지 입장을 고수한다는 심플한 정책이 바이든 행정부 외교정책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이유이다. 급변하는 시기에 이런 소극적 태도로 미국의 리더십을 유지한다는 발상에 대한 우려도 높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큰 변화를 점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백악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
한편 베이징 동계올림픽 준비를 다 마쳤다고 선언한 중국은 미중관계가 긴장을 거듭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서 장기전을 예고하고 나섰다. 시진핑 주석은 1월 1일 신년사에서 양개백년, 즉 지난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지나 건국 100주년의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향한 긴 여정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절대 손쉽게 야단법석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또 절대 평탄하게 단시간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라며 “멀리 내다보고 미리 대처하며, 전략적 집중력과 인내를 유지”할 것을 강조했다. 전면 소강(小康, 샤오캉), 빈곤 퇴치, 황하(黃河) 무사태평 그리고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일국양제’ 이행을 강조하는 시진핑 주석의 신년사는 현재의 상황을 장기적 시각에서 해석하기를 원하는 중국의 차분하고도 단호한 입장을 알 수 있다.
이래저래 미중관계가 단기에 화해 국면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양국은 2022년의 시간표를 짜고 있는 인상이다. 다가오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미국이 가장 큰 대표단을 보내지만,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외교적 보이콧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 지구촌 화합의 계기가 되기에는 결국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미중관계의 부정 교합은 글로벌 체제에 구김살을 줄 뿐 아니라 특히 한반도에 더 큰 부정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 대미 강경과 대중 협력 병행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연말 조선노동당 제8기 제4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국제 정세에 대한 이렇다 할 목표를 제시하지 않고 원론적 언급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날로 불안정해지고 있는 조선반도의 군사적 환경과 국제 정세의 흐름은 국가방위력 강화를 잠시도 늦춤없이 더욱 힘 있게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결론은 다사다변한 국제정치 정세와 주변 환경에 대처하여 북남관계와 대외사업부문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 문제들과 일련의 전술적 방향들을 제시했다.”
- 김정은 위원장 전원회의 연설 보도(노동신문 2022.1.1.)
한반도 정세가 날로 불안해지고 있어서 군사 안보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다변한 국제정치 정세에 대처하는 외교적 대응력이 필요하다는 원칙론 외에 이렇다 할 내용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북한이 2022년 초에는 별다른 변화 없이 장기전, 즉 북한식 전략적 인내로 대응할 것이라는 해설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연초부터 정국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소위 ‘주동적’ 조치를 시작했다. 1월 3일자 조선신보는 “조선은 객관적 요인의 지배를 받으며 그에 순응하는 길을 찾는 나라가 아니”라며 북한이 스스로 정세를 주동해 나가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이틀 뒤 북한은 실제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발사를 시작하여 안보 게임에 나섰다. 정국은 급속히 냉각되었고 북한과 미국은 제재와 미사일 추가 발사 위협을 주고받는 전통적 공방을 재개했다. “미국이 기어코 이런 식의 대결적인 자세를 취해 나간다면 우리는 더욱 강력하고도 분명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1월 14일의 외무성 대변인 성명이나,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위협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위험 계선에 이르렀다고 평가”하고 “우리의 물리적 힘을 더 믿음직하고 확실하게 다지는 실제적인 행동에로 넘어가야 한다고 결론”지었다는 1월 20일의 정치국 회의 성명, 나아가 “바이든 행정부는 조선의 《강대강》 원칙을 작동시키는 방아쇠를 끝내 당긴 셈이다”라는 1월 22일자 조선신보의 해설 등은 북한의 추가 강경 방침을 추론하게 한다.
한편 북한은 이 같은 강경책과 별도로 방역 때문에 멈추었던 북중 간의 교역을 재개했다. 1월 10일 노동신문 보도를 통해 ‘통제 위주의 방역’에서 ‘선진적’, ‘인민적’ 방역으로 넘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 북중 당국은 드디어 16일, 국경 폐쇄 24개월 만이자 전면 교역 중단 1년 반 만에 화물열차 운행을 재개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여를 포기할 정도로 방역을 강조하던 북한의 갑작스런 조치로 어리둥절하긴 하지만, 어쨌든 북한은 이로써 대미 강경론과 대중 협력론을 병행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월 17일 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한 북한. 2022년에도 대미 강경론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조선중앙통신
통합과 평화의 메시지,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
평화와 통합을 향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 1월 3일 발표된 신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분단국가이고 전쟁을 겪은 우리에게 평화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습니다”라며 평화의 소중함을 재차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주도해 온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한반도의 평화를 어렵사리 유지시켜 왔다는 점과 동시에 평화를 지키는 데 튼튼한 안보의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종합 군사력 세계 6위로 평가되는 한국의 강한 방위 능력과 자주국방이 평화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평화는 대화와 외교의 과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힘에 의한 강한 방위력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편 문 대통령은 긴장 방지와 한반도의 제도적 평화를 향한 대통령의 의지를 잊지 않고 밝혔다. “평화를 지속가능한 평화로 제도화하는 노력을 임기 끝까지 멈추지 않겠습니다”라며 임기가 끝날 때까지 평화를 제도화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중단된 남북대화를 재개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기회가 된다면’, ‘마지막까지’라는 의지적 형용을 동원하며 평화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히고, 그 모멘텀을 다음 정부로까지 이어지도록 할 것임을 강조했다. 평화와 남북협력의 복원을 위한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평화를 향한 의지적 행보가 중요
미국과 중국의 팽팽한 긴장이 글로벌 불안정성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 중동, 중앙아시아 등 불안정성은 지구촌 전체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팬데믹과 환경 재난 등이 새로운 형태의 안보 위협이 되어 지구촌을 압박한 지는 이미 오래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한동안 조용하던 북한마저 정권의 명운을 건 안보 게임을 시작할 태세다. 반면 대선 국면에 들어선 한국 정부의 옵션은 매우 제한적이고 국내 여론은 분열되어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평화를 향한 의지적 행보가 중요하다. 각국이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적 행보보다는 지정학적 이익을 향해 움직인다는 점에서, 우리 또한 국가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국가이고 전쟁을 겪은 우리야말로 평화라는 가치적 전망을 향한 지난 5년의 행보를 스스로 부인해서는 안 된다. 혐오와 분열의 정치가 다시 고개를 들고 한반도가 만들어 낸 평창 평화프로세스의 기억을 흔들고자 하지만 70년 분단사의 악몽을 되살리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평화는 제도화되지 않으면 흔들리기 쉽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대통령의 신년사에 ‘마지막까지’ 기대를 걸어볼 작정이다.
지난 1월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시민들이 동계올림픽 조형물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외교적 보이콧 너머 지구촌 화합의 계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연합
이 정 철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