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842022.02.

지난 1월 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 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궐기대회가 열렸다. ⓒ연합

진단

‘성장’ 아닌 ‘생존’ 카드 꺼내든
북한의 2022년 경제 전망

‘위대한 승리의 해’. 2021년 북한경제에 대한 북한의 자평이다. 하지만 그 면모를 살펴보면 자찬에 불과함을 쉽게 알 수 있다. 2021년 경제의 부진한 성적표를 감춘 북한의 2022년 경제 운영 출사표를 살펴본다.

2021년 북한경제, 마이너스 성장 속 식량 실적은 양호
지난해 12월 말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2021년을 ‘위대한 승리의 해’라고 자평했다. 그런 평가의 근거로 농업과 건설부문, 전력, 석탄공업, 건재공업, 기계, 채취, 임업, 육해운, 철도운수 부문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다는 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외부세계의 시각은 꽤 다르다. 지난해 경제실적은 ‘위대한 승리’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농업 부문의 성과는 인정할 수 있다. 한국 농촌진흥청의 추정에 의하면 북한의 지난해 식량작물 생산량은 전년보다 7%나 증가했다. 건설 부문의 경우, 성과를 내세우며 구체적인 지역과 사업명을 적시한 것은 주거용 건물, 즉 주택(살림집)뿐이다. 비주거용 건물 건설과 토목 건설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아 이 분야의 실적이 악화되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산업 중에서는 금속, 화학, 경공업, 상업, 관광을 일체 언급하지 않아 이들 산업의 실적 악화를 시사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제8차 당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하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금속공업과 화학공업을 관건적 고리로 틀어쥐고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며 이들 산업에 경제운영의 최대 우선순위를 부여했지만 결국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경공업 부문에 원료, 자재를 원만히 보장하여 인민소비품생산을 늘이는 것”을 5개년 계획의 중심과업 중 하나로 설정했지만 경공업 분야도 원자재 부족 등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와 함께 5개년 계획에서 국영상업의 발전,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강조했지만 이들 부문도 위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5개년 계획의 첫해에 목표를 달성했는지에 대한 여부를 언급하지 않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통상적인 경우 ‘위대한 승리의 해’라고 하면 “5개년 계획의 첫해 목표를 달성했다”고 밝힐 가능성이 높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따라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2020년에 -4.5% 성장을 기록했던 북한경제는 2021년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하락 추세가 잠시 주춤했던 2019년을 제외하고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동안 경제가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셈이다. 다만 2021년에는 성장 후퇴 폭이 2020년보다 크게 줄었고, 식량과 에너지 부문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실적을 거두었다는 점이 북한 지도부로서는 그나마 위안거리이다.
2022년 북한경제, 농업과 농촌 문제 주력 예상
북한은 올해의 기본과업을 5개년 계획 수행의 확고한 담보를 구축하고 국가 발전과 인민생활에서 뚜렷한 개변을 이룩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특히 “현행생산을 활성화하면서 정비보강사업을 보다 힘 있게 추진”해서 “나라의 경제를 장성궤도에 올려 세우며 인민들에게 안정되고 향상된 생활을 제공”하는 데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그런데 올해, 즉 5개년 계획 둘째 해의 경제운영계획을 보면 첫째 해인 작년에 제시했던 계획과 비교했을 때 우선순위체계와 정책 목표·수단체계 등에 다소 변화가 발생한 것 같은 인상이다. 무엇보다도 지난해에는 금속·화학공업에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부여했지만 올해는 농업·농촌 문제로 변경했다. 더욱이 지난해 그토록 강조했던 ‘주체의 화학공업’은 올해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에는 ‘정비전략, 보강전략’이라는 큰 방향성 아래 △경제사업체계와 부문들 사이의 유기적 연계를 복구정비, △자립적 토대를 다지기 위한 사업 추진, △경제를 어떤 외부적 영향에도 흔들림 없이 원활하게 운영되는 정상궤도에 올려 세우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하지만 올해는 이러한 명확한 목표 제시 없이 “현행생산을 활성화하면서 정비보강사업을 보다 힘 있게 추진”하는 선에서 그쳤다.

2021년 북한경제 성적표

북한 평가

• “위대한 승리의 해” 자평
• 농업, 건설, 전력, 석탄공업, 건재공업, 기계, 채취, 임업, 육해운, 철도 운수 부문의 ‘많은 성과’ 표면적 발표

외부 시각

• 농업 부문은 식량작물 생산량이 전년 대비 7% 증가 추정
• 건설 부문은 주택(살림집) 건설 성과만 구체적으로 적시(비주거용 건물과 토목 건설은 악화 예상)
• 금속, 화학, 경공업, 상업 관광 부문은 일체의 언급이 없으므로 실적 악화 예상


요컨대 지난해에는 소재산업에 최우선순위를 부여하면서, 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해 크게 파괴됐던 산업 연관의 복구에 주안점을 두었지만 올해는 전략물자 성격의 필수 소비재인 식량생산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특히 이른바 ‘장기전’에서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핵심 요건으로서의 식량에 주목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이제는 ‘성장’보다 ‘생존’에 경제정책의 방점을 찍은 것이다.

아울러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강조해왔던 내각책임제·내각중심제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경제 분야 간부·실무자들에 대한 비판과 질책 위주 분위기가 격려 위주 분위기로 전환하는 것 같다. 코로나19 국면의 지속에 따른 경제 간부들의 피로감을 의식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장기전으로 가려면 간부들을 다독여서 안고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북한은 2022년 경제 운영 계획의 일환으로 농업·농촌의 비약적 발전을 꺼내들었다. 사진은 사회주의 문화농촌 범안리의 모습 ⓒ연합/조선중앙통신
농촌 발전의 새시대 열 수 있을까
올해 경제운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농업·농촌 부문에 대한 강조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식 사회주의 농촌발전의 위대한 새시대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보고를 했다. 그는 우리식 농촌발전에서 점령해야 할 목표로서 △농업근로자들의 사상의식수준 제고, △농업생산력의 비약적 발전, △농촌생활환경의 근본적인 개변을 지적했다. 아울러 10년 동안에 단계적으로 점령해야 할 알곡생산목표 등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번의 새로운 농촌건설강령은 북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1964년, 즉 김일성 시대에 제시된 ‘우리나라 사회주의 농촌 문제에 관한 테제’와 큰 틀에서 매우 유사하다. 우선 농촌에서의 기술혁명, 문화혁명, 사상혁명 등 3대 혁명의 추진이 그러하고, 협동농장과 농촌에 대한 국가의 투자 확대 및 지원 확대, 농촌에 대한 지도 강화도 그렇고, 지방건설의 실질적 주체인 시·군의 역할 확대까지 같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이번에 새로 제시된 정책 방향이 아니다. 이미 지난 제8차 당대회 때 “농촌건설의 전망목표는 농촌에서 3대 혁명을 다그치고 사회주의 농촌테제를 철저히 관철”이라는 방향이 제시된 바 있다.


그런데 새로운 강령의 목표는 비교적 명확한 반면 수단은 그렇지 못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스스로도 이 계획의 성과적 실행을 위한 담보는 △국가의 힘 있는 지원, △강력한 국가적 지도체계의 가동, △지방건설의 주인인 시·군들의 역할 제고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가의 힘 있는 지원이 얼마나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핵심적인 것이 비료, 농약을 비롯한 영농자재인데 비료는 국내 생산에 한계가 있어서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실정이다. 다만 김정은 위원장이 황해남도를 중시해야 한다고 지시했기 때문에 이 지역에 대해서는 다소 배려, 즉 선택과 집중의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사회주의 농촌 문제 해결을 위해 3대 혁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이 중 사상혁명을 우선적인 과업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 또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오히려 강력한 국가적 지도체계의 가동은 기존 농장 운영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 1964년의 ‘테제’를 2022년 시점에서 본격적으로 소환한다는 것 자체가 최근 북한의 경제정책에 다소 퇴행적 요소가 있음을 다시 한번 잘 보여주고 있다.
2022년 북한경제, 국경봉쇄 완화 여부가 중요
올해의 북한경제 상황을 좌우할 최대 변수는 역시 코로나19의 향배이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국경봉쇄의 완화·해제 여부이다. 북한은 올해도 비상 방역사업을 국가사업의 제1순위로 설정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유지된다면 국경봉쇄도 유지되고, 따라서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상황이 다소 호전된다면 국경봉쇄 조치를 완화할 것이다. 그러면 필수 소비재와 일부 경공업용 중간재의 수입, 중국으로부터의 물자 지원도 재개되면서 현재와 같은 사실상의 바닥 상태에서는 탈피할 수 있다. 다만 대북제재는 여전히 유지되기 때문에 당분간 2017년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는 어렵다.

경제정책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기 어렵다. 다만 농업의 경우 최고지도자의 새로운 강령이 등장했기 때문에종전보다 국가 역량을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월 11일 북중 접경지역인 랴오닝성 단둥시 단둥역에 북중 교역에 이용되는 화물열차가 서 있다. ⓒ연합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1월 16일, 북한이 전격적으로 북중 간 화물열차 운행을 재개해 국경봉쇄 상황을 일부 완화했다. 북중 간 화물열차가 운행된 것은 지난 2020년 여름 이후 1년 반 만의 일이다. 국경봉쇄를 완전 해제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물자교류는 공식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코로나19 상황 등을 봐가며 국경봉쇄를 다시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못한다. 당분간 북한경제 상황은 국경봉쇄 완화 조치의 지속 기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 문 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학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