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지역 사람들
평화와 공존하는 도시
김포에 사는 사람들
남한에는 북한과 지리적으로 접하고 있는 12개 시·군*이 있다. 접경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평화의 가치를 조망한다. 북한의 황해북도 개성(개풍군)과 마주한 도시 경기도 김포는 과거에는 남과 북의 삼엄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곳이다. 이곳에 평화를 만들고, 평화와 공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옹진군, 경기도 고양시·파주시·김포시·포천시·연천군, 강원도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고성군
‘곧 돌아간다’는 희망 70여 년,
현재진행형인 접경의 도시
한강을 따라 내려온 유빙이 서해로 빠져나가기 전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곳. 길게 늘어선 철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김포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12개 접경 시·군 중 인천 강화와 더불어 해상으로 북한과 맞닿은 도시 김포는 1970~1980년대만 해도 남과 북의 선명한 경계를 체감하는 곳이었다.
“저는 김포 토박이인데,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무서웠던 기억이 나요. 마을마다 무기고가 있고 예비군이 평상시에도 훈련을 했습니다. 간첩사건도 있었고 사이렌 소리도 자주 들렸죠. 아버지가 대간첩 작전을 나가시면 며칠씩 집에 못 들어오기도 하셨어요. 그래서 ‘남자 아이를 낳으면 엎어놓겠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죠.”
- 이영병 학운목장 대표
‘접경’으로서의 김포는 현재진행형이다. 김포시 하성면 전류리포구는 참게와 새우가 유명하고, 일출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남과 북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 최북단 포구인 전류리포구에서는 눈앞의 강보다 철책과 초소가 먼저 눈에 띈다. ‘유실지뢰 주의’라고 쓰인 현수막도 이곳이 북한과 근접한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전류리포구에서 어업을 하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하고, 어업활동도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서 할 수 없다. 전류리포구에서 서쪽으로 가면 임진강, 더 나아가면 서해가 나오지만 이곳의 어부들은 어로한계선이 허락한 곳까지만 그물을 내린다.
물은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 가까운 황해도 일대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곧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이내 38선이 그어졌고 김포에 머물던 많은 실향민들은 갯지렁이를 잡던 갯벌을 메운 간척지에 정착했다. 실향민들은 애기봉에 올라 고향을 바라보고,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그리움을 달랬다. 이러한 역사를 전해주듯, 전류리포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강 건너 황해도 출신 실향민 1세대가 운영하는 식당이 남아 있다.
애기봉생태평화공원에서 본 북한 개풍군의 풍경
도시와 함께 변한 접경을 보는 시선
“82년에 김포에 왔는데, 예전에는 길에 나가면 다 아는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인구 50만 명이 넘는 도시로 커졌어요. 또 전국에서 두 번째로 인구 유입이 많은 젊은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 이미연 김포약국 대표
“80~90년대만 해도 서울에서 출·퇴근하기 정말 어려웠어요. 비포장도로에, 안개도 많이 끼고, 검문도 받아야 하고… 군사보호시설이 많아 공장 허가도 어려웠고요. 이제는 산업단지나 공단도 크게 들어와 있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됐죠.”
- 도승희 김포상공회의소 부회장
김포는 역동적으로 변하는 도시다. 거주 시민의 평균 연령이 39세, 젊은 곳은 35세에 이를 정도로 젊은 세대와 유입인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은 불과 몇 년 사이에도 도시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도시의 발전에 발맞춰 접경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했다. 농·어촌과 도시가 공존하고, 북한과 경계를 접하면서도(接境) 수도 서울을 이웃하고 있는 곳(接京). 새롭게 조성되는 신도시와 수십 년 역사를 가진 원도심이 있는 곳.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모여 만들어지는 도시에서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느껴진다.
지척에서 북한을 볼 수 있는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은 ‘접경’이 아닌 ‘평화’지역으로서의 김포를 보여준다. 1978년 ‘애기봉 전망대’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던 이곳은 평화, 생태, 미래의 이야기를 담은 평화생태공원으로 재탄생했다. 한때 남북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곳에 조성된 평화생태공원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한쪽으로는 건물이 즐비한 남한의 도시를, 다른 한쪽으로는 농경지대인 북한의 마을을 볼 수 있다.
애기봉 앞으로는 조상의 강이라는 뜻의 ‘조강(祖江)’이 흐른다. 한반도 최초의 재배볍씨가 발견됐다는 김포에 정착한 조상들은 이 강의 물을 길어 먹고 생활했을 것이다. 최초에는 생명의 원천이었던 강은 사람과 짐을 실어나르는 교통로가 되었고, 다시 전쟁의 격전지가, 다시 남북을 가르는 경계가 되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조강은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의 서식지이자 번식지가 되어 다시 시작될 평화를 기다리고 있다.
평화누리길 1코스에 평화의 바람을 담아 그린 벽화
김포를 가꾸는 사람들
“가족들을 데리고 김포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김포에서 미술로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시골 마을을 미술관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하게 됐고, 이후로 계속 김포를 어떻게 가꿀까 생각하며 ‘명품도시 김포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어요.”
- 최문수 김포공공미술발전소 대표
“하나원 퇴소 후 2016년에 김포에 왔어요. 아는 사람도 없고 막막했는데,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을 만나면서 큰 도움이 됐죠. 유치원 다니던 아이는 이제 12살이에요.”
- 박OO 북한이탈주민
DMZ와 접경지역을 걷는 평화누리길 12개 코스 중 김포에는 1·2·3코스가 지나고 있다. 1코스의 시작점은 대명항에서 출발해 염하강 옆으로 난 길을 걷는 ‘염하철책길’. 이곳에 김포시민들과 이 지역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이 함께 조성한 ‘평화벽화’와 ‘평화정류소’가 있다. 조성단계에서부터 함께 논의하고, 전문 작가가 밑그림을 그리면 그 위에 색을 칠하는 방식으로 완성한 평화벽화는 평화누리길을 걷는 이들의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한다. 1코스 중반을 넘어가면 만나는 평화정류소에서는 긴 시간 걸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휴식하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버스를 기다리듯 ‘평화를 기다리자’는 뜻을 담아 민주평통 김포시협의회가 만든 정류소 곳곳에는 평화를 위한 노력과 과정을 보여주는 글과 사진이 배치돼 이곳을 지나는 이들에게 평화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김포시협의회 자문위원들과 김포공공미술발전소, 김포시민 등이 모여 도시 곳곳에 만든 평화의 오브제들은 평화누리길을 걷는 사람들과 김포시민들에게 평화와 공존하는 도시 김포의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
민주평통 김포시협의회가 조성한 평화정류소
김포시 곳곳을 소개하는 한종명 김포시협의회 간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김포시협의회
우리고장 평화플랜, 민통선 걷기 및 사진전 등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주민들과 함께 평화 만들기
김포시협의회(회장 이미연)는 100여 명의 자문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협의회는 코로나19라는 엄중한 상황에서도 지역의 평화통일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형 프로그램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민주평통의 첫 번째 ‘우리고장 평화플랜’ 사업, 남북한 통일요리교실, 온라인 청소년 평화통일골든벨, 평화누리길 걷기 행사, 종전과 평화통일 기원 연날리기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도 김포시협의회는 한반도 평화 기원 민통선 걷기 및 사진전, 북한음식 체험 및 강연, 탈북민·사할린동포·다문화가정과 함께하는 한마음 체육대회, 전국 청소년 평화오케스트라대회 등을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김포를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의 삶
길게는 한평생, 짧게는 7년차 김포시민들에게 접경지역 김포에서의 삶에 대해 들었다.
참석 | 도승희 김포상공회의소 부회장(기업 운영, 거주 34년) / 박OO 학생(북한이탈주민, 거주 7년) / 이미연 민주평통 김포시협의회장(약국 운영, 거주 40년) / 이영경 학운목장 대표(토박이, 56세) / 최문수 김포공공미술발전소 대표(실향민 2세, 거주 28년)
Q. 김포에서 꿈꾸는 삶
도승희ㅣ김포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공장이 많을 정도로 일 자리가 많은 곳입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 소식을 접할 때면 김포가 접경지역이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평화로운도시 김포에서 계속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박OOㅣ김포는 저에게 ‘따듯한 도시’입니다. (하나원 퇴소 후) 김포에 처음 왔을 때 심리적으로 힘들었는데, 지역 주민들과의 여행, 운동(조기축구) 등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됐어요. 앞으로 보육교사가 되어 김포에 잘 정착하고 싶어요.
이미연ㅣ접경지역 김포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공감대를 더욱 확산하고 싶습니다. 민주평통에서 10여 년 동안 활동하면서, 특히 북한이탈주민들과 만나면서 통일이 정말 필요한 것이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이영병ㅣ저는 김포 토박이로, 고향 김포가 개발과 보전이 함께하는 지역이 되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접경지역인 만큼 생태의 보고, 마음의 고향과 같은 김포에서의 삶을 꿈꿉니다.
최문수ㅣ한강 하구가 보존된 지역은 김포뿐인데, 김포 곳곳을 마음껏 찾아다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집 근처에서도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김포’를 꿈꾸고,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Q. 평화가 정착된다면 김포는, 나는?
도승희ㅣ기업인으로서 제3공장을 개성에 짓고 싶어요. 무엇보다 같은 민족이어서 의사소통이 잘 되고, 우수한 인력과 저렴한 인건비가 큰 장점 아니겠습니까.
박OOㅣ평화와 통일을 준비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남한에 정착해서 잘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통일이 되면 북한 지역에 가서 보육과 사회복지를 전파할 생각합니다.
이미연ㅣ김포는 서울에서는 30분, 만약 북한까지 다리나 배편이 생기면 한시간 반이면 연결될 거예요. 김포시에서는 조강포구쪽을 경제특구로 지정하려고 준비 중인데, 김포가 더욱 발전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영병ㅣ땅값이 오르지 않을까요?(웃음) 저는 제가 잘할 수 있는 낙농업을 북한에 전파하고 싶습니다. 우유는 가장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이지만, 인프라가 갖춰져야 합니다. 강 건너 황해도에서 남북 합동 목장을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
최문수ㅣ한강은 김포의 젖줄입니다. 철책이 생기기 전 한강은 교통과 관광의 중심 역할을 했어요. 평화가 정착되면 한강도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Q.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제안
도승희ㅣ개성공단이 빨리 재개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또 남북 교류 활성화에 대비해서 김포에 육로·해로와 출·입경 시설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박OOㅣ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과 북한의 차이를 잘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는 기회, 예를 들면 지역의 민주평통 자문위원들과의 교류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됩니다. 잘 홍보해 주세요.
이영병ㅣ제가 대학 다닐 때는 국토순례가 기본이었는데 요즘엔 잘 안하는 것 같아요. 김포에서 국토(접경)순례 같은 행사를 하면 좋겠습니다. 육안으로 북한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은 김포뿐이에요.
이미연ㅣ정권마다 지속성 있게 평화·통일정책을 추진하면 좋겠습니다. 국민들이 공감하고 지지하는 일관된 평화·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독립기구를 신설하는 것도 제안합니다. 그리고 북한이탈주민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좋은 사례들과 프로그램 매뉴얼도 필요합니다.
최문수ㅣ평화통일에 대한 세대 간 공감대가 넓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사자인 남북의 협력과 번영이 중요합니다.